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며 송화가루가 기관지를 괴롭히는 나날들이지만, 해가 길어지고 신록이 돋아나니 확실히 생동감이 넘친다. 교통체증에 옴짝달싹 못해도 나쁠 것이 없다. 나무들에 둘러싸인 정자를 눈에 담을 뿐만 아니라 사진으로도 남길 짬이 생겼으니 말이다.


네이버지도를 찾아보니 효사정 공원이라는 것 같다. 그 너머에는 한강이 있다는데, 초행길이라 몰랐던 부분이다. 새로운 공간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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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나는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라서 골전도 이어폰을 구매하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가위도 잘 눌리고, 작은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심지어는 초등학생 때 피아노 방이 아래 그림과 같은 구조여서 피아노 연습에 집중하지 못하고 등골이 시려서 뒤를 연거푸 돌아보기도 했었구. (그래서 피아노랑 멀어지게 됨..은 핑계)

이렇게 불안도가 높은 내가 골전도 이어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야외 달리기를 할 때 음악을 들으면서도 혹시나 괴한이 뒤에서 달려들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사무실에서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낀 채로 일하다가 직장동료의 급작스러운 방문에 소리를 질러버리고야 마는 나에게는, 귀가 노출된 채로 음악 청취가 가능한 골전도 이어폰은 그 컨셉 자체로도 구미가 당기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이미 몇년전에도 골전도 이어폰의 존재를 알고 구매를 고민했지만, 당시 음질이 안 좋다는 리뷰가 꽤많이 보여서 마음을 접었었다.

그 몇년 전의 결정을 뒤엎고 작년 여름 골전도 이어폰 (정확히는 SHOKZ 오픈런프로 미니)를 23만원 정도에 쿠팡에서 구입했다. 번복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i) 실제로 SHOKZ 이어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었다는 점, (ii) 곧 업무환경이 변해 낯선 사람들 속에서 업무해야 할 처지였던 점, 이 두 가지였다. 주변인을 통해 SHOKZ 음질이 그렇게까지 조악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낯선 업무환경에서 음악으로 도피하는 동시에 외부소음을 인식해야할 필요성이 커지자 골전도 이어폰을 안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골전도 이어폰을 사고 의도한 대로 사용하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원래 목적과 전혀 엉뚱한 용처에 사용하고 있다. 당초 업무환경이 바뀔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계획이 틀어졌고, 내가 야외 달리기를 일년에 다섯번 할까말까 하는 인간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 골전도 이어폰을 안 쓰고 있는가? 집 안에서 잘만 쓰고 있다. 벽간소음이 심하기 때문에 이웃집에 민폐를 최대한 덜 끼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일반 이어폰을 끼고 싶지는 않은게, 피아노방에서 뒤를 계속 돌아보던 어린 나는 실내공간을 연신 확인하는 예민보스 성체로 자라났기 때문에 주변소음을 끊임없이 의식해야 마음이 놓였다.

엉뚱한 전개이지만, 여튼 잘 쓰고 있다는 사실.


충전단자가 독특해서 잃어버리면 골치 꽤나 아플듯..


참, 이 골전도 이어폰은 조용한 사무실에서는 사용하지 않는게 좋다. 어느 정도 데시벨이 올라가거나 톤이 높아지면 옆사람에게 꽤나 명확히 들리기 때문. 혼자 있는 공간이나 다소 시끄러운 공간에서 사용하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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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근사한 식당이라고 생각했는데, 숫기가 없어서 가게 곳곳을 찍을 수 없었다. 식사하던 테이블 사진만 소심하게 올려봄.. 

퓨전한식을 테마로 잡고 있는 식당인데, 독특하게도 젓가락을 주지 않고 있었다. 숏파스타 해물 신선로와 고흥 청유자 맑은 국밥을 시켜서 포크와 스푼만 필요하다고 업장에서 여긴 것일까? 아니면 다른 테이블도 똑같이 젓가락이 세팅 안 된 것일까. 다음에 또 방문해서 다른 메뉴를 시켜 먹어보면 알게 될 일이라 생각한다. 

