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마클럽 구독권으로 읽었는데, 저작권 이슈가 발생했는지 책이 사라졌다. 어쩔수없이 북적북적 앱 캡처본을 올림..


⟪스토너⟫를 읽고 난 후, 나의 한줄평 : 이게 뭐라고 계속 읽었는지 모르겠다.

절대 재미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별볼일없는 노교수의 일생을 따라가기가 따분해서 중간에 덮지 않을까 싶었는데, 내가 이 책을 완독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다는 말이다. 국물맛은 삼삼한데 계속 먹게 되는, 평양냉면 같은 책이다. 

스토너는 참 뭐랄까... 뿌옇게 김서린 안경을 끼고 자신의 인생을 관조하는 사람 같다. 

(워커-로맥스 소동만 제외한다면) 이 사람은 삿된 불평은 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결과에 곧잘 순응하고는 한다. 심지어, 영문학에 대한 열정을 타인(아처 슬론 교수)이 일깨워주어야 할 정도였던걸 보면, 본인의 호불호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드리스콜과의 연애를 사람들에게 잘 숨기고 있다고 착각하는 장면은 그저 헛웃음이 나오고, '스토너는 사과했다'는 심플한 문장구조 대신 '스토너는 자신이 사과의 말을 또다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는 식의 유체이탈 화법 또한 당황스럽다. 

읽는 내내 나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매사에 호불호가 강하고, (젊어서 에너지가 남아돌 적에는)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한번 말이라도 해보거나 그것도 아니되면 조용히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었기 때문에, 이런 캐릭터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노력은 하되) 결과에 순응적이고 심지어 해탈하기까지 한 스토너의 모습들이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늙은어부 산티아고와도 닮았다.  

스토너처럼 살지는 못하겠고.. 스토너와 같은 친구를 두고 싶다.
 

초판본 표지에 Ellen Raskin이 있길래,, 어랏 하고 찾아봤더니, Westing Game을 집필한 그 Ellen Raskin이 맞는 것 같다! 이런 우연이..


“모르겠나, 스토너 군?” 슬론이 물었다. “아직도 자신을 모르겠어?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갑자기 슬론이 아주 멀게 보였다. 연구실의 벽들도 뒤로 물러난 것 같았다. 스토너는 자신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질문을 던지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이십니까?”
“정말이지.” 슬론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런 걸 어떻게 아시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슬론이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 1장

그해 10월에 주식시장이 붕괴했다. 지역 신문들은 월가에 대해서, 엄청난 재산을 잃고 인생이 변해버린 사람들에 대해서 기사를 썼다. 컬럼비아에는 그 영향을 받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보수적인 동네였으므로, 주식이나 채권에 돈을 투자한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국에서 은행들이 도산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싹튼 불안감이 몇몇 사람들을 건드렸다. 농부들 몇 명이 저축했던 돈을 인출해 갔고, 그보다 조금 많은 농부들은 (지역 은행들의 다그침을 받아) 예금을 늘렸다. 하지만 세인트루이스의 작은 민영은행인 머천츠트러스트의 도산 소식이 들어올 때까지는 진심으로 상황을 걱정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 7장

몇 주 뒤 스토너는 그날 오후에 로맥스가 핀치의 사무실로 쳐들어왔던 일을 핀치에게서 직접 들었다. 로맥스는 스토너의 행동을 신랄하게 비난하면서 그가 중세영어 상급과정에나 알맞은 내용을 1학년들에게 가르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핀치에게 그를 징계하라고 요구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핀치는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 동안 웃으면서 간간이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웃음이 말을 밀어냈다. 마침내 웃음이 잦아들자 그는 로맥스에게 사과한 뒤 이렇게 말했다.

“그 친구한테 당한 거요, 홀리. 모르겠습니까? 그 친구는 물러서지 않을 거요. 그리고 당신은 전혀 손을 쓸 수 없어요. 나더러 당신 일을 대신 해달라고요? 그러면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이겠소? 학장이 고참 교수의 강의에 간섭하는 걸로 모자라서, 그 학과의 학과장 선동에 넘어가 그런 짓을 하다니. 그건 안 될 일이오. 그 일은 당신이 알아서 해결하시오. 최선을 다해서.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을 거요. 그렇지요?”

