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적으로 유용한 책이었다. 굳이 '전반적으로'라는 부사를 덧대는 이유는 중간중간에 나오는 소설 꼭지는 내게 별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머리말에 따르면 "기왕이면 재미있게 읽히도록 한쪽에 소설 같은 이야기를 곁들"였다는데, 없었으면 읽기에 더 깔끔했을 것이다. 화자가 국숫집에 가고, 자갈밭과 비단길을 엉덩이로 찧어가는 꿈을 꾸는 것이 당췌 나와 무슨 상관이랑 말인가. 나는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으려고 이 책을 집어들었는데 말이다. 서브플롯 대신 문장 구성에 대한 설명을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가 빈약한 본론을 보완하고자 서브플롯을 집어넣었다기 보다는, 그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모양이다. 어찌 됐든 나에게 도움되는 꼭지가 많았고, 특히 김훈의 문장력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이동하는' 문장흐름의 원칙은 작가의 통찰력이 깊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사실 나는 내 문장도 그렇게 자세히 뜯어본 적이 별로 없다. 뭔 소리야.
유익하게 느꼈던 몇 꼭지를 소개하며, 서둘러 포스팅을 마치도록 하자.
#1.
사과와 배가 충분하다는 걸 힘주어 강조할 요량으로 굳이 써야겠다면 말릴 생각은 없지만, 대개의 경우 '-들, -들, -들'을 붙여서 좋을 건 없다. 예전엔 편집자들이 '-들'을 반복해서 쓴 원고를 '재봉틀 원고'라고 부르기도 했다. '들들들들'만 눈에 띄니 마치 재봉틀로 바느질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였다.
-Chapter "적·의를 보이는 것·들 ③'
#2
이처럼 '대해'는 빼 버리면 그만일 때가 많지만, '대한'을 쓰는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가령 '사랑에 대한 배신', '노력에 대한 대가'처럼 단지 빼 버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장식처럼 집어넣은 경우와는 다르다고나 할까. 말하자면 '대한'을 쓰는 이유는, 습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문장을 이해하고 만드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랑에 대한 배신
노력에 대한 대가
예문에서 보듯 '대한'이 들어간 문장은 '대한'을 활용한 문장이라기보다 '대한'이라는 붙박이 단어를 중심으로 나머지 단어를 배치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니 주체적으로 '대한'을 선택해 쓴 것이 아니라 '대한'에 기대서 표현한 것뿐이다. 그리고 '대한'은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 준다. 표현을 더 정확히 하려고 고민할 필요가 없게 만들어 주니까.
사랑을 저버리는 일 (또는)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하는 행위 (또는) 사랑에 등 돌리는 짓 등등
노력에 걸맞은 대가 (또는) 노력에 합당한 대가 (또는) 노력에 상응하는 대가 등등
-Chapter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 ①"
#3
삿된 주어들은 지시 대명사나 인칭 대명사로 가리켜지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그, 그녀, 그것, 그들. 김훈은, 소설 문장에선 금기시하는 반복된 호명을 감수하면서까지 주체를 오직 이름으로만 불러낸다. '그'라거나 '그녀'라는 삿된 대명사를 좀처럼 쓰지 않난다. 주어라면 모를까 주체는 손가락질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리라. 그리고 김훈의 주체는 주어와 달리 첩질을 하지 않는다. 서술어를 여럿 거느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주어 하나에 서술어 하나, 서술아가 둘 이상일 땐 주어를 반복해서 쓴다. '밥이 차가운 데다 되기까지 해서 씹어 삼키기가 힘들었다'라는 문장이라면 김훈은 아마도 '밥은 차갑고, 차가운 밥은 차지지 못해서 밥을 삼키는 목은 그 차가움과 차지지 못함을 그대로 받아내느라 서럽고 처량했다'라고 쓸 것이다.
-Chapter '말을 이어 붙이는 접속사는 삿된 것이다'
#4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있다. 너무 당연해서 원칙이라고 여기지 못하는 원칙. 그건 누구나 문장을 쓸 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써 나간다는 것이다.
이 말은 누구나 문장을 읽을 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읽어 나간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실제로 문장을 읽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그러니 문장을 쓰는 방법도 그와 다를 수 없다.
더군다나 한국어 문장은 영어와 달리 되감는 구조가 아니라 펼쳐 내는 구조라서 역방향으로 되감는 일 없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풀어내야 하니다. 영어가 되감는 구조인 이유는 관계사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관계 부사나 관계 대명사를 통해 앞에 놓인 말을 뒤에서 설명하며 감았다가 다시 나아가는 구조가 흔할 수밖에 없다.
-Chatper '문장 다듬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