소전서가에서 펴낸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퍼스널컬러는 제주신라호텔이었구나? 연분홍색 표지와 푸른 배경이 사뭇 잘 어울린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펴낼 때 출판사 소전서가가 세심하게 신경 쓴 부분은 표지 디자인뿐만이 아니다. 매 챕터에 이상이 그린 삽화와, 또 맨 뒤에는 '배우신 분들'의 대담을 실었다. 특히 대담이 실려 있는 점이 감동 포인트였는데, 대담을 통해 구보가 경성을 하릴없이 거닐었던 이유, 이 소설과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간의 관계성, 이 소설의 디자인적인 측면, 그리고 소설가 박태원과 이상의 삶을 다른 시각에서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담'에서 '박태원 그리고 구보의 고현학'을 인상 깊게 읽었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서는 <모데로노로지오>라고 표현되는 모더놀로지(modernology), 즉 고현학은 '지금의 모습을 그리자!'라는 기치 아래 고고학과 비교되어 나온 용어로, 곤 와지로가 1920년대 관동 대지진 이후 재건되는 도쿄 모습을 기록하기를 주창한 것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당대를 관찰해보려는 행위인건데, 소설가 박태원과 구보는 글쟁이이니 고현학에 관심이 갈 법하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은 고현학을 하기에는 녹록치 않은 환경이었고, 그 부분을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보여주고 있다.      

그저 나와 비슷한 성향(추정컨대 INFP?)이라 구보가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낸 것으로만 여겼는데, 당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이 그의 걸음걸이에 녹아있었던 것.

유승환: 저는 이 고현학이라는 것이 식민지 조선에서 식민지 작가에 의해서 실현될 수 있느냐는 문제를 다루는 작품이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현학의 성과를 보여 주는 작품이 아니라, <그게 가능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문제 삼습니다. 구보 씨가 산책 나갈 때 들고 다니는 아이템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단장이고 다른 하나는.
김미정: 노트.
유승환: 무언가를 봤을 때 노트에 적어야 고현학이죠. 근데 이 작품에서 구보가 고현학을 하기 위해 노트를 펴는 장면이 얼마나 나옵니까? 딱 두 부분이 있어요.

그랬던가..? 생각해보니 구보가 노트는 계속 들고 다니면서 딱히 뭘 적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유승환 님에 의하면 구보가 노트를 펼치는 두 장면은 아래와 같다.

  1. '젊은 아낙네가, 실수로 떨어뜨린 복숭아가 바세도우씨 병에 걸린 노동자에게까지 이르르자 집어들기를 단념'한 일련의 과정을 구보가 기록하려고 노트를 펼쳤다가 근처의 사복경찰을 목도하고 기록을 포기한다.
  2. 친구와 카페에 가서 여급들과 놀 때 농담 따먹기로 서로의 정신병을 명명할 때 노트를 다시 펴든다. 다시말해 구보는 고현학을 하기 위해 노트를 지참했음에도, 막상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인 것은 밤 카페라는 닫힌 장소에서였음을 유승환 님은 지적한다.


머리가 띵했다. 온종일 이어지던 구보의 실없음에 나는 일견 공감하기도 했지만 한심하게 보기도 했었는데, 사실 구보는 검열과 감시를 끊임없이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를 견뎌내고 있었구나. 구보가 '명랑을 가장한다'는 문구가 몇번 나왔는데, 검열과 감시가 이루어지는 환경에서는 무해한 시민으로 보이기 위해 애쓴 결과가 아니었을지.

유승환: 이곳이 재미있는 대목입니다. <서소문정에 왜 못 갈까?>라는 문제가 일단 하나가 있잖아요. 서소문정이라고 하면 서촌으로 가기 위한 입구입니다. 지금도 시청에서 서소문동을 지나 죽 올라가면 서대문 쪽으로 가는 큰 길이 나오죠. 그렇게 서대문, 소위 서촌으로 죽 가면 마주치는 장소들이 독립문이나 서대문 형무소 같은 곳이죠. 그러니까 사라져 버린 조선, 혹은 조선 독립의 문제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들이에요. 그렇다면 거기서 무엇인가를 기록한다는 건에 공포를 느낀 것이 아닐까.
김미영: 검열을 의식한다는 거겠지요.
유승환: 정작 검열이 두렵다고 말하지는 못합니다. 사실 검열 때문에 검열에 대해서조차 말하지 못하는 거죠. 그 대신 구보는 자기가 신경 쇠약에 걸려서 거기에 가지 못한다고 말해요. 근데 이게 말이 안 되는 게, 이 작품 초반에 구보는 <나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신경 쇠약이라고 해요. 농담이에요. 일부러 그렇게 말한 거에요.
사실 검열 때문에 검열에 대해서조차 말하지 못하는 거죠.