- 15장

“그런 것이 아니야.” 스토너가 말했다. “내가 스스로 결정한 걸세.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 그는 차분하게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휴식도 좀 필요하고.”

핀치는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스토너는 자신이 사과의 말을 또다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자신이 아직도 바보처럼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 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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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이 책은 한국 언론들이 해리스 찬가를 부르던 2024년 8월부터 쓰기 시작해서 대선이 치러지기 전에 미리 완성했습니다. 제 나름의 객관적인 분석으로는 트럼프 당선이 너무나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 프롤로그. '왜 언론은 트럼프 당선 예측에 또다시 실패했을까?'


친구가 너무 재미있어서 하루만에 다 읽었다고 추천해준 ⟪트럼프 2.0 시대⟫. 그런데 나는 세상 물정을 잘 몰라서 그런지, 이 책 완독하는 데 두달 넘게 걸렸다. (도대체 어떻게 하루만에 독파할 수 있었던거지 이 친구는..)

 
평소 어렵다고 생각했던 주제들을 쉽고도 통찰력 있게 설명해주어서 좋았다. 그리고 걱정과 우려가 늘었다.. 특별히 더 걱정하게 된 계기는 양안전쟁 (중국과 대만 간의 전쟁)이 2027년 정도에 발생할 것이라 내다본 미국 씽크탱크의 예측이었다. 전쟁이 우리나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라도, 전쟁 발발로 인해 대만해협 통행에 제한이 생기면 에너지/식량 안보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전망이 무서웠다. 
 
그리고 3장에서 중국의 경제전략 부분을 읽으면서, 테무에서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낮은 가격에 물건이 팔리는 이유가 중국 내부의 공급과잉 해소를 위해 중국정부 차원에서 밀어내기 전략을 택해서이지 않을까 -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정신건강에 해롭다는 이유로 세계 정치&경제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왔는데,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일지라도 계속 관심두고 뉴스를 봐야 하겠다는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제정신으로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처럼 트럼프의 감세는 관세로 다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국채 발행으로 메우게 될 텐데요, 미국 국채가 지금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게 되면 시중의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미국 국채가 넘쳐 나게 되면 국채 가격이 하락해 시중 금리가 치솟아 오르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엔 미국 연준이 아무리 기준 금리를 낮춰도 장기 시장 금리가 그만큼 하락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트럼프의 공약은 사실상 실현이 불가능한 공약이 될 수 있습니다.

- 1장. '정치: 트럼프 2.0 시대가 몰고 올 태풍'

 

이미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침공할 준비가 끝났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나 군사 관계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 시기가 2027년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 전문가도 많은데요. 2024년 3월 전 미국 합참의장 마크 밀리는 국가언론클럽 연설에서 “중국이 2027년까지 대만 침공 계획을 세워 뒀지만 시진핑 주석이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라고 밝혀 큰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 같은 시기 미 인도태평양 사령관 존 애퀼리노는 미 하원 군사 위원회 증언에서 “중국에서 나타난 모든 징후는 중국 인민해방군PLA이 2027년까지 대만 침공 준비를 완료하라는 시진핑 주석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고 있음을 가리킨다”라고 발언했습니다.

- 2장. '국제: 더 격화된 무력 충돌'

 

두 번째 이유는 저가 밀어내기를 통한 수출 확대입니다. 제아무리 중국이라도 창고가 터져 나갈 정도로 계속 재고를 쌓아 둘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이 택한 방법은 과잉 생산한 제조업 제품을 해외로 헐값에 밀어내기 수출을 하는 건데요. 지방 정부 보조금에 국영 은행 저금리 대출까지 온갖 지원을 받은 중국 기업들이 손해를 보더라도 일단 쌓여 있는 재고를 해외로 수출해 공장을 계속 가동하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결국 중국의 경제 성장률 4.7%의 비밀은 재고 쌓기와 수출 밀어내기로 만들어 낸 허상이라는 뜻입니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다른 나라들은 공장 가동률을 줄이지만 중국은 역발상의 정책을 내놨습니다. 어차피 과잉 생산으로 쌓여 있는 제품들을 헐값에 수출하고 있으니, 이참에 다른 나라 경쟁 기업을 죽이고 차후엔 세계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겁니다.

