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증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속절없이 밀리는 태스크도 생기고..

3년 주기로 약간의 우울감과 무기력증이 찾아온다.
19년도와 22년도는 너무 힘들었고, 일련의 사건들과 감정 소용돌이에 나는 처참히 패배했다.

하지만 살아남았잖아. 지금 오는 슬럼프도 시간이 해결해줄거야. 그리고 그때보다 여러가지 안전장치가 많이 생겼잖나. 책도 읽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말이지.

(실은 독서와 운동이 슬럼프를 예방해줄 줄 알았는데.. 오는 슬럼프를 막을 순 없나 보다.)

이번 슬럼프는 조금 다른 대처를 해보려고 한다. 힘들때마다 말씀을 필사하고 읽는 것이다. 기도하는 것이다. 이전 두번의 직장슬럼프와는 다른 결과가 나오게끔 해보자.

오는 슬럼프를 막을 수 없다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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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먼드 할머니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 클럽의 모토가 뭐였지요?"
"재미, 먹거리, 친구!"
할머니들이 입을 모아 Fun, Food, Friend라고 외쳤다.
"그중에 제일 중요한 건?"
"친구!"
할머니들이 다시 제창했다.

- Side B Track 07

 
멜버른을 배경으로 한 한국소설이라기에 집어들었다.

얼마 전의 멜버른 여행에서 느꼈던 밝고 따뜻한 에너지를 얼마간 더 연장하고, 첫 여행이라 미처 느끼지 못했던 멜버른의 면면을 알게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결론은? 초.과.달.성.

재미, 사랑, 감동, 어느것 하나 빠지지 않는 소설이었다. 20대의 워홀러 친구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어 허겁지겁 읽은 뒤, 나는 이 소설이 필히 영어로도 번역이 되어 호주인들이 그 따뜻함을 되받아야 한다는 결론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후 진정하고...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더 셜리 클럽'은 호주 및 뉴질랜드 등지에 실제로 존재하는 커뮤니티의 이름이다. Shirley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인 것인데, 소설의 주인공&화자인 설희는 예전부터 자신의 영어이름이 Shirley였다는 이유로 클럽 가입을 희망하게 된다. 그리고 그 클럽에 가입하기 위하여 따라들어간 한 스포츠 펍에서 S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는데, S와의 관계가 슴슴하게, 하지만 그와 동시에 박진감 넘치게 발전하는 과정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의 큰 줄기는 이게 다가 아니다. 여러 갈래의 사건들이 얽혀서 일으키는 폭죽잔치를 지켜보면서, (작품으로는 초면이지만) 박서련 작가님의 옹골찬 스토리텔링 능력을 댓번에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형식과 소설적 장치들이 스토리에 걸맞게 사용되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특히 중간중간 나오는 카세트테이프 버튼 표식들은, 화자가 카세트플레이어 버튼을 실제로 누르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만들었다.
 

 
더 셜리 클럽의 존재, 멜버른 및 호주 지리에 대한 박식함, 워킹홀리데이의 절차적 상세사항 등등, 소설에는 박서련 작가의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왔다고밖에 볼 수 없을 정도의 디테일과 핍진성이 있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여 찾아봤는데 기사를 보니 역시나, 박서련 작가님도 호주 워킹홀리데이 경험이 있었다. 인터뷰 기사도 흥미롭게 읽어서, ⟪더 셜리 클럽⟫에 관심이 동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일독을 권해드린다.

http://www.topdigital.com.au/news/articleView.html?idxno=10746

[인터뷰] 한국인과 호주인의 우정 그리다, ‘더 셜리 클럽’ 박서련 작가 - 호주 톱디지털 뉴스(TO

낯선 땅에서 온갖 몸 고생 맘 고생을 했음에도 호주인들의 인정과 배려에 반하고 멋스럽고 운치 있는 자연에 또 한 번 반한 이방인이라면 소설, ‘더 셜리 클럽’의 주인공이 바로 당신이라고

www.topdigital.com.au

 
 

사실 카세트테이프는 저장 장치로서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아요. 저장 장치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튼튼하고 오래가는 것일 텐데, 카세트테이프는 예민하기 짝이 없거든요. 늘어나서 음질이 손상되기 쉽고 엉켜서 못 쓰게 될 수도 있죠. 자기력 에 약해서 자석을 갖다 대면 아주 손쉽게 망가지기도 한대요.