추가적으로, 11장에 본인의 신경쇠약을 의식하는 동시에 옆을 지나쳐가는 건장한 사내에게 위압감을 느끼며, 어릴 적 『 춘향전』을 읽었던 일을 구보가 후회하는 장면이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 춘향전』이 어디가 어때서? 야시꾸리한 내용이 나온다고 들었는데, 그 때문에 그러나?'라고 의심스레 여겼었다. 하지만 대담을 읽으며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유승환: (중략) 그러면서 구보는 <그럼 내가 언제부터 이런 신경 쇠약에 걸렸을까?>하며 11화부터 『 춘향전』 이야기를 합니다. 박태원의 다른 산문을 보면 자신의 문학적인 경험의 시작으로서 취학 이전에 『 춘향전』을 탐독했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 춘향전』을 읽은 건은 박태원 문학의 출발점이죠. 그런데 박태원은 바로 그 춘향전을 볼 때부터 내가 이미 신경 쇠약에 걸릴 운명이었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김미정: 작가의 운명.
유승환: 작가는 신경 쇠약이라는 병에 걸리는 존재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식민지 조선에서 문학을 한다는 건 자체가 일종의 공포, 신경 쇠약이라는 이름으로 가장되는 공포를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해해서 미안해요 구보 씨. 소설가로서의 고민을 털어놓은 문장인 줄도 모르고..

대담에는 고현학 외에도 시대적 배경과 주변부 사실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대담을 읽고나면 확실히, 한 소설가의 밋밋하고 실없던 하루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대담은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린다.


그나저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될 당시 이상이 삽화가로 참여했다는 점이 신기하다.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인 줄로만 알았는데, 본래 전공은 건축과인데다가 삽화도 그리다니, 다능인이었구나.

19화, 29화, 30화에 삽화가 빠져 있는데 이상이 그날 개인적인 문제로 그리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일까? 궁금증을 자아내는 포인트.