- 3장 '경제: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웠던 시대가 흔들린다'

 

지금 AI 기업들은 이상 기후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를 많이 쓰는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고 비난을 받을까 봐 자사 모델의 에너지 사용량을 쉬쉬하고 있지만, AI가 곧 천문학적인 에너지를 소모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업계 관계자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중략)

그런데 현재 태양광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바람에 태양광 산업 생태계는 크게 위축돼 버렸고, 에너지 기반을 원자력 발전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하고서 3년이 다 되도록 아직 원전 부지조차 선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의 계획대로 2037년까지 대형 원전을 가동하려면 아무리 늦어도 2024년까지는 반드시 원전 부지를 선정했어야 하는데 이미 시기를 놓친 겁니다. 지금처럼 세계적으로 에너지 수급이 불안한 상황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 의존도를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서는 태양광이든 원전이든 닥치는 대로 건설해도 모자랄 판인데, 이렇게 모든 종류의 발전소 건설에 제동이 걸리면서 앞으로 수년 내 우리나라에 전력 대란이 올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중략)

또 다른 문제는 우리나라가 대형 발전소를 대부분 경상도나 전라도, 강원도 등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짓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용인에 대규모 반도체 투자를 하게 되면 수도권까지 더 많은 전기를 끌어와야 하고, 그러려면 대규모의 추가 송전망이 필요합니다. 과거 밀양에 송전탑을 세울 때 얼마나 큰 갈등을 유발했었는지 기억하실 겁니다. 그 당시 송전탑 하나 짓는 데 6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 4장. '사회: 끝나지 않은 한강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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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 도서로 지정되어서 읽게 되었다.

 

분명 인터넷 어딘가에서 급류를 보고 울었다는 후기를 보았는데, 나는 왜 눈물이 흐르지 않는걸까... 

 

  • 해솔과 도담을 어떻게든 엮으려고 우연에 우연이 겹치는 점 (이 둘은 운명이니까 독자보고 비현실적인 상황을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 같았음)
  • 창석과 미영의 죽음으로 소설이 시작되고 있으나 이 둘의 관계에 대해서는 일절 해명이 없었던 점 (나의 관심사 - 미영이와의 밀회를 즐기기 전에 창석이 유혹과 싸우기는 했는가? 창석은 정미에게 미안함을 느끼긴 했는가?)
  • 같은 어미가 반복되어서 문장을 읽는 맛이 단조로웠다는 점 (정직하고도 직렬적인 사실관계 나열에 질렸다. 중학생이 쓴 일기장을 훔쳐보는 느낌이었다.)

 

상기의 이유로 책을 높게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작가님의 선한 마음은 느껴지는 책이었다. Good try, keep going 정도로 해두겠다 (니가몬데). 

 

유튜브에 내 마음을 정확히 표현해주는 영상이 있어서 이를 공유하며 글을 마친다.

 

너 소용돌이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

도담이 해솔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해야 되는데?”

수면에서 나오려 하지 말고 숨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빠져나와야 돼.

- 1부
도담은 외로움이 사람으로 하여금 얼마나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드는가 생각했다. 진평 사람들은 과부인 미영이 외로워서 그런 거라고 했다. 아빠도 외로웠나. 내가 있고 엄마가 있는데 뭐가 그렇게 외로웠나. 도담은 다짐했다. 외롭지 않아야 한다. 외로우면 약해지고 쉽게 빠질 수 있다. 주변에 사람을 두고 혼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얄팍하더라도 사람들 곁에 있어야 한다.

- 2부 
생각에 잠긴 도담의 옆에 승주가 다가서며 말했다.

“도담 씨, 그런 얘기 들어 본 적 없어? 7년인가 지나면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세포가 교체된대. 10년이면 도담 씨 온몸의 세포가 교체된 거야. 그러면 이제 도담 씨도 그 사람도 그때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지 않을까?”