그렇지만 거기 담긴 곡들을 녹음할 때, 엄마에게 3분 14초 짜리 곡을 들려주려고 아빠도 3분 14초를 똑같이 썼을 거예요. 원하는 지점에 제대로 녹음되지 않았거나, 소음이 섞여 들어간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여러 번의 3분 14초를 다시 견뎠겠죠. 들려주고 싶은 곡을 고르는 데 드는 시간, 말하고 싶은 것을 고민하는 시간 같은 걸 빼도 상당한 시간이 들었을 거예요. 나에게 카세트테이프는 그런 의미가 있어요.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간을 선물하려 할 때에는 먼저 똑같은, 때로는 더 많은 시간을 써야만 한다는 걸 알려 주는 도구.

내게 그게 필요하다는 걸 당신은 알았던 거예요. 그것도 어쩌면 나보다도 더 정확하게.

- Side A Track 05

 

이틀 정도 끙끙 앓다가 마스터에게 아무래도 못 가겠다고 털어놓았다.

"솔직히 셜리는 안 간다고 할 줄 알았어." 마스터는 내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셜리가 조금 겉돌고 있는 거 나도 느꼈거든. 그러니 이런 기회를 통해서라도 다른 셰어 메이트들하고 친해졌으면 좋겠 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인데."

생각해 주는 말 같기는 한데 어쩐지 불편했다. 묘한 기시감도 들었다. 아, 그거다. 담임선생님. 나는 내가 왕따인 줄 모르고, 그냥 썩 친한 친구가 없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동안 아이들이 나를 은은하게 따돌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선생님.

- Side A Track 05

 

쿼카는 전 세계에서도 호주에만, 호주에서도 퍼스 앞바다 로트네스트섬에만 사는 작은 동물이었다. 입 모양 때문인지 성격 때문인지 항상 웃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동물이라고 불리는. 로트네스트섬에는 꽤 많이 살고 있지만 역시 희귀 동물이라 직접 만지는 건 불법인데, 사람을 좋아해서 사람에게 자꾸 접근하는 바람에 '웃으며 다가오는 벌금'이라고도 불린다고 했다. 러브크래프트 소설에 비슷한 표현이 나왔던 것 같은데... 아무튼 S가 좋아할 법한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Side B Track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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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주립 도서관은 두 번 방문하였다. 

 

재차 방문을 하게 된 연유는, 인터넷에서 보게된, Dome 지붕이 얹어진 도서관 내부를 보려고 걸음한 첫번째 방문에서 헛탕을 쳤기 때문이다. 도서관 자체가 그리 큰 줄 모르고 Redmond Barry Reading Room과 Cowen Gallery에서 서성대다가 도서관 마감시간이 다 된 것이다. 내가 본래 가려고 했던 열람실 이름은 La Trobe Reading Room이었는데, 그런 기초적인 조사도 하지 않고 무대뽀로 갔으니.. 예견된 수순이었다.

 

뭐 Redmond Barry Reading Room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하고 포기하려다가 아무래도 미련이 남아서 다시 가보게 되었다.

La Trobe로 가기 전에 심기일전 할 겸, 도서관 내 북샵 (Readings)에서 간단한 구매를 하고 도서관 내 카페에서 플랫화이트를 수혈했다.

(참고로 호주 커피 맛있다고들 하는데, 그건 라떼류 한정인듯 하다. Long black (아메리카노)를 여러번 시도해보았으나 맛이 너무 강했다. 물을 두배로 넣어 희석시켜도 회생이 안 될 것 같은 시고 떫은 맛이었다.)

 

친절한 도서관 안내요원에게 Dome 형태의 열람실이 어디 있냐고 문의하여 드디어 La Trobe 열람실 입성. Redmond Barry 열람실을 가로질러서 Cowen Gallery를 지나쳐야 했다.

드디어 입성!