음식 맛은 좋았다. 다만 사람마다 견해차가 있겠다고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이유는 이 식당이 어떠한 향과 풍미를 무지막지하게 때려박아 손님의 미뢰를 압박하는 손쉬운 승부수를 던지기 보다는, 음식 재료 본연의 맛을 이과적인 감성으로 정직하게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손님에게 음식을 '제시'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좌우지간 맑은국밥이 제일 안 땡긴다고 버팅기시던 어머니께서, 한 수 접고 국밥을 추가 주문하자고 하실 정도였으니 지나치게 난해한 맛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재료의 맛이 정연하게 쌓여 있는 음식이었기 때문에 식사순서에도 나름의 알고리즘이 있었다. 신선로가 맛과 향이 더 강하기에 맑은국밥을 먼저 드시라는 안내가 있었다. 조금 늦게 도착할 것 같다는 나의 통보에 홀매니저(사장님?)분은 조심히 오시라고 하시면서도 식사시간은 1시간 30분 이내에 마쳐야 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식당은 1층과는 외따른 2층 데크 위에 놓여져 있었고, 그런 탓인지 온류는 나름의 질서를 엄격하게 유지해서 세상 풍파에 영향 받지 않는 공간(트리하우스?)을 마련하고 싶었던건지 괜히 추측하게 하였다. 나중에 또 찾아갈 수 있도록 오래 계셨으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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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알파고: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의 등장'에서는 체스나 바둑과 같은 보드게임에서 인공지능이 어떻게 인간을 능가하게 되었는지, 그 로직의 발전을 다루고 있다.