- 3부
그러나 안전거리를 둔다고 이별이 쓰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지금 자신에게 밀려드는 후회의 감정이었다. 승주는 자신의 계산이 틀렸음을 알았다. 문제는 거리가 아니었음을. 지금 승주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했다. 자기 자신조차도.

-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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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챙겨보는 유튜버 돌돌콩(링크)님이 칼 뉴포트를 자주 언급하여서 궁금하던 차였는데, 마침 작년에 칼 뉴포트의 신간(번역본)이 나왔다. "몰아붙이지 않을 때 진짜 실력이 나온다!"는 마케팅 문구가 매력적이어서 전자책을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칼 뉴포트의 ⟪슬로우 워크⟫는 지적노동의 생산성을 제조공장의 생산공정마냥 객관적으로 계량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서두를 뗀다. 이러한 문제제기를 읽으면서, '지적노동의 생산성을 발송한 이메일 개수나 사내메신저에서 Active한 상태를 유지한 시간으로 지적노동의 생산성을 측정할 수 있다'는 나의 무의식에 균열이 생겼다.

 

⟪슬로우 워크⟫는 한발 더 나아가서, 정신없이 바쁜 정신상태를 유지하는 행태가 외부의 압력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발적으로 선택된 것일 수 있다는 꽤 흥미로운 주장을 든다 (Chapter 4). 사무실 동료들에게 오늘 하루가 얼마나 정신없는지 은연중에 내비치려던 그간 나의 태도를 돌이켜보면.. 꽤나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칼 뉴포트는 크게 두가지 트랙을 통해 "Calm down"하라는 조언에 설득력을 싣고 있다. 첫번째는, 우리의 조급함이 우리가 자발적으로 택한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시간과 집중력을 어떻게 쪼개 써야 하는지에 대해 디테일한 사규가 없음에도 우리가 이메일이나 사내메신저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다. 이것은 바꿔 말해서, 이메일이나 사내메신저에 전전긍긍하느라 업무집중력이 훼손된다면 그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두번째로, 칼 뉴포트는 과거 위대한 과업들이 성취된 과정을 자세하게 짚으며 설득을 이어나간다. 제인 오스틴, 벤자민 프랭클린, 뉴턴, 그리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집중하는 데 매달렸던 앤드루 와일스 등의 사례를 읽어나가면서, 정말 중요한 성취는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줄평을 하자면,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닌) '보이지 않는 손가락질'에 지레 겁먹어 살던 나에게는 매우 따뜻한 책이었다.

 

다만, '지적노동의 생산성은 측량하기 어렵다'는 초반의 문제의식은 책 끝까지 이어지지 않고, 업무상 해결책 위주로 전개되는 듯하여 그 점이 아쉬웠다. (그래서 지적노동의 생산성은 무엇으로 측정하면 되는걸까? 아예 측정을 하면 안 되는걸까?)                      

세상살이에서 벗어나 초튼 시골집에 살면서 기적처럼 갑작스레 가사 노동과 사교계 책무 모두에서 해방된 오스틴은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공간을 손에 넣었다. 바로 이곳, 길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자리한 검소한 집필용 책상에서 일하면서 오스틴은 마침내 『이성과 감성』과 『오만과 편견』의 원고를 마무리하고 『맨스필드 파크』와 『에마』를 쓰기 시작했다.

- Ch 3 '업무량을 줄인다'
매시간, 매일, 매달 쉴 새 없이 고되게 일하며 기진맥진하는 경향은 사실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더 자의적이다. 물론 상사나 고객이 요구를 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항상 우리에게 일과를 어떻게 보낼지 일일이 지시하지는 않는다. 사실 우리가 스스로 느끼는 불안이 가혹한 업무 지시자 역할을 담당할 때가 많다. 조마조마하게 바빠서 멍할 정도로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데 근본적인 불안을 느끼는 탓에 지나치게 야심 찬 일정과 적절히 관리하지 못한 업무량에 시달린다.