 

La Trobe의 멋진 내부를 찍고 싶다면 다시 엘베를 타고 6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엘리베이터 대수는 한정적인지라, 엘베 타기 위해 다소 기다려야 했다.

이런 도서관이 우리 동네에 있다면 어떤 느낌이려나. 이런 고풍스러운 도서관을 경내에 둔 멜버른 사람들이 부럽다.

 

 

재빠르게 사진을 찍고 다시 내려와서 열람실 책상을 이용했다. 책상자리 하나하나 콘센트가 설치되어 있어서 노트북 작업하기에도 좋다. 

책상 상판은 검은 가죽으로 덧대어져 있어서 오래 되었음에도(혹은 오랜 세월을 견뎠기 때문에?) 고풍스러운 느낌이 났다. 그리고 책상 가운데에 힌지와 고리가 있는데, 저 고리를 들어올리면 독서대 용도로 각도를 조절하여 책을 볼 수도 있다. 이런 앤티크함마저 취향 저격..

 

대체적으로 조용한 분위기였지만, 주변 눈치를 살피지 않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다. 옆에서 사람들이 떠들건말건 크게 신경이 거슬리지 않았던 것은, 층고가 높아서, 햇살이 돔지붕을 통해 밝게 스며들어서, 소리가 높이높이 올라가서 녹아버리는 기분이 들어서 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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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일에 걸쳐 두개의 좌석을 예매해두었었다. 하나는 Rod Laver Arena 좌석이었고 다른 하나는 Margaret Court Arena. 기본 입장권인 Ground pass가 아니고서야, 보통 경기장과 Day/Night session을 선택한 다음, 원하는 좌석을 고르게 된다.
(여담인데 Margaret Court Arena는 Rod Laver Arena 옆에 붙어있어서 실내통로로도 이동가능하다. 그걸 모르고 Margaret Court Arena 찾느라 한참 돌아다님)

어느 선수가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지, 또 그 선수가 어떤 경기장에 배정받을지 알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단순무식하게 흥행성 있는 경기가 배정되곤 하는 Rod Laver 그리고 Margaret Court Arena를 예매해두었다. 선수를 가까이 보고 싶으면 돈을 많이 내면 된다. 하지만 1,2순위 코트를 예매한 것만으로도 출혈이 심했다.

꼭 경기장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바깥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구경하는 축제분위기이다. 호주오픈 관람경험이 전혀 없어서 Ground pass를 살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탁트인 공간에서 친구랑 치킨 버거 뜯으면서 대형스크린 보는 재미라든지, 대회초반 야외에서 진행되는 경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겠다 싶었다. 경기는 관심없고 AO 기념품만 사고 싶대도 어차피 AO Precinct에는 입장해야 하므로 최소 Ground pass는 구매해야 한다.

AO Precinct에는 경기장 외에도 Venue가 즐비했다. Polo Ralph Lauren, New Balance 등 다양한 판매대가 입점해있어서 어수선했다. 그런데 이것들은 공식 기념품샵(AO Shop)이 아니다. 공식 기념품샵은 Centrepiece에 있다.

여기서 기념품 몇개 줍줍했다. 돈만 많다면야 더 쓸어오고 싶었지만 가격이 사악하다고 느꼈다.

경기는 어땠는가. 현장감이 다했다. 조코비치가 짜증내는걸 내 눈으로 목격하고, 벤 셸튼이 날리는 오묘한 킥서브를 지켜보고, 여러사람이 소리높여 매디슨 키스를 응원하는 한복판에 있는, 그 현장감이 분명히 있었다. 관중과 함께, 내가 관중의 일부가 되어서 지켜보는 현장감.

하지만 TV중계가 직관에 비해 그 재미가 크게 덜하지도 않다고 느끼는 것은.. 그랜드슬램의 이모저모(네임드선수에게 싸인을 받는다든지..)를 아직 충분히 음미하지 못한 내게 책임이 있는걸까? 다음번에 그랜드슬램 직관 가게 된다면 직관은 한번으로 충분하며 (대신 아주 맨 앞좌석을 잡아야겠다) 이후 일정은 기본입장권으로 때워야겠다고 가닥을 잡았다.