어머니는 다시 바느질을 하며, 대체, 그애는, 매일, 어딜, 그렇게, 가는, 겐가, 하고 그런 것을 생각해본다.
하지만, 보통학교만 졸업하고도, 고등학교만 나오고도, 회사에서 관청에서 일들만 잘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또 동경엘 건너가 공불 하고 온 내 아들이, 구해도 일자리가 없다는 건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는 어딜 갈까, 생각해 본다. 모두가 그의 갈 곳이었다. 한 군데라 그가 갈 곳은 없었다.
구보는 종로 네거리에 아무런 사무도 갖지 않는다. 처음에 그가 아무렇게나 내어놓았던 바른발이 공교롭게도 왼편으로 쏠렸기 때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때, 구보는 차라리 고독에게 몸을 떠맡겨 버리고, 그리고, 스스로 자기는 고독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꾸며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amp;amp;hellip;
그러나, 여자가 청량리행 전차 속에서 자기를 또 한 번 발견하고, 그리고 자기가 일도 없건만, 오직 여자와의 사이에 어떠한 기회를 엿보기 위해 그 차를 탄 것에 틀림없다는 것을 눈치챌 때, 여자는 그러한 자기를 얼마나 천박하게 생각할까. 그래, 구보가 망설거리는 동안, 전차는 달리고, 그들의 사이는 멀어졌다.
그러면서도 구보는 그 비극에서 자기네들을 구하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서려 들지 않았다.
결혼 비용 삼천 원. 신혼여행은 동경으로. 관수동에 그들 부처를 위해 개축된 집은 행복을 보장하는 듯싶었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을 때, 두 사람은 거의 일시에 머리를 돌리고 그리고 구보는 그의 고요한 마음속에 음울을 갖는다.
&amp;amp;amp;amp;amp;amp;amp;amp;amp;lt;모데로노로지오&amp;amp;amp;amp;amp;amp;amp;amp;amp;gt;를 게을리하기 이미 오래다.
때마침 옆을 지나는 장년의, 그 정력가형 육체와 탄력 있는 걸음걸이에 구보는, 일종 위압조차 느끼며, 문득 아홉 살 때에 집안 어른의 눈을 기어 『 춘향전』을 읽었던 것을 뉘우친다.
구보는 이 조그만 사건에 문득, 흥미를 느끼고, 그리고 그의 &amp;amp;amp;amp;amp;amp;amp;amp;amp;lt;대학 노트&amp;amp;amp;amp;amp;amp;amp;amp;amp;gt;를 펴들었다. 그러나 그가 문 옆에 기대어 섰는 캡 쓰고 린네르 쓰메에리 양복 입은 사내의, 그 온갖 사람에게 의혹을 갖는 두 눈을 발견하였을 때, 구보는 또다시 우울 속에 그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황금을 찾아, 황금을 찾아, 그것도 역시 숨김없는 인생의, 분명히, 일면이다. 그것은 적어도, 한 손에 단장과 또 한 손에 공책을 들고, 목적 없이 거리로 나온 자기보다는 좀 더 진실한 인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여자가 그자에게 쉽사리 미소를 보여주었다고 새삼스러이 여자의 값어치를 깎을 필요는 없었다.
「이리 온.」 그러나 강아지는 먼젓번 동작을 또 한 번 되풀이하였을 따름, 이번에는 입을 벌려 하품 비슷한 짓을 하고, 아주 눈까지 감는다.
사실, 그는, 지금 벗을 가진 몸의 다행함을 느낀다.
구보는 그저 『 율리시스』를 논하고 있는 벗을 깨닫고, 불쑥, 그야 &amp;amp;amp;amp;amp;amp;lt;제임스 조이스&amp;amp;amp;amp;amp;amp;gt;의 새로운 시험에는 경의를 표해야 마땅할 게지. 그러나 그것이 새롭다는, 오직 그 점만 가지고 과중 평가를 할 까닭이야 없지.
그들의 세상살이의 걸음걸이가,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가를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속으로 지난날의 조그만 로맨스를 좀 더 이어 생각하려 한다.
그는 여자가 기독교 신자인 경우에는 제 자신 목사의 졸음 오는 설교를 들어도 좋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비 내리는 공원 안을 그들은 생각에 잠겨, 생각에 울어, 날 저무는 줄도 모르고 헤매 돌았다.
구보는 대체 무슨 권리를 가져 여자의, 그리고 자기 자신의 감정을 농락하였나.
그러나 아이들은 그렇게도 단순하다. 그들은,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을 반드시 따랐다.
문득, 제비와 같이 경쾌하게 전보 배달의 자전거가 지나간다. 그의 허리에 찬 조그만 가방 속에 어떠한 인생이 압축되어 있을 것인고.
구보는 자기가 이러한 사내와 접촉을 가지게 된 것에 지극한 불쾌를 느끼며, 경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그와 사이에 간격을 두기로 하였다.
어느 틈엔가 종로에까지 다시 돌아와, 구보는 갑자기 손에 든 단장과 대학 노트의 무게를 느끼며 벗을 돌아보았다.
갑자기 구보는 온갖 사람을 모두 정신병자라 관찰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그럼 이 세상에서 정신병자 아닌 사람은 선생님 한 분이겠군요.
그 맑은 두 눈은 그의 두 뺨의 웃음우물은 아직 오탁에 물들지 않았다.
참말 좋은 소설을 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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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2 - [도서] - (#1)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읽고




 




독서모임 플랫폼으로 트레바리가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나는 개인적인 이유로 아그레아블 플랫폼을 자주 이용하고 있다.


그 개인적인 이유라 함은... 나의 독서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것!

나는 한두 페이지만 읽어도 생각이 발산해서 하루에 읽을 수 있는 장수가 제한되어 있는데, 트레바리는 한달에 한권을 무조건 읽고 짤막한 독후감도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즉흥적인 면이 있어서 특정 책을 읽다가도 다른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곤 하는데, 트레바리는 꼼짝없이 4달을 지정된 트랙으로 달려야 하는 것으로 보여서 부담이 되었다.


그런데 아그레아블에서 매달 진행하는 온라인 독서 데일리 클럽은 매 평일 한 페이지만 읽어도 인증만 한다면 만원을 환급해주기 때문에 무시로 책을 읽는 습관이 잘 정립되었다.