- Ch 4 '자연스러운 속도로 일한다'
월요일에는 일정을 잡지 말자. 이 결정을 공공연하게 발표할 필요는 없다. 언제 회의할 시간이 나는지 물어보는 사람이 있을 때 그냥 월요일을 빼고 알려주면 된다. 월요일은 총 업무 시간 중 20퍼센트에 불과하므로,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약속을 잡기가 어렵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런 식의 회의 거부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

- Ch 4 '자연스러운 속도로 일한다'
2021년에 쓴 기사에서 나는 이런 관찰 결과를 근거로 원격근무와 재택근무를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직이 본사 사무실을 폐쇄하고 싶다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 절감분을 투자해 직원들이 집 근처에 일할 장소를 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제안했다. 직원들이 익숙한 물건들의 유혹에서 해방되면 전반적인 생산성과 만족도가 높아진다. 당신도 일하기 위해 좀 더 시적인 환경을 꾸미려고 한다면 이런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낯설음은 비록 추하더라도 강력하다. 일할 곳을 찾을 때는 지나치게 익숙한 장소를 피하도록 하자.

- Ch 4 '자연스러운 속도로 일한다'
실험 기록과 결과는 연구 체계를 잡아줄 뿐만 아니라 특허 분쟁이 발생했을 때 주요 증거로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이 조심스럽게 보관한 연구 노트들은 경쟁 발명가 일라이셔 그레이Elisha Gray를 상대로 벌인 전화 특허 분쟁에서 이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Ch 5 '퀄리티에 집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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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미술쪽에 조예가 없어서 부쩍 전시회도 가고 미술 관련 도서도 접해보려는 요즘이다. ⟪혼자 있기 좋은 방⟫을 통해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작품을 여럿 알게 되었다. 이 책에는 추상화가 별로 안 실려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아차렸다. 나는 정말 못 말리는 구상화-바라기인가보다.

(추상화는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어서, '추상화에 대한 거대담론을 나누는 사람들은 정말 내용을 이해하고 발화하는걸까?'라는 의심도 살짝 가지고 있다.)

여튼 눈이 즐거운 책이었다. 거기에 더해, 역사 배경과 화가에 대한 설명이 초코칩처럼 알알히 박혀있어 상식측면에서도 도움이 되었다. (알알히 박혀있다는 점이 포인트이다. 주구장창 미술사조만 거론했으면 질려서 중도포기했을거다.)

중간중간에 작가님이 자신의 인생관을 지나치게(?) 설파하는 부분은 아쉬웠지만 작가분과의 취향이 다른 것일 뿐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303쪽에 개인적으로 마음이 많이 가는 문구가 있어 옮겨본다. 교실 앞에 서성이던 아이에게 감정이 이입된다. 아무리 뒤늦었어도 다시 들어가서 용서를 구하자.

「학교 문 앞에서」에서는 농번기에 집안일을 돕느라 장기 결석한 후 오랜만에 학교에 나타난 아이가 해진 옷차림으로 문 앞에 서서 교실에 들어가기를 주저하는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힙, 힙, 호레이!」속의 파티는 덴마크 화가 미카엘 안케르 Michael Ancher의 주선으로 이뤄졌는데, 그는 화면의 왼쪽에서부터 여섯 번째에 있는 남성이다. 파티가 끝난 후 크뢰위에르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 즐거웠던 장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좀 더 자세히 스케치하기 위해 이젤과 물감을 챙겨 다시 안케르의 집을 찾는다. 그러나 그건 너무 갑작스러운 방문이었고, 마침 혼잡한 도시 생활을 피해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던 안케르는 그의 예의 없는 행동에 분노했다. 결국 그들은 심하게 다투었고, 곧 화해하긴 했지만 크뢰위에르는 그후 안케르의 집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었다. 하지만 그림의 진행을 멈출 수 없었기에 정원 풍경을 찍은 사진을 토대로 작업하며 오랫동안 고군분투했고 그런 연유로 이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총4년이 걸렸다.

- '일상으로의 초대' (p.172)




 

그가 이토록 교실을 많이 그린 데에는 스승인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라친스키의 영향이 크다. 러시아 최고 명문인 모스크바 대학교의 식물학 교수였던 라친스키는 농민을 대상으로 사회개혁을 이루고자 일으킨 계몽운동인 '브나로드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에 퇴직했다. 그리고 자신의 영지가 있는 스몰렌스크로 낙향하여 아동교육에 헌신했다. 그는 타테브 마을에 자선 학교를 세우고 암산을 위한 독특한 교육방법을 개발해서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그 학생 중 한 명이 보그다노프벨스키였다. 가난한 집안의 사생아로 태어나 학교에 다닐 처지가 못 되었던 그에게 라친스키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후원도 해주며 따뜻한 손길을 건넷다. 또 미술에 재능을 보이자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술아카데미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추천해주었다.