여러가지 개념이 한꺼번에 다루어지고 있어 다 이해하기란 어려웠다. 특히 몬테카를로 방식이나 정책망&가치망에 대한 설명은 따로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러나 저러나 이해가 안 되도 계속 읽어나가는 것으로. 성경 말씀도 내 머리로 안 풀어지는데 어떻게든 읽어나가는 것처럼 말이지. 머릿속에 담아두고 계속 들여다보면 언젠가는 풀릴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경로를 탐색하는 것을 완전 탐색(Exhaustive Search)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모든 경로를 탐색할 필요는 없습니다. 좀 더 효율적으로 탐색하기 위해, 한 번 탐색해보고 성과가 없다면 그쪽은 더 이상 탐색하지 않도록 표시해두면 되기 때문이죠. 미로찾기에서 막다른 길로 이어지는 경로를 표시해뒀다가 다음번에는 그 경로로 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컴퓨터 과학에서는 가지치기(Pruning)한다고 표현합니다. 막다른 길은 더 이상 가볼 필요가 없기에, 이 경로는 나뭇가지 자르듯 쳐내버리고 다시는 탐색하지 않는 거죠. 이렇게 하면 불필요하게 탐색해야 하는 경로를 제외할 수 있어 그 다음부터는 전체적인 탐색 속도가 빨라지며, 더 효율적으로 탐색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딥 블루는 체스의 수를 계산할 때 이처럼 탐색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의 수를 가지치기를 거쳐 배제해 계산을 점점 줄여나갔습니다. 이외에도 오프닝과 엔드게임 테이블베이스를 활용하면서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을 더 과감히 생략했죠.  
- 2. 알파고: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의 등장 (딥 블루는 어떻게 체스 챔피언이 되었을까?)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전개형 보드게임에 임하는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발전할 수록 인간의 사고방식에 가까운 방식을 취하였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예단하기로는 인공지능이나 컴퓨팅 능력이 발전하면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전수계산방식을 취할 줄 알았는데, 가망이 없어보이는 루트는 재빨리 괄호 밖으로 빼버리는 인간과 같은 로직으로 구현해내려 했다는 점이 신기하다. 물론 게임트리 측면에서 봤을 때 바둑에서 완전탐색을 구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되었다. 하지만 미래에 하드웨어 계산성능이 좋아진다면 완전탐색을 추구하려 하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좌우지간 완전탐색을 구현하지 않음(혹은 못함?)으로써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한번이라도 이길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알파고는 왜 신의 한 수를 허용하고 말았을까요? 알파고의 작동 원리를 다시 한번 되새겨봅시다. 알파고의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은 유망한 수를 중심으로 꼼꼼하게 탐색해나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확률이 높은 쪽을 향해 더 많이 더 깊게 탐색해나가고 가장 신뢰가 놓은 지점에 착수를 하는 원리죠. 하지만 이세돌이 둔 신의 한 수 지점에 착수할 확률을 알파고는 1만 분의 1로 매우 낮게 예측했다고 합니다. 알파고는 설마 그 지점에 둘 줄은 몰랐기에, 충분히 탐색하지도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제한 시간 내에 1억 번 정도 탐색할 수 있다면 다른 곳은 수백만, 수천만 번씩 탐색한 데 반해 그 지점은 수십 번도 채 탐색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 지점이 묘수인지 아닌지조차 알아내지 못하는 거죠. 애초에 탐색을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78수 다음에 대국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알파고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이세돌이 78수를 착수하는 순간, 미처 충분히 탐색하지 않았던 알파고는 그제서야 당황하게 됩니다.
- 2. 알파고: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의 등장 (신의 한 수)
알파제로와 겨룬 스톡피쉬는 초당 7,000만 번의 수를 계산했습니다. 하지만 알파제로는 더 이상 이렇게 많은 수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약 8만 번 정도만 계산했는데 스톡피쉬와 비교해보면 1/875에 불과합니다. 각종 체스 규칙과 다양한 전술을 미리 입력해 두고 활용하는 스톡피쉬와 달리 알파제로는 어떤 체스 전략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강화학습으로 스스로 학습한 다음, 인간과 마찬가지로 유효한 수만 찾아 마치 직관에 따른 것처럼 다음 수를 두었죠.
- 2. 알파고: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의 등장 (인간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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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직면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이 문제를 정면돌파하라, 네가 힘이 있건 없건, 어떻게든 해결을 해보려고 하라 - 고 하나님께서 계속 말씀하시는데도, 나에게 도무지 이겨낼 힘과 지혜가 없는 양 보여서 다른 분야에서 뻘짓을 할 때가 있다.  



하나님, 저는 이 문제와 씨름하면 패배할 것 같으니까 다른 문제와 씨름하고 다른 문제를 이기고 올게요. 이것도 노력이니까 하나님 흡족히 받아주시겠지요? 이것도 제 성장에 유익이 되겠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마음에 남겨주신 그 문제를 직시하지 않으면 인생 한가운데서 영문도 모른 채 도돌이표를 그리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항시 애를 쓰는데 일이 안 풀리면 이러한 이유가 아닐지 생각해보자.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관련 책을 찾아 읽는 것뿐이다.

시류가 그렇지 않은가? 어떤 기업이나 국가가 LLM을 비롯한 인공지능에 의구심이나 회의감을 표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국내 대형 출판사도 인공지능을 업무에 활용하는 방법을 다룬 영상을 올릴 뿐, 판단할 권리와 의무를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손쉽게 이양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지는 않는다. 일터에서도 인공지능을 업무에 활용할 궁리를 회사 차원에서 하고 있기에, 관련 담당자분께 인공지능이 적극 도입된다면 주니어 교육과 업무 검토는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신지 여쭤보니, 일단 답만 맞으면 된거 아니냐는 식의 뜨악스러운 답변이 돌아왔다. 기업이 아무리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라 해도 말이지, 가치판단이 너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되지 않나?  

