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테니스 실력이 왜 이렇게 안 늘까? 계속 고민하고 관련 유튜브 영상을 전전하다가, 매우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공을 치는 시점에 밸런스를 잡지 않고 몸이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내가 이러한 악습관이 있고 고쳐야 한다는 점은 일찍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타격 시점에 밸런스를 잡지 않는 악습관이 다른 악습관에 비해서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내 게임에 악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이제껏 내가 접한 스포츠와 운동들은 주로 축구, 농구, 배구, 무술 등이었는데, 잠시 몸을 정지시키는 행위가 승패에 엄청난 영향을 주지 않는 종목들이었다. 발란스가 깨져서 몸이 무너져 내려도 내 팀원한테 패스하거나, 상대방 선수가 먼저 몸이 무너져 내릴 때까지 안간힘을 버티며 기다리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이제껏 접한 운동들은 상대방 선수와 내 팀원과 뒤범벅이 되어서 순서랄게 없이 모든 움직임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다.
테니스는 이와 달리 턴제 게임인데, 상대방이 공을 쳐서 코트를 넘어와야 내게 타격권이 주어진다. 상대방이 공을 잘 못 치도록 태클을 걸 수도 없고, (복식일 경우에는) 한번 내 라켓을 맞은 공은 내 파트너에게 어시스트랍시고 패스할 수도 없다. 물론 상대방이 어떻게 주었냐에 따라 구질이 달라지지만, 기본적으로 상대방 라켓을 떠난 공은 내 코트에 넘어올 때까지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공이 내 타점에 다다라서야 나는 딱 한가지 샷을 구사할 수 있다. 이건 참 애석한 일이다. 축구 같으면 드리블 같이 공을 여러번 접촉해서 컨트롤할 기회가 여러번 있고, 내 몸이 무너져도 팀원에게 공을 넘겨 위기를 모면할 수도 있는데, 테니스는 딱 한번의 순간에 무조건 상대 코트로 넘겨야 한다. 복식 파트너는 나와 코트를 분할해서 쓰는 이상의 협력 플레이를 기대하기 어려우며, 어시스트, 패스의 개념이 없다.
상대방이 공을 쳐서 내 턴이 되면, 나는 그 공을 정확한 시점에 정확한 자세로 맞추어야 하고, 그를 위해서 순간 정지 모션이 되어야 한다. 공이 멀리 떨어져 어쩔 수 없이 움직인다고 할지라도 공에 다다라서 치는 그 순간은 시간이 멈춘것만 같은 기분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종목과 달리 테니스는 내 턴이 돌아오면, 기회는 딱 한번 뿐이며, 그 기회는 오롯이 상대방 코트에 보내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알맞은 타이밍에 알맞은 각도로 상대코트의 빈곳을 찔러넣기 위해서 나는 잠시 멈추어야 한다.
이 엄청난 깨달음(?)을 한마디로 멋있게 포장하고 싶은데,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 하여간 테니스는 턴제 게임이다. 모든 것은 여기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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