- '아이의 마음으로 살기'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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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충만함과 행복감을 느끼는 전시를 보고 왔다. 서촌 그라운드시소에서 준비한 '워너 브롱크호스트: 온 세상이 캔버스'가 그것. 
 
인스타그램 광고로 이 전시를 알게 되었는데, 인스타 광고를 통해 그럴듯한 구매를 하기는 처음이라 상당히 얼떨떨하다. 

작품명 Rothcourt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작품은 Rothcourt. 진녹색의 배경에 로저 페더러와 노박 조코비치가 그려져 있다니.. 2019년 윔블던 결승전 장면일까. 굵은 아크릴물감으로 테니스코트가 단순하게 추상화되어 있지만 인물은 매우 섬세하고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워너 브롱크호스트의 작품들은 대부분 '배경은 추상화, 그 안의 인물+동물+사물들은 정밀화'라는 구도를 지녀, 그 대조가 주는 재미가 있었다. 그림 속의 등장인물들은, 그 장소가 어디가 되었건 신나게 액티비티를 즐기는듯 해서 그 흥분감과 즐거움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장소가 어디가 되었든 너만의 활동을 하며 충분히 기쁨을 느낄 수 있어! - 라는 메시지를 받은것마냥. 
 

 
비비드한 색감만 추구하는 줄 알았는데, 워너 브롱크호스트는 진회색이나 검은색도 간간히 사용하더라. 근데 개인적으로는 아크릴물감으로 그려낸 진회색 작품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아래 사진처럼 목탄화로 표현해낸 무채색이 더 마음에 들었다.

 
보는 재미가 쏠쏠한 전시 그 잡채. 아래는 'Players'라는 작품인데, 가까이 다가가 보면 유명한 축구선수가 그려져 있다. 축알못인 나도 몇명을 구분해 냈다.

작품명 Players
살라
메시
음바페
홀란드

 
직접 가서 보시면 감동이 배가 된다~ 멀리서 보면 쨍한 색감의 아크릴물감 덩어리에 홀리고 작품을 코앞에 두면 인물 디테일에 정신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옆에서 보면 툭 튀어나온 아크릴물감의 입체감에 또한번 매료~
멀리서 보고 가까이서 보고 옆에서 보는 재미가 있단 말입니다요~

 
그건 그렇고 이 라커사물함.. 작품인줄 모르고 문을 열어보다가 직원분께 주의를 받았다. (뻘줌;;)
라커사물함엔 가족사진이 걸려 있는데, 호주여행에서 느꼈던 호주인들의 가족중심적인 가치관이 이 전시에서도 잘 드러나는 것 같다. 워너 브롱크호스트의 making film(?)을 전시장 여러군데에서 틀어주고 있었는데 아기를 안고 작품을 그리고 만드는 장면이 계속 보였다. "일이 나의 가정을 훼손할 수 없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혹시 티켓값이 그리 비싸지 않다고 생각하셨나요? 
아마도 당신의 지갑은 전시 마지막에 자리잡은 굿즈샵에서 집중적으로 털릴 것입니다. 굿즈 퀄리티에 울고 여의치 않은 지갑 사정에 한번 더 울었다. 하지만 피크닉 매트를 고른 나의 안목 칭찬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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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처음 알게 되었다. 지정도서가 있는 모임이 아니고, 각자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자유롭게 나누는 자리였는데, 여기서 참여자 한 분이 이언 매큐언의 ⟪나 같은 기계들⟫을 소개해주셨다.

앨런 튜링이 단명하지 않고 과학적 성취를 지속하였다면,
인공지능과 로봇이 1980년대를 살아가는 한 영국인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 것인가?

