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읽혔다. 가벼워 보이는 제목 뒤에는 가볍지 않은 고찰이 자리잡고 있었다.

 

사안의 요모조모를 곱씹어 본 뒤 장기하가 내린 결론은, 세상사 중 상당부분은 크게 걱정하고 고민하고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결론이 싱거운가? 하지만 싱거운 음식이 몸에 좋듯이 싱거운 결론도 정신건강에 좋다. 단순한 한줄짜리 결론을 위해서 260쪽 남짓의 책을 쓴 것은 "상관없다"는 것을 납득시키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독자를 설득하기 이전에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한 과정 말이다. 

 

나는 생각이 많아서 인생스텝이 종종 꼬이는 인간인데, 장고 끝에 심플한 결론을 내리는 장기하의 사고방식이 신선했다. 오랜 시간 고민했다고 복잡한 결론을 내란 법은 없는데 말이지. 시도해봄직하다. 인상 깊었던 몇가지 구절을 인용하고 서평을 이만 줄이고자 한다.


나는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산다. 그런데 이것은 달리 말하면 하고 싶은 것이 없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한다. 물론 공연이라든지 녹음이라든지 정해진 일정이 있을 때는 그럴 필요가 없지만, 그 일정들도 따지고 보면 매일 고민한 결과로 생긴 것들이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나는 잠에서 깨는 순간 출근을 하는 셈이다. 정신이 들자마자 '너는 무엇을 하고 싶냐'고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물음에 나 자신은 그리 자주 대답해주지 않는다. 대답을 듣더라도 불명확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뾰족한 수 없이 하루를 지나 보내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너무 실망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크게 좌절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하루의 어느 순간에는 스스로 퇴근해야 한다. 그런데 이 퇴근이라는 것도 간단하지 않다. 정해진 장소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뇌만을 이용해 내 뇌를 퇴근시켜야 한다. 그것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고? 나 역시 아직 연구하는 중이다.
   -'자유의 그늘' (116~117쪽) → (사견) 재택근무의 고충을 잘 알 수 있는 문단이다.

 

다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자유롭다고 자부하는 나의 삶도 늘 시원스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퇴사에 관한 산문들을 읽으며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직장인분들이라면 십중팔구 나 같은 사람을 부러워할 것이다. 하지만 뭐랄까, 나는 삶이란 늘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더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더 외로워질 것도 각오해야 한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란다. 자유 따위 좇아봤자 소용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글에서만도 여러번 반복했지만 나는 자유를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고, 따라서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분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당신의 오늘 하루가 원하는 만큼 자유롭지 못했다고 해도, 바로 그 때문에 누렸던 무언가는 있을 것이다. 내가 하루종일 막막함에 시달렸고 그래서 방금 밤 산책을 하며 쓸쓸함을 느끼긴 했지만 어쨌건 오늘도 마음대로 사는 데 성공한 것처럼 말이다. 
   -'자유의 그늘' (119~120쪽)

 

다가오는 방식이 제각각이니 내 기분 역시 그때그때 다를 수밖에 없다. 가끔 너무 무례하게 말을 거는 분을 만나면 기분이 나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어느 정도는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내 직업은 기본적으로 관심을 먹고사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헐, 대박, 장기하!' (122쪽)

 

나는 사람의 죽음도 일몰을 바라보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연인과 헤어지거나 유학길에 오르는 친구를 배웅하는 일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죽음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 아니냐고 묻고 싶은 분도 있을지 모른다. 만약 그런 분이 있다면 조심스레 되묻고 싶다. 혹시 일몰을 바라보고 연인과 헤어지고 친구를 배웅하는 일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냐고 말이다. 

   -'만약 의견을 낼 수 있다면' (237~238쪽)


아 참, 그리고 '상관없는 거 아닌가'로 시작해서 '상관없는 거 아닌가'로 끝나는 수미상관 구성도 깨알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프롤로그 (13쪽)
에필로그 (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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