실은 돈이지. 다 돈이야. 물론 나도 돈이 좋지만, 숙고가 필요한 사항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전세계적으로 ESG니 친환경이니 지구온난화니 그렇게 난리를 쳐대면서, 인공지능 구동하려고 돌아가는 데이터센터에서 뿜어내는 어마어마한 열기는, 그건 뭐 없는 셈 치기로 한건가?

그런데 이렇게 불만이 가득한 내가 관련 보직을 맡았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일단 맡았으니 직무는 책임감 있게 수행해야 한다. 어차피 인공지능 꼴보기 싫다고 내외했다간 그 결과가 불보듯 뻔하다. 내 턱 밑까지 와서 "나 이만치 따라잡았어. 이제 어쩔테야?"라고 어퍼컷을 날릴 게 뻔하다. 그러니.. 관련 공부를 꾸준히 하는 수밖에 없다. 이러나저러나 한참 부족하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



책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표지의 각 칸의 그림은 이 책이 다루는 여덟까지 꼭지를 의미한다.


이 책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는 AI지식')은 그런 사고흐름 속에서 고르게 되었다. 원래 종이책으로 사뒀었는데 밀리의서재에도 있기에 이북리더기로 읽어나가는 중이다.

우리 곁을 떠난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1942~2018)은 살아생전에 “인공지능은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Elon Musk, 1971~) 는 “인공지능은 악마를 소환하는 것”이라며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인류를 정복한다거나 인류의 존재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였죠.
그러는 사이, 인공지능은 우리 일상에 스며들었습니다.
-  들어가며
챗GPT, GPT-4와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기술은 분명한 공학이며 그 원리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독자 여러분께 알리고 싶었습니다.
- 들어가며


저자인 박상길 님은 기술 옹호론자로 보인다. 그런데 지금은 니편내편 따질 때가 아니고 인공지능의 유형과 원리를 탐색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새삼스레 알게 된 사실은, 챗GPT 이전에도 인공지능이 생활 곳곳에 녹아들어 있었다는 점이다. 챗GPT나 미드저니, 소라의 출현과 물리적 실체를 지닌 로봇의 발전으로 내가 이리 위협을 느끼는 거지, 이미 자동차와 기계번역, 검색엔진에 인공지능이 녹아있었구나. 하지만 몇해전까지만 해도 인간을 보조하는 수준으로만 인공지능이 존재했을 따름인데, 오늘날 인공지능은 창작의 영역을 이미 침범했다. 그 지점에서 나는 공포감을 느낀다.

그건 그렇고.. 아직 읽어나가는 중이지만 설명이 매우 깔끔하고 포인트를 잘 짚어내고 있다. 인공지능을 이제 갓 접한 나도 언뜻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직관적으로 인공지능 발전의 역사를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높이 사고 싶다. 더불어 정진호 님의 그림 또한 줄글 설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1장에서는 머신러닝(딥러닝) 작동방식에 대한 설명과, GPU 작동방식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그전에는 CPU와 어찌 차이가 나는지도 몰랐고 감도 잡을 수 없었는데, 지금은 GPU하면 '병렬연산'이라는 키워드가 자동으로 떠오를 정도로 명확한 이미지가 머리에 박혔다.

일단은 계속 읽어나가고, 계속 기록해보기로 한다.

1956년 다트머스대학교에서 ‘지능을 가진 기계’를 주제로 학술회의가 열립니다. 이곳에 모인 학자들은 처음으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용어를 고안하고 사용하게 되죠.
- 1. 인공지능: 위대한 인공지능, 깨어나다 (진정한 인공지능이 등장하다)
머신러닝이란 말 그대로 기계Machine가 스스로 학습Learning을 하는 방식입니다. 이제 더 이상 사람이 규칙을 입력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컴퓨터가 데이터에서 스스로 규칙을 찾아냅니다. 더구나 사람이 찾아내지 못하는 규칙도 컴퓨터가 학습을 거쳐 찾아낼 수 있게 되었죠.
 