나는 목표중심적인 인간이기 보다는 과정중심적인 사람인가봐.. 하루에 고작 몇페이지 읽어 뭐하냐는 시선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이 방식으로 벽돌책도 독파했다. 몇년 전이라면 꿈도 못 꿨을 것..

아그레아블에 다른 독서모임도 있고 런닝크루 프로그램이 있는데 아직은 자유도 높은 프로그램만 참여하고 있다.


트레바리도 한번 참여해보고 싶기는 하다. 그러나 (i) 독파속도가 효과적으로 향상되거나, (ii) 지정도서 중 최소 2권 정도는 이미 읽어본 책이어야 가능할듯. 그러지 않으면 시간 낭비, 돈 낭비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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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는, 삼별초의 항몽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은 물론이고 그저 자연경관과 공기를 만끽하고픈 사람도 모두 환대받는 곳이다. 나무와 꽃이 드넓은 부지 곳곳에 심겨있는데, 이곳만큼은 바다와 상관이 없다는 듯 달큰한 나무내음 꽃내음이 부지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해발고도 200미터 정도의 고지대이다 보니 주변일대에 내리쬐는 햇볕은 모조리 항파두리 유적지가 흡수하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식물들이 햇볕에 말갛게 내놓고 열심히 일광욕을 하고 있는걸 보니, 갑자기 행주산성과 남한산성도 이렇게 높은 지대에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떠올랐다. 항전을 하려면 우선적으로 '고지'를 점령해야 하는거군..(당연한 사실22222)




유적지를 모두 돌지는 못하고 5번 나홀로나무를 보고 1번 항파두리항몽유적지에서 전시된 내용을 보고 왔다. 잰걸음으로 하면 혹자에겐 20분컷일 수도 있었겠으나, 풍경을 눈에 담으며 걷고 전시관 설명을 유심히 보다보니 1시간 가까이 걸렸다.

경치에 감탄하며 연신 사진을 찍었는데.. 폰카 따위는 담을 수 없는 분위기와 구도였다. 그래도 일단 개중 몇개 추려서 올려본다.



 

 

 

 

 

 

 

나홀로나무는 멀찍이나마 두 친구나무를 좌우에 두고 있더란. 나홀로나무가 아니라 삼총사나무로 명칭이 바뀌어야..ㅋㅋㅋ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 입장료는 무료였음.

 

들어가서 바로 좌측에 전시관이 있다.

 

삼별초의 항몽 루트를 보여주는 지도





네이버 지도를 살펴보다 우연히 발견하여 들른 것인데.. 마음에 확 박혀부렀다. 언젠가 또 제주도를 온다면 꼭 다시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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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과 천국을 믿는 크리스천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옥에 가지 않도록 전도에 힘쓰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귀결이라 할 수 있다.

그 어떠한 방식으로도 전도하지 않는 크리스천이 당신 주변에 있다면, 그 주변인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거나, 미움 받을까 두려운 마음이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압도하거나, 전도하기에 적당한 때를 노리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부디 첫번째 이유가 아니길 바란다.

이 글을 적는 이유는, 두번째와 세번째 이유로 전도를 주저하는 나 자신을 설명하고 스스로를 타이르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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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며 송화가루가 기관지를 괴롭히는 나날들이지만, 해가 길어지고 신록이 돋아나니 확실히 생동감이 넘친다. 교통체증에 옴짝달싹 못해도 나쁠 것이 없다. 나무들에 둘러싸인 정자를 눈에 담을 뿐만 아니라 사진으로도 남길 짬이 생겼으니 말이다.


네이버지도를 찾아보니 효사정 공원이라는 것 같다. 그 너머에는 한강이 있다는데, 초행길이라 몰랐던 부분이다. 새로운 공간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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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나는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라서 골전도 이어폰을 구매하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가위도 잘 눌리고, 작은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심지어는 초등학생 때 피아노 방이 아래 그림과 같은 구조여서 피아노 연습에 집중하지 못하고 등골이 시려서 뒤를 연거푸 돌아보기도 했었구. (그래서 피아노랑 멀어지게 됨..은 핑계)

이렇게 불안도가 높은 내가 골전도 이어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야외 달리기를 할 때 음악을 들으면서도 혹시나 괴한이 뒤에서 달려들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사무실에서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낀 채로 일하다가 직장동료의 급작스러운 방문에 소리를 질러버리고야 마는 나에게는, 귀가 노출된 채로 음악 청취가 가능한 골전도 이어폰은 그 컨셉 자체로도 구미가 당기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이미 몇년전에도 골전도 이어폰의 존재를 알고 구매를 고민했지만, 당시 음질이 안 좋다는 리뷰가 꽤많이 보여서 마음을 접었었다.

