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결과에 충격 먹은 것이 아니라, 치치파스의 표정과 제스처를 보고 충격 받았다. 내가 알던 치치파스는

 

Stefanos being very true to his emotions..

 

위 영상에서 보듯 이따금 사소한 자극에도 발작적으로 반응하는 신경질적인 사람이었는데, 이번 경기에서 그 낌새를 거의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경기 뿐만 아니라 코키나키스와의 경기에서도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아서 치치파스가 성격적인 측면에서 많이 바뀌었음을 느꼈다. 성격을 완전 개조한 것일까, 아니면 경기시간 동안만이라도 감정을 일시적으로 외면하거나 인내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일까? 한가지 확실한 점은, (부정적인) 감정 분출이 경기 운영에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치치파스가 깨달았다는 것이다. 

 

조코비치와 즈베레프는 이번 호주오픈에서도 라켓 참교육을 시전하였고 (링크1, 링크2), 스탠 바브린카도 2R에서 실망감을 라켓으로 표현하였다 (영상의 9분 22초대). 테니스 경기를 지켜본 지 4년이 넘어가는 동안 짜증을 내던 선수들은 여전히, 아직도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리스 장발 원핸더는 2019년 호주오픈에서 페더러를 이긴 이후 약 1,2년간 거친 언행과 불안한 눈빛을 숨기지 않고 보여주더니, 갑자기 잠잠해졌다. 다혈질적으로 흥분하는 태도가 경기에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깨달음을 실천에 옮겼다. 깨달은 건 둘째 치고, 흥분을 가라앉히는 데 성공하다니.. 그것도 이제 20대 초반에 접어든 신인 선수가.

 

쿠크다스 멘탈 보유자로서, 치치파스의 이번경기 press conference는 꼭 봐야겠다. 방금 올라온 on-court interview를 보니 짐 쿠리에도 치치파스의 멘탈 강화가 인상 깊었는지 재차 묻고 있다.

 

세번째 세트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작은새처럼 날라다녔고 모든게 풀리기 시작했어요. 지금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감정을 일정히 유지하기로 결심하고 경기에 임했는지에 대해) 네, 오늘 그러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제가 몇몇 경기에서는 그러지 못했지만요.. 감정 기복을 줄이고 중요한 순간에 침착했던 것이 오늘 경기에서 이길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시간으로 금요일 오후 5:30에 치치파스는 메드베데프를 상대로 경기를 치룬다. 2018년 경기에서 두 선수 간 해프닝이 있었는데 (bullsh*t russian), 이번 경기는 그래서인지 경기내용보다는 두 선수간 악수가 어떨지에 더 관심이 간다. (?)

 

 

 

 

세간의 인식과 달리 성체가 된 개복치는 그렇게까지 최약체는 아니란다 (그렇다. 나무위키 카더라다.)

 

자신감을 가지고 주눅 들지 말라는 주문은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나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중무장한 사람은 딱 질색이기 때문에 나 자신부터 그런 몰염치한 사람이 되기 싫었다. 실력과 인성의 크기가 자신감을 압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커리큘럼이 존재하는 정규 교과과정에서는 이런 태도가 여러모로 득이 됐다. 미리 김치국 드링킹했다가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쳐서 멘붕이 오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내 실력은 정기적으로 점수로 매겨졌기 때문에 자신감으로 능력을 포장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학교 선생님들은 모난돌 같이 튀는 아이보다 있는듯없는듯 공부하는 아이를 더 예뻐하기도 했다. 겸손이 미덕인 시절이 분명 존재했다. 나는 그 겸손이 지나친 나머지 자기비하를 일삼기도 했다. 그게 별 근거도 없이 당당한 것보다는 덜 꼴사납다고 생각했고 심지어는 쿨한 모습이라고 여겼다.

세월은 흘러흘러 대학시절을 보내고 직장인이 되었다. 내 성과가 정기적으로 수치화 및 공표되지 않는 상황, 교과과목이 정해져 있지 않는 상황, 자신감을 어느 정도 표하지 않으면 기회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상황, 그 빼앗긴 기회 때문에 내 사람 내 가족이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을 종종 맞닥뜨리게 되었고, 이 빈도는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다.

정신적 각성이 필요하다. 이전에도 지적 받은 바가 있어 노력은 하고 있었지만, 내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하다. 될 것도 안 되기 시작했다.

근자감 장착까지는 못할 것 같고, 일단은 지레 포기하고 심하게 자책하는 태도를 멀리해봐야 겠다.