변형에 따른 무수한 변칙까지도 데이터를 이용해 모두 찾아낼 수 있게 되면서 규칙에서 벗어난 결과도 추론할 수 있게 됐습니다.
- 1. 인공지능: 위대한 인공지능, 깨어나다 (머신러닝, 스스로 규칙을 찾아내다)
그렇다면 과연 딥러닝은 어떤 원리로 작동할까요? 딥러닝은 인간의 두뇌가 작동하는 구조를 본떠 만든 인공 신경망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인간의 두뇌는 무수히 많은 뉴런으로 구성되어 있죠. 이를 물리적인 형태로 만들어낸다면 아래 그림과 같은 기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다이얼이 달린 거대한 수학 구조물과 비슷합니다. 저 다이얼 하나하나가 두뇌의 뉴런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각각의 다이얼은 원하는 출력값이 되도록 가중치를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다이얼은 가장 작은 값을 조금 더 높이고, 두 번째 다이얼은 가장 큰 값을 살짝 더 낮추는 식이죠. 그런데 엄청나게 많은 다이얼이 달려 있습니다. 이 많은 다이얼은 어떻게 조절해야 할까요?
입력 데이터를 넣고 다이얼을 조절하면서 결과물을 확인한 후, 다시 조금씩 다이얼을 돌려 원하는 결과와 최대한 비슷하게 나오도록 조절하면 됩니다. 물론 이 작업을 사람이 직접 하진 않습니다. 데이터를 잔뜩 집어넣고 학습을 거쳐 자동으로 조절합니다. 처음에는 다이얼 값을 무작위로 설정하지만 학습을 진행하면서 점점 모든 다이얼이 정답에 가까워지도록 바뀌어갑니다.
모든 데이터가 정답에 가장 가까운 상태를 찾아 더 이상 다이얼을 조절할 필요가 없다면 비로소 학습이 끝나게 되죠. 이런 과정을 거쳐 모든 데이터가 정답에 가장 가까워지는 최적의 다이얼 위치가 결정됩니다.

(...) 그런데 이 점은 장점이자 단점도 됩니다. 조절할 수 있는 다이얼이 너무 많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몇 번째 다이얼로 인해 이런 결과가 나오는지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마치 인간의 생각을 이해하고 싶다며 두뇌를 분해해 무수히 많은 뉴런을 하나하나 조사해봐야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 인공지능 연구 초기에는 시스템이 왜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됐는지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해석 가능성Interpretability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이 때문에 논리적인 절차를 분석해 결정한 이유를 알아낼 수 있는 if-then 규칙 기반 시스템이 대세를 이뤘죠.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연구소장 크리스 비숍Chris Bishop, 1959~ 은 능숙한 엔지니어가 인공지능의 추론 과정을 분석한다 해도 이제 의미 없는 일일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합니다.7 왜냐하면 지금의 인공지능은 더 이상 인간이 해석할 수 있는 규칙을 거쳐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과거에 규칙 기반은 이해가 쉬웠지만 성능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지금처럼 뛰어난 성능을 내기 위해서라면 해석이 어려운 약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거죠.
- 1. 인공지능: 위대한 인공지능, 깨어나다 (인공지능의 핵심기술, 딥러닝의 등장)
컴퓨터의 두뇌가 CPU인 것처럼, 게임 그래픽 카드의 두뇌는 GPU입니다. CPU가 성능이 좋은 비싼 코어를 몇 개 장착한 구조라면, GPU는 상대적으로 성능이 떨어지는 저렴한 코어를 엄청나게 많이 꽂아둔 형태입니다. 저렴한 붓을 수천 개 갖고 있는 것과 같죠.
- 1. 인공지능: 위대한 인공지능, 깨어나다 (시스템, GPU가 인공지능을 완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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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늘 높이 날면 이런 광경도 볼 수 있다. 구름과 도시불빛에 가려져 있던 별들도 볼 수 있다.


비행기 여행의 큰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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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벤허 2부로 들어가보자.