그 몇년 전의 결정을 뒤엎고 작년 여름 골전도 이어폰 (정확히는 SHOKZ 오픈런프로 미니)를 23만원 정도에 쿠팡에서 구입했다. 번복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i) 실제로 SHOKZ 이어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었다는 점, (ii) 곧 업무환경이 변해 낯선 사람들 속에서 업무해야 할 처지였던 점, 이 두 가지였다. 주변인을 통해 SHOKZ 음질이 그렇게까지 조악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낯선 업무환경에서 음악으로 도피하는 동시에 외부소음을 인식해야할 필요성이 커지자 골전도 이어폰을 안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골전도 이어폰을 사고 의도한 대로 사용하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원래 목적과 전혀 엉뚱한 용처에 사용하고 있다. 당초 업무환경이 바뀔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계획이 틀어졌고, 내가 야외 달리기를 일년에 다섯번 할까말까 하는 인간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 골전도 이어폰을 안 쓰고 있는가? 집 안에서 잘만 쓰고 있다. 벽간소음이 심하기 때문에 이웃집에 민폐를 최대한 덜 끼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일반 이어폰을 끼고 싶지는 않은게, 피아노방에서 뒤를 계속 돌아보던 어린 나는 실내공간을 연신 확인하는 예민보스 성체로 자라났기 때문에 주변소음을 끊임없이 의식해야 마음이 놓였다.

엉뚱한 전개이지만, 여튼 잘 쓰고 있다는 사실.


충전단자가 독특해서 잃어버리면 골치 꽤나 아플듯..


참, 이 골전도 이어폰은 조용한 사무실에서는 사용하지 않는게 좋다. 어느 정도 데시벨이 올라가거나 톤이 높아지면 옆사람에게 꽤나 명확히 들리기 때문. 혼자 있는 공간이나 다소 시끄러운 공간에서 사용하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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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근사한 식당이라고 생각했는데, 숫기가 없어서 가게 곳곳을 찍을 수 없었다. 식사하던 테이블 사진만 소심하게 올려봄.. 

퓨전한식을 테마로 잡고 있는 식당인데, 독특하게도 젓가락을 주지 않고 있었다. 숏파스타 해물 신선로와 고흥 청유자 맑은 국밥을 시켜서 포크와 스푼만 필요하다고 업장에서 여긴 것일까? 아니면 다른 테이블도 똑같이 젓가락이 세팅 안 된 것일까. 다음에 또 방문해서 다른 메뉴를 시켜 먹어보면 알게 될 일이라 생각한다. 

음식 맛은 좋았다. 다만 사람마다 견해차가 있겠다고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이유는 이 식당이 어떠한 향과 풍미를 무지막지하게 때려박아 손님의 미뢰를 압박하는 손쉬운 승부수를 던지기 보다는, 음식 재료 본연의 맛을 이과적인 감성으로 정직하게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손님에게 음식을 '제시'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좌우지간 맑은국밥이 제일 안 땡긴다고 버팅기시던 어머니께서, 한 수 접고 국밥을 추가 주문하자고 하실 정도였으니 지나치게 난해한 맛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재료의 맛이 정연하게 쌓여 있는 음식이었기 때문에 식사순서에도 나름의 알고리즘이 있었다. 신선로가 맛과 향이 더 강하기에 맑은국밥을 먼저 드시라는 안내가 있었다. 조금 늦게 도착할 것 같다는 나의 통보에 홀매니저(사장님?)분은 조심히 오시라고 하시면서도 식사시간은 1시간 30분 이내에 마쳐야 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식당은 1층과는 외따른 2층 데크 위에 놓여져 있었고, 그런 탓인지 온류는 나름의 질서를 엄격하게 유지해서 세상 풍파에 영향 받지 않는 공간(트리하우스?)을 마련하고 싶었던건지 괜히 추측하게 하였다. 나중에 또 찾아갈 수 있도록 오래 계셨으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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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알파고: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의 등장'에서는 체스나 바둑과 같은 보드게임에서 인공지능이 어떻게 인간을 능가하게 되었는지, 그 로직의 발전을 다루고 있다.