2021 호주오픈 경기를 간간히 챙겨보고 있는데, 이목을 끄는 특이사항이 몇개 있다. 예를 들면,

 

# 선심이 사라졌다.

경기를 보다보니 ball person만 보여서 선심이 어디 갔나 했다. 이번 호주오픈에는 기계 판독을 전격 도입하여 in-out을 판단하기로 한 모양. 주심만 유일한 인간 심판으로 남아 있다. 그나마도 기계에 의한 시그널 (서브 렛, 아웃 등)을 선수에게 전달해주고, 관중에게 조용히 하라고 하는 정도로 역할이 축소되어 무기력해보였다. 기계가 Out 콜한 것을 주심이 over-rule할 수 있는지 규정이 매우 궁금한 상황.

 

# 오랜만에 관중 함성소리를 듣게 되었다.

근 1년간 그랜드슬램에서 보기 힘들었던 장면이다. 얼마 전 호주 아델라이드 오픈에서도 상당수의 관중이 있는 걸 보고 충격 먹었는데, 알고 보니 호주가 최근 Covid 신규 확진자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멜버른 파크에서 Covid 감염 위험이 현저히 낮다는 전문가적 판단이 있어 호주오픈도 관중을 받기로 한 모양이다 (기사 링크). 일방적으로 자국 선수 응원하고 선호도가 떨어지는 선수를 은연중에 방해하는 관중소리가 이따금 짜증나기는 했지만, 없는 것 보단 나았다. 솔직히 그리웠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빅토리아 주에서 Covid 감염사례가 확인되어 다시 Lockdown 모드로 돌아가는 중. 조코비치-프릿츠 경기 중 함성소리가 어마어마했는데, 다시 채널 돌려보니 적막만이 흘러서 무슨 일인가 했네. 경기 중에 강제 귀가조치를 했다고 (링크 1, 링크 2). Covid 재확산 위험 없이 호주오픈이 무사히 끝나고 모두가 건강하기를 빈다. 

 

# 기아 엠블럼이 바뀌었다는 걸 이제 알았다..

관전 중에 KN이라는 마크가 보여서, 기아가 후원자 목록에서 빠지고 KN이라는 기업이 들어왔나 했는데, 기아 엠블럼이 바뀐 거였다. 그것도 2020년 10월에... 시사에 무심한 내 특이한 성격에 다시한번 감탄하고 간다.

 

(+) 팀-키리오스 단식경기, 조코비치-프릿츠 단식경기를 지켜보면서 멘탈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다. 팀은 키리오스를 맹렬히 응원하는 관중 분위기에 맞서야 했고, 조코비치는 오른쪽 갈비뼈 부근에 통증을 느끼는지 움직임이 현저히 느려졌다. 두 경기 모두 풀세트 접전에 들어가서야 결론이 났다. 

 

반면 나는 방해요소가 없더라도 알아서 멘탈이 자멸하는 인간인데.. 멘탈 관리가 시급하다.

 

 

 

 

치치파스와 코키나키스 매치를 보았다. 

첫 세트부터 타이브레이크로 돌입, 엎치락 뒤치락하다가 결국 5세트 풀접전으로 접어 들었다. 코키나키스는 키리오스와 친하고(?), 치치파스는 경기 중에 아버지한테 대든(??) 전적이 있는 터라 두 선수 모두 멘탈이 약할 거라 속단했다. 그래서 2시간 내외면 끝날 줄 알았는데, 네시간 반동안 지속되어서 굉장히 놀랬다. 게다가 두 선수 모두 안전하게만 플레이하려 하지 않고 위닝샷을 많이 구사해서 경기가 늘어지지 않고 박진감이 넘쳤다. 결과적으로 치치파스가 6-7, 6-4, 6-1, 6-7, 6-4로 3라운드 진출에 성공했다.

 

경기 초반에 치치파스 상체가 뒤로 밀리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코키나키스 공에 무게감이 실려서인가 싶어 두 선수 프로필을 찾아봤는데, 둘이 신장은 똑같이 193cm이고 체중은 오히려 치치파스가 5kg 더 무겁대서 당황스러웠다. 코키나키스가 몸통 회전을 더 잘하는건가, 신체구조가 남다른건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번외로, 디에고 슈워츠맨은 단신인데도 뒤로 상체가 젖혀지는 느낌이 거의 안 들던데, 왜지...)