벤허 1부는 그리스도 탄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면, 2부는 그로부터 20년쯤 뒤 어느 유대인과 로마인의 기싸움으로 시작하고 있다. 유다 벤허는, 유대민족 중에서 명망이 있고 또 로마인과도 관계가 괜찮았던 허 가문의 아들이다. 벤허는 어릴 적 친구였던 메살라와 오랜만에 조우하게 되는데, 세속적인 로마인으로 변모해버린 메살라의 모습에 벤허가 크게 실망하게 된다. 오로지 상대방 기분 상할 요량인듯 로마의 우월성과 유대민족의 비천한 상황을 거들먹거리는 메살라에게 벤허는 자존심이 크게 상한다. 여기서 벤허는 로마 (혹은 메살라)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방법은 세속적인 수단 (즉, 군 병력 측면)밖에 없다고 느끼게 되고, 이러한 뜻을 모친에게 이야기하게 된다. 그리고 모친은 벤허가 세속적인 열망을 거두게끔 부드럽게 타이른다.

벤허 가족의 단란함은 2부 말미에 벌어지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 더욱 슬프게 느껴진다. 작가 월리스는 벤허와 그의 어머니, 여동생 티르자, 유모 암라까지 해서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상호간 영혼의 떨림을 어찌나 예민하게 느끼고 있는지, 여러 지면을 할애하여 공들여 설명한다. 물질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유복한 가정이 일순간에 깨지는데, 내가 벤허였다면 엄청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서 제 구실을 못했을거다.


2부 서문에 적혀 있는 이 시는, 세속적 열망에 사로잡힌 벤허를 그리는 것이었는가.


한가지 주목할 점은, 벤허가 그리던 이상향이 유대민족의 부국강병(?)과 같이 세속적인 열망이었다는 점이다. 메살라에게 긁힌 자존심을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나라도 그러한 사고흐름을 따라갔을테다. 하지만 성경 신약을 읽어본 이들은 모두 알겠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민족의 세속적 독립이 아닌 영혼의 구원을 위해 내려오셨다. 2부 마지막에 세속적인 열망을 지닌 벤허와, 영혼 구원의 미션을 품은 예수 그리스도가 서로 스치게 되는 장면이 있다. 벤허는 나중에 이 장면을 기억하려나.

이쯤하고.. 인상깊었던 구절을 몇 개 가져와봤다.

황제는 아켈라오의 해임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예루살렘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사원의 고위 성직자들의 감정을 해했다. 유대를 시리아의 관할로 강등해 버린 것이다. 시온 산의 헤롯 왕궁은 왕이 없이 2급 관료인 총독이 다스렸고, 그나마도 로마와의 연락은 안디옥의 시리아 특사를 통해야 했다. 게다가 총독은 예루살렘에는 머물지도 않고 가이사랴에 거했다. 하지만 가장 큰 치욕은, 하필 가장 멸시받는 사마리아를 유대와 같은 속주로 묶은 것이었다. 편협한 분리주의자들인 바리새파는 가이사랴의 총독궁 앞에서 그리심 산 신자들에게 밀리고 조롱당하는 게 어찌나 견디기 힘들던지!
- 제2부 제1장 (p.118)

유대민족 당시 상황에 대한 배경설명을 해주어서 좋았다. 이런 글귀를 읽으니 우리나라 일제강점기와 로마의 유대민족 지배가 어떻게 닮았고 다른지 깊이 알아보고프다. 왠지 정리해둔 책이나 글이 있을듯.



