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TVING 현장포토 (사진에 링크 첨부)

내 친구 중에 배낭여행에 미친 애가 있는데, 뭐가 그렇게 좋아서 자꾸 가냐 물었더니 비밀을 말하러 가는거래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번 보고 다시 안 볼 사람들이니까. 

뭐 서로가 서로에게 익명이니까 잘 보일 필요가 없는거죠.

내 비밀, 내 수치, 내 과오, 내 약점, 내 고통.. 솔직하게 다 말할 수 있는거래요.

날 가장 모르는 사람에게 가장 솔직할 수 있는 거, 뭔지 조금 알 것 같아요. 지금 우리 같은 거잖아요.

   - TVN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2화 中

 



갑자기 일터에서 영어 발표를 맡긴 적이 있었다. 그간 스피킹을 손 놓고 있던터라 급한 마음에 영어회화 수업을 신청하게 되었는데, 심리치료(?) 효능이 있을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선생님이 학생을 진지하게 신경써주는 진중한 영국인이었던 탓이었을 수도 있고, 외국어로 진행되다 보니 내 상황을 다시 돌아보게 된 탓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상대방이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나와 얽힌 이해관계라고는 수강료 수준의 금전관계가 전부인 동료인간이라는 점이었다.

 

1주일에 한번, 정해진 주제에 대해 50분 남짓의 시간동안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사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최근 이런 일이 있어서 창피했다, 기뻤다, 뿌듯했다, 화가 났다 - 속에 담아두었던 마음을 어느 정도 진솔하게 털어 놓을 수 있었다. 반면 일상생활 (직장, 친구관계, 집 등)에서는 자기검열이 필요했다. 내가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면 누군가는 마음이 (혹은 밥줄이) 다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힘겨워하는 사람이 친구의 친구인 경우가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죽이 잘 맞던 베프와 모종의 이유로 오늘 갑자기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다. 차라리 의뭉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면 알다가도 모를 인간관계에서 중박은 칠 수 있다. 열렬한 옹호관계가 없는 대신, 원색적인 대적관계도 없기 때문이다.

 

영어회화 수업은 계속 듣고 있다. 너무 오랜 기간 한 선생님과 하면 결국은 이해관계가 생기는 건 아닐지 조금 걱정된다. 감정이 쌓이는 것도 일종의 이해관계이니까. 적당한 시기에 다른 선생님으로 교체를 요청해야 할지 고민이다. 교체가 된다면, 선생님은 '좀 부담스럽던 차였는데 잘 되었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교체 사실에 상처를 받을까..

 

보통 나는 맺고 끊는 걸 잘 못해서 유사한 고민을 계속하다가 결국 사고를 치고는 했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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