 

코키나키스가 84kg으로 치치파스보다 5kg 가볍다. (출처: ATP)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치치파스가 메드베데프랑도 실랑이를 벌이는 등 다혈질적인 캐릭터였던 것 같은데, 오늘 멘탈을 굳게 부여잡는 모습을 보여줘서 의외였다. 서브시간 및 코칭으로 경고를 받고, 자국 선수에 대한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 등이 겹치면서 평정심이 많이 흔들렸을 법 했는데 꾹 참고 승리로 화답하더라. 신기했고, 조금더 지켜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시간 내에 이렇게 빨리 성숙해졌다니..? 

 

오늘 치치파스의 승리 원인은 1. 평정심을 지키고, 2. 공격적인 시도를 아낌없이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브레이크 기회를 상당수 확보하고, 네트 어프로치도 32번 하는 등 파워게임에서의 열세를 전환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 이 포스팅을 작성하는 와중에 나달이 관중석에 앉은 어떤 여자에게 손가락 욕을 먹고서는 어안이 벙벙해하고 있다. 이내 웃고 넘기더니 서브 에이스를 꽂아넣는 간지를 선사함.

어이없어 웃는 나달. 월클 멘탈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술을 마시면 다음날 후유증이 심해서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신앙 때문이다. 술잔을 단번에 입에 털어넣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사랑을 받기가 참 쉽다. 이런 간편한 방법을 몇년 전부터 포기했다. 이따금 눈치를 볼 때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참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숙취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며, 사리분별이 정확해졌고, 무엇보다도 주님이 싫어하실 만한 행동과 말을 덜 하게 되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는가, 성경은 술 취하는 것을 금할 뿐 음주 자체를 금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 이러한 질문에 직면하곤 한다. 내가 아직 영적 깊이가 없어서인지 이런 문제제기에 반박할 말이 없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성경이 음주를 권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 음주의 목적은 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음주와 술 취함을 다르게 볼 이유가 없다. 


(누가복음 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로마서 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고린도전서 6: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갈라디아서 5:19~21)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잠언 23:20,21)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 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잠언 23:29~31)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술 선물을 받아 종종 난감할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을 주자니 선물 준 사람의 호의를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정작 나는 술을 백해무익한 것으로 여기면서 그 백해무익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 옳은 일인지 고민하던 차..! 적당한 방법을 찾았다. 요리나 뱅쇼로 만들어서 알콜을 날려버리는 것이다.

이거는 포도주를 사용한 뱅쇼 조리과정 사진이다. 주변이 굉장히 더러운데 무시해주시면 감사.. 조리법은 하다앳홈 유튜브 (링크)를 참고했다.

 

샴페인의 경우에는 Creamy Champagne Chicken 만들 때 양파에 신 맛을 보태는 용도로 첨가하였다. 조리법은 이 링크를 참고 부탁드린다. 근래 내가 한 요리 중에 제일 맛있었다. 아무래도 조리법에 들어가는 올리브 오일이 톡톡히 제 역할을 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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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년 가까이 붙들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어제 다 읽었다. 끝마무리 짓기 힘들어하는 나로선 완독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쁘다. 삼천포로 잘 빠지는 성격인지라, 턴키 방식, 체비지와 같이 모르는 개념이 나오면 검색하려고 스마트폰을 집어들고는 이내 유튜브 영상을 보는 본인을 발견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여간 재미있게 읽었다. 원래 논밭이 많고 저지대라 침수가 잘 되던 미개발 지역이 몇십년 새에 서울 노른자 땅으로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이 복잡하고 흥미롭다. 원래 섬이었던 잠실이 뭍이 되기까지의 과정, 예술의전당이 지리적으로 접근하기 힘든 이유, 목동 주민의 투쟁과정 등등 여러 에피소드를 읽고 나니, 서울이 다시 보였다. 대법원과 국회의사당이 고층건물도 아닌데 우뚝하니 돋보였던 이유를 되짚기도 하고, 아크로비스타와 목동에 아픈 과거가 있었음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쉬웠던 것은, 지도 자료가 풍부하게 실리지 않았던 점이다. 가령 잠실섬과 부리섬의 위치, 한강다리 위치를 저자가 줄글로만 위치를 설명하니 도무지 머리 속으로 그려지지 않아 인터넷을 헤매야 했다. 추후에 개정증보판을 내게 된다면 사진만큼이나 지도자료도 보완을 해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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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테니스 실력이 왜 이렇게 안 늘까? 계속 고민하고 관련 유튜브 영상을 전전하다가, 매우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공을 치는 시점에 밸런스를 잡지 않고 몸이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내가 이러한 악습관이 있고 고쳐야 한다는 점은 일찍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타격 시점에 밸런스를 잡지 않는 악습관이 다른 악습관에 비해서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내 게임에 악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이제껏 내가 접한 스포츠와 운동들은 주로 축구, 농구, 배구, 무술 등이었는데, 잠시 몸을 정지시키는 행위가 승패에 엄청난 영향을 주지 않는 종목들이었다. 발란스가 깨져서 몸이 무너져 내려도 내 팀원한테 패스하거나, 상대방 선수가 먼저 몸이 무너져 내릴 때까지 안간힘을 버티며 기다리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이제껏 접한 운동들은 상대방 선수와 내 팀원과 뒤범벅이 되어서 순서랄게 없이 모든 움직임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다.