이 청년의 말투를 글로 정확하기 옮길 수가 없다. 독자의 상상을 믿는 수밖에. 다만 로마인의 특성에서 경건함이 급속도로 사라졌음을, 아니, 경건함을 도리어 고루한 특성으로 여겼음을 지적해야 겠다. 옛 종교는 신앙이 아니다시피 되었고, 기껏해야 사고방식과 표현방식의 표현에 그치게 되었다. 사원 근무가 이득이라는 것을 아는 사제들, 시 구절에 써먹어야 하니까 신을 없애버릴 수 없는 시인들, 혹은 그런 경향이 있는 가수들 정도만 소중히 여겼다. 종교 대신 철학이, 경건함 대신 풍자가 들어섰다.
- 제2부 제2장 (p.124)

벤허야... 네 마음 잘 안다. 하필 메살라 같은 녀석을 친구로 둬서 네가 참 고생이 많다.



"(...) 율법의 어떤 부분들은 때로 불명확하기도 했지만 이 부분은 그렇지 않아. 선생은 직접 아담의 계보를 세 기간으로 추적했단다. 언약부터 성전 건립까지, 거기서 바빌론의 유수까지. 거기서 다시 현재까지. 2기가 끝날 무렵에 딱 한 번 기록이 끊어졌지만, 바빌론에서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스룹바벨이 하느님에 대한 첫 번째 의무로 되살렸어. 그래서 유대인 후손의 계보가 2천년 동안 끊기지 않을 수 있었지."
- 제2부 제4장 (p.148)

구약을 좀 더 꼼꼼히 읽어야 겠다고 느끼는게.. 아직도 성경인물이 헷갈리고, 더러는 선역과 악역마저 혼동되는 민망한 순간이 있다. 스룹바벨도.. 왠지 이름에 '바벨'이 들어가서 괜히 거부감이 들었으나 알고 보니 성전 건축 주역이었던... ㅠㅠ 정진하자.



"(...) 만약 우리 주님과 인간의 관계를 가장 단순한 형태로 표현해 보라고 한다면, 나는 직선과 원을 그릴 거야. 그리고 이렇게 설명하겠어.
'주님은 직선입니다. 주님만이 유일하게 영원토록 앞으로 나아가시기 때문입니다.'
'원은 인간입니다. 인간의 발전이 원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민족의 발자취가 똑같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민족의 역사는 다 달라. 다만 그 차이가, 흔히들 말하듯이 원의 면적에, 그러니까 차지한 땅의 넓이에 있는 게 아니야. 그들이 움직여 가는 영역에 있다. 신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간 민족이 가장 우월한 거야. (...)"
- 제2부 제5장 (p.152)

벤허를 달래는 모친. 신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간 민족이 가장 우월합니다. 아멘.



바리새파와는 달리 사두개파는 예술을 (이교도의 예술까지도) 폭넓게 사랑하는 자들이었다.
- 제2부 제5장 (p.156)

유대민족 당시 배경설명을 해주어서 좋았다 222



아, 그리고 제2부의 서문은 바이런의 시를 싣고 있는데, 바이런 시를 제대로 접해본 적은 없지만 바이런에 대한 짤막한 소개글을 읽은 바 있지. 바로 내가 애정하는 책, '지적생활의 즐거움' (P.G. 해머튼)에서! 이 토막글을 읽으면서 바이런의 영혼이 열병을 앓았으리라 짐작했는데, 서문에 실린 시를 보니 정말 그랬던 듯 하다.

바이런도 백퍼드와 비슷한 유형의 천재였습니다. 바이런의 가장 아름다운 시들 중 몇 개는 불과 한나절 만에 완성된 작품도 있습니다. 한나절 동안 바이런이 쏟아냈던 집중력은 얼마나 대단했을까요. 길어도 하루 이틀이면 세계문학에 길이 남을 명작들이 완성되었습니다. 단순한 재능을 넘어서 그 시들이 완성되기까지 바이런이 감당했던 집중력과 신경과민 상태, 흥분, 절망은 육체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의 내면에서 끓어오른 상상력이 출발점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에게 잠시의 이완이 더해졌더라면 바이런은 조금 더 오랫동안 우리 곁에 남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 책 '지적생활의 즐거움' 중 '다시 지나치게 일하는 젊은 작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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