참 Rod Laver Arena는 경기 전에 지붕을 닫고 조명쇼를 하는데 그게 멋있었다.

직관 사진과 영상을 올리고 이쯤 마무리 하자.


<Rod Laver Arena>

 

 



<Margaret Court Ar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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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주여행의 주 목적은 호주오픈 관전이었기 때문에 멜버른에 주로 있었다. 7일은 멜버른을 충분히 음미하기에 짧은 시간인 것 같다.

멜버른은 해가 정말 늦게 진다. 위 사진들이 밤 8시 30분~9시경 찍은 것들이다.

분명 호주는 지금 여름이라고 들었는데, 내가 생각한 그 여름날씨가 아니다. 분명 태양이 따갑게 내리쬐긴 했지만 땀이 잘 나지 않았다. 건조해서인지 일교차가 커서 아침 찬공기에 떨며 일어났다.

호주에서 현금을 만질 일은 거의 없었다. 카드 말고 현금을 내밀겠다는 말이 입 밖에 떨어지지 않아 결국 출국할 때 면세점에서 겨우 소진했다.

호주는 주마다 분위기와 제도가 매우 다르다고 한다. 교통카드마저 다르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하마터면 채 하루도 안 있을 시드니에서 오팔카드를 구입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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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이 움직이고 걸어다니고 갸우뚱하는 모습에 한없이 집중하게 된다.

이것은 작년 초여름에 찍은 영상.

까치는 사람이 와도 바로 날아가지 않는다. 지근거리에서 부지런하게 걸어다니는 모습이 귀엽다. 뭘 그리 찾고 있던것일까.

까치발에 잠시 젖혀졌다가 다시 허리를 피는 잔디도 귀엽다.

하루종일 동물만 관찰해도 되는 삶이었다면 꽤 행복하겠지. 그러한 삶도 어른의 사정과 여러 행정절차가 연루되면 문제가 달라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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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음에도 스토리를 알고 있는 책들이 더러 있다. ⟪노인과 바다⟫도 그런 경우였는데, (만새기를 천신만고 끝에 잡았는데 상어떼에게 다 털린다는 한 노인의) 스토리가 내게는 단순해보여서 최근까지도 읽을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영영 안 읽나 했는데, 친한 지인이 ⟪노인과 바다⟫를 추천하더라. 두께를 보니 분량도 적겠다.. 가벼운 마음을 책을 펼쳤다.

그런데 생각보다 읽는 데 시간이 걸렸다. 중간중간에 노인의 과거를 궁금케 하는 여러 대목(사별한 아내에 대한 언급, 사자 꿈, 술집에서 벌어진 팔씨름 사건)에서 계속 멈춰서게 되어서인 듯 하다. 책 말미에 실린 해도연 님의 의견처럼, 노인의 어획활동 스토리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그 스토리 밑에 깔려있을 노인의 과거와 가치관, 소년 및 마을사람들과의 관계성을 계속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던 노인에게는, 기본적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든다. 실제로 물고기(만새기)를 인생 난제로 치환해서 보면 노인에게 저절로 감정이 이입된다. 어부된 자로서 노인은 만새기를 잡으려고 최선을 다 했으며, 그럼에도 빈손으로 돌아왔으며, 그럼에도 유순하게 잠을 청했다.

바다에서의 어획활동이 거칠게 묘사된 탓에 일견 사나워보이기도 하지만, 노인은 최선을 다해 순응하는 인간의 본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어부이기에 물고기를 낚았고(직업에 순응), 며칠밤을 새워 어렵게 잡은 물고기를 상어에게 뺏기고 돌아와서도 울분에 차기 보다는 (운명에 순응하듯) 바로 잠을 자고 소년과 안부를 나눈다.

한때는 운명에 저항하는 사람이 멋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운명을 철저히 답보하고 따르는 인간에 눈길이 간다.
 
 

"투망을 가져가도 될까요?"
"암, 되고말고."

투망 따위가 있을 리 없었고, 소년은 노인이 투망을 언제 팔아 치웠는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처럼 꾸며 낸 말을 날마다 되풀이했다. 노란 쌀밥도 생선도 있을 리 없었고, 소년은 이 또한 잘 알고 있었다.