테니스는 이와 달리 턴제 게임인데, 상대방이 공을 쳐서 코트를 넘어와야 내게 타격권이 주어진다. 상대방이 공을 잘 못 치도록 태클을 걸 수도 없고, (복식일 경우에는) 한번 내 라켓을 맞은 공은 내 파트너에게 어시스트랍시고 패스할 수도 없다. 물론 상대방이 어떻게 주었냐에 따라 구질이 달라지지만, 기본적으로 상대방 라켓을 떠난 공은 내 코트에 넘어올 때까지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공이 내 타점에 다다라서야 나는 딱 한가지 샷을 구사할 수 있다. 이건 참 애석한 일이다. 축구 같으면 드리블 같이 공을 여러번 접촉해서 컨트롤할 기회가 여러번 있고, 내 몸이 무너져도 팀원에게 공을 넘겨 위기를 모면할 수도 있는데, 테니스는 딱 한번의 순간에 무조건 상대 코트로 넘겨야 한다. 복식 파트너는 나와 코트를 분할해서 쓰는 이상의 협력 플레이를 기대하기 어려우며, 어시스트, 패스의 개념이 없다.  


상대방이 공을 쳐서 내 턴이 되면, 나는 그 공을 정확한 시점에 정확한 자세로 맞추어야 하고, 그를 위해서 순간 정지 모션이 되어야 한다. 공이 멀리 떨어져 어쩔 수 없이 움직인다고 할지라도 공에 다다라서 치는 그 순간은 시간이 멈춘것만 같은 기분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종목과 달리 테니스는 내 턴이 돌아오면, 기회는 딱 한번 뿐이며, 그 기회는 오롯이 상대방 코트에 보내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알맞은 타이밍에 알맞은 각도로 상대코트의 빈곳을 찔러넣기 위해서 나는 잠시 멈추어야 한다.  


이 엄청난 깨달음(?)을 한마디로 멋있게 포장하고 싶은데,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 하여간 테니스는 턴제 게임이다. 모든 것은 여기서 비롯된다.


마스터즈 급 대회인 이탈리안 오픈에서 이변이 많았다. 18살짜리 루키인 로렌조 무세티가 잔뼈 굵은 바브린카와 니시코리를 꺾었고, 170cm 단신선수 디에고 슈워츠먼이 흙바닥에서 흙신 나달을 꺾었다.

2018 호주 오픈에서 나달과의 경기를 지켜본 일이 있었는데, 순간 '슈워츠먼 승산이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키가 작은 것 치고는 테니스를 잘한다는 말은 굉장히 부적절했다. 키를 떠나서 정말 잘하는 선수다. 그라운드스트로크도 기본적으로 좋지만, 제일가는 장점은 볼 컨트롤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로브, 드롭샷, 발리, 트위너(..)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네트플레이를 편하게 여기는 것 같다. 다양한 샷메이킹 능력이 뒷받침 되어주니 상대선수 발이 묶이게 공을 잘 찔러넣는다. 

이번 나달과의 경기에서 디에고의 화려한 샷메이킹을 볼 수 있다. 발군의 컨트롤이다. 

이날의 Vamos는 디에고의 것

이번 마스터즈 대회에서는 아쉽게도 조코비치에게 밀려 준우승에 그쳤다. 하지만 이 경기도 처음에는 조코비치 게임을 두번이나 브레이크했다. 디에고는 명경기 장인이네. 

JTBC에서 슈워츠먼 경기해주는 날은 무조건 챙겨봐야 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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