여러가지 개념이 한꺼번에 다루어지고 있어 다 이해하기란 어려웠다. 특히 몬테카를로 방식이나 정책망&가치망에 대한 설명은 따로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러나 저러나 이해가 안 되도 계속 읽어나가는 것으로. 성경 말씀도 내 머리로 안 풀어지는데 어떻게든 읽어나가는 것처럼 말이지. 머릿속에 담아두고 계속 들여다보면 언젠가는 풀릴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경로를 탐색하는 것을 완전 탐색(Exhaustive Search)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모든 경로를 탐색할 필요는 없습니다. 좀 더 효율적으로 탐색하기 위해, 한 번 탐색해보고 성과가 없다면 그쪽은 더 이상 탐색하지 않도록 표시해두면 되기 때문이죠. 미로찾기에서 막다른 길로 이어지는 경로를 표시해뒀다가 다음번에는 그 경로로 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컴퓨터 과학에서는 가지치기(Pruning)한다고 표현합니다. 막다른 길은 더 이상 가볼 필요가 없기에, 이 경로는 나뭇가지 자르듯 쳐내버리고 다시는 탐색하지 않는 거죠. 이렇게 하면 불필요하게 탐색해야 하는 경로를 제외할 수 있어 그 다음부터는 전체적인 탐색 속도가 빨라지며, 더 효율적으로 탐색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딥 블루는 체스의 수를 계산할 때 이처럼 탐색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의 수를 가지치기를 거쳐 배제해 계산을 점점 줄여나갔습니다. 이외에도 오프닝과 엔드게임 테이블베이스를 활용하면서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을 더 과감히 생략했죠.  
- 2. 알파고: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의 등장 (딥 블루는 어떻게 체스 챔피언이 되었을까?)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전개형 보드게임에 임하는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발전할 수록 인간의 사고방식에 가까운 방식을 취하였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예단하기로는 인공지능이나 컴퓨팅 능력이 발전하면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전수계산방식을 취할 줄 알았는데, 가망이 없어보이는 루트는 재빨리 괄호 밖으로 빼버리는 인간과 같은 로직으로 구현해내려 했다는 점이 신기하다. 물론 게임트리 측면에서 봤을 때 바둑에서 완전탐색을 구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되었다. 하지만 미래에 하드웨어 계산성능이 좋아진다면 완전탐색을 추구하려 하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좌우지간 완전탐색을 구현하지 않음(혹은 못함?)으로써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한번이라도 이길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알파고는 왜 신의 한 수를 허용하고 말았을까요? 알파고의 작동 원리를 다시 한번 되새겨봅시다. 알파고의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은 유망한 수를 중심으로 꼼꼼하게 탐색해나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확률이 높은 쪽을 향해 더 많이 더 깊게 탐색해나가고 가장 신뢰가 놓은 지점에 착수를 하는 원리죠. 하지만 이세돌이 둔 신의 한 수 지점에 착수할 확률을 알파고는 1만 분의 1로 매우 낮게 예측했다고 합니다. 알파고는 설마 그 지점에 둘 줄은 몰랐기에, 충분히 탐색하지도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제한 시간 내에 1억 번 정도 탐색할 수 있다면 다른 곳은 수백만, 수천만 번씩 탐색한 데 반해 그 지점은 수십 번도 채 탐색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 지점이 묘수인지 아닌지조차 알아내지 못하는 거죠. 애초에 탐색을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78수 다음에 대국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알파고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이세돌이 78수를 착수하는 순간, 미처 충분히 탐색하지 않았던 알파고는 그제서야 당황하게 됩니다.
- 2. 알파고: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의 등장 (신의 한 수)
알파제로와 겨룬 스톡피쉬는 초당 7,000만 번의 수를 계산했습니다. 하지만 알파제로는 더 이상 이렇게 많은 수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약 8만 번 정도만 계산했는데 스톡피쉬와 비교해보면 1/875에 불과합니다. 각종 체스 규칙과 다양한 전술을 미리 입력해 두고 활용하는 스톡피쉬와 달리 알파제로는 어떤 체스 전략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강화학습으로 스스로 학습한 다음, 인간과 마찬가지로 유효한 수만 찾아 마치 직관에 따른 것처럼 다음 수를 두었죠.
- 2. 알파고: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의 등장 (인간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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