- 16쪽
노인은 바다를 늘 '라 마르'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이곳 사람들이 애정을 가지고 바다를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었다. 물론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마저 바다를 비난할 때가 있었지만, 그럴 때조차 바다를 언제나 여자인 듯 불렀다. 젊은 어부들 가운데 몇몇, 낚싯줄에 찌 대신 부표를 사용하고 상어 간을 팔아서 벌어들인 큰돈으로 모터보트를 구입하는 부류들은 바다를 '엘 마르', 즉 남성형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들은 바다를 두고 경쟁자, 일터, 심지어 적대자인 양 대했다. 그러나 노인은 늘 바다를 여성으로 생각했으며, 큰 은혜를 베풀어 주거나 빼앗기도 하는 무엇이라고 애기했다. 설령 바다가 무섭게 굴거나 재앙을 끼치더라도 그것은 바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려니 여겼다. 달이 여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듯 바다에도 영향을 미치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 29~30쪽
그런데 이놈이 선택한 방법이란 온갖 올가미나 덫이나 계략이 미칠 수 없는 먼 바다의 깊고 어두운 물속에 잠기겠다는 것이지. 그리고 내가 선택한 방법이란 모든 사람이 다다르지 못한 그곳까지 쫓아가서 네놈을 찾아내는 것이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가닿지 못한 그곳까지 말이야. 그래서 우리는 지금 함께 있는 것이고, 정오부터 줄곧 이렇게 함께 있었던 거야. 더구나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말이야.

차라리 어부가 되지 말걸 그랬나 보다, 하고 노인은 생각 했다. 그렇지만 어부가 되는 것이 나의 타고난 운명이 아니던가. (...)

- 48쪽
오두막집에 들어선 노인은 돛대를 벽에 기대 놓았다. 어둠 속에서 물병을 찾아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담요를 어깨와 등과 다리까지 폭 덮고 두 팔은 쭉 뻗은 채 손바닥을 위로 펼치고 신문지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소년이 오두막집 문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노인은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다. 그날은 바람이 몹시 사납게 불어서 유망어선(流網漁船)은 바다에 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소년은 늦잠을 자고 일어난 뒤, 아침마다 늘 그랬듯이 노인의 오두막집에 찾아와 본 것이었다. 소년은 노인이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고서 노인의 두 손을 바라보며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커피를 가져오려고 조용히 오두막집을 빠져나와서 길을 따라 내려가는 내내 엉엉 울었다.

- 114~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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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그러했겠지만 12월이 1년 같이 느껴졌다. 아직 직접적으로 타격 받지 않았지만, 나라소식과 주변인들의 안부를 듣는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겁게 내려 앉았다. 제발 오는 2025년에는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모두 건강하고 무사한 한 해를 보내기를, 예수님 만나 구원 받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북적북적 앱으로 기록


(독서애호가 분들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2024년은 책에 대한 애정을 되살린 한 해였다. 만화책 하이큐 두권 포함해서 총 18권 읽었다. 난다긴다 하는 분들은 한 해에 100권도 넘게 읽으시던데 나는 나의 18권에 만족한다. 최근 몇년새 워낙 안 읽었어서.. 좋았던 책을 꼽자면

  • 벤허
  •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 Trust (한국도서명: 트러스트)
  • 슬로우 워크
  • 말씀을 읽다
  • 나 같은 기계들
  • From the Mixed-Up Files of Mrs. Basil E Frankweiler (한국도서명: 클로디아의 비밀)


나는 집중력이 오래 유지되는 편이 아니어서 한꺼번에 10권 이상을 병렬독서 해댔다. 난독증 환자가 궁금병이 도지면 어떻게 되는지 잘 보여주는 현상이다ㅋㅋ 어차피 직렬독서하면 진도가 더 안 나가서 이렇게 발산하는 독서가 내겐 맞는듯..




2024년은 불안함이 도처에 깔린 해였지만 말씀 읽기와 기도와 독서로 버텨냈다. 온전히 하나님의 인도하심 덕분이다. 2025년도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계속 간구하며 나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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