 

대체역사물(alternate history)이구나. 소재를 듣자마자 나는 흥미가 일었지만 막상 소개해주신 분은 손사래를 쳤다. 생각의 흐름 기법이 과중한 나머지, 이론과 과학개념이 난무하여 자기는 읽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AI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꽤나 재미없었던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는 AI 지식⟫도 완독한 마당에 뭔들 못 읽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2024.04.08 - [Books] - (읽는 中 - 1장)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는 AI 지식 (챗GPT 수록 개정판)>, 박상길 지음 / 정진호 그림

 

어찌되었건 그런 마음에 이 책을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고,

비록 초반 스타트가 다소 더뎠지만,

주인공의 연인인 미란다의 수상한 과거와 인조인간 아담의 예측불가능한 행동에 페이지를 바쁘게 넘기게 되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인공지능에 관해 내가 한번이라도 접했던 기술적/사회적/문화적 논의가 모두 이 한권의 소설에 응축되어 있다는 데서 감탄했다. 이언 매큐언은 말만 많이 들었지 이 작가의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정말 뛰어난 스토리텔러가 아닐 수 없다. 다른 소설은 얼마나 더 재미있게 잘 썼기에 '⟪나 같은 기계들⟫이 매큐언 기존 작품 대비 별로'라는 리뷰가 있었던 걸까. ⟪속죄⟫나 ⟪암스테르담⟫을 꼭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

 

그것은 희망이 허락된 종교적 열망, 과학의 성배였다. 우리의 야망은 높고 낮게 흘렀다 - 창조신화의 실현을 위해서, 기괴한 자기애적 행위를 향해서. 그것이 실현 가능해지자 우리는 결과야 어떻든 욕망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가장 고결하게 표현하자면, 우리의 목표는 완벽한 자신을 통해 필멸성에서벗어나 신에게 맞서거나 심지어 신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보다 실용적으로 보자면, 우리는 개선된 형태의 더 현대적인 자신을 고안하여 발명의 기쁨, 지배의 전율을 만끽할 작정이었다.

- Chapter 1 (p.11)
넬슨 기념비 근처 시위에서 쓰레기통과 빈 깡통으로 만든 조잡한 로봇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기조연설자 벤이 연단에서 그걸 가리키며 러다이트적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대중에게 선진 기계화와 인공지능의 시대에 일자리는 더이상 보호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역동적이고 창의적이며 세계화된 경제에서 평생일자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이라는 것이었다. 야유와 느린 박수가 터져나왔다. 대중의 다수가 그의 다음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노동의 유연성은 보장과 결합되어야 한다 - 모두를 위해.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건 일자리가 아니라 노동자의 복지다. 인프라 투자, 훈련, 고등교육, 보편적 기본소득. 조만간 로봇들이 막대한 경제적 부를 창출해낼 것이다. 그들에게 세금을 매겨야 한다. 노동자는 그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거나 전멸시키는 기계에 대한 지분을 가져야 한다.

- Chapter 4 (p.178)
그의 의식이 희미해졌다. 우리는 그가 쉿쉿거리는 치찰음으로 의미 없는 말을 웅얼거리는 걸 들었다. 그러다 다시 의식이 돌아왔고, 그의 목소리가 먼 단파 라디오방송처럼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

"미란다, 당신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 일찍 솔즈베리에 다녀왔어요. 이 자료 복사본을 경찰에 넘겼으니 연락이 올 겁니다. 난 후회는 없어요. 우리의 생각이 다른게 유감스러울 뿐이죠. 당신이 명료함을…… 깨끗한 양심의 편안함을 환영할 줄 알았는데…… (...)"

- Chapter 9 (p.416-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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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싼의 해운대블루라인파크

길고 충실한 1독평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나의 서평(?) 작성 속도가 독파 속도보다 느려서, 독후감 써야할 책이 쌓여있다. 긴 서평은 다회독하는 책에 대해서 쓰기로 하고, 1독평은 가급적 30분 이내로 쓰기로 하자.

그리고 예규판례 정리하기도 은밀히 품고 있던 욕심이었는데.. 아무래도 나는 아직 체계적으로 정리할 여력이 없는 것 같다. 법률 대중도서 몇권 읽으면 줏대가 서려나.

스스로 설정한 목표치가 과하니 기대치를 낮추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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