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꽃은 자세히 쳐다보고 있노라면 병아리 같이 올망졸망하니 귀엽다.

오랫동안 책장에 방치되어 있던 '지적 생활의 즐거움'을 다시 꺼내들었다. 그리고 미처 다 받아적지 못했던 인상깊었던 구절을 기록해나가기 시작했다. 몇백년 전에 살았던 영국인이 내가 생각하던 주제들을 짚어서 조목조목 이야기해주다니, 새삼 책이라는 매개체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우리를 지적으로 만드는 힘은 배운 지식과 익힌 교양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아름다운 단면들을 스스로 발견해내려는 노력과 인간답게 살아가는 기쁨을 만끽하려는 타고난 본성일 뿐입니다. 지적 생활이란 무엇인가를 이룩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순수하게 삶의 진리를 찾아나서는 아름다운 여정입니다. 그것은 가장 위대한 진리와 작은 진리 사이에서, 반드시 따라야 하는 정의와 개인의 생활 사이에서 늘 꿋꿋하고 당당하게 고귀한 쪽을 선택해나가는 것입니다. 

-'서문'에서

인생의 아름다운 단면들을 스스로 발견해내려는 노력, 늘 꿋꿋하고 당당하게 고귀한 쪽을 선택해나가는 것이라니. 필립 길버트 해머튼은 어떻게 이런 표현을 생각해내는 것일까. 본질을 꿰뚫어버리는 그의 표현에 가슴이 뛴다. 이것도 배워야 하고, 저것도 배워야 하고, 주어진 시간 내에 정해진 학습량을 끝마쳐야 함을 역설하는 건조하고 기계적인 책이 아니어서 정말 기뻤다. 마음 맞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기분이다. 평범한 단어만으로 진실을 외치는 문장이 내 마음을 후드려 팬다. 홈런이야 당신, 홈런이야. 

번역도 꽤 매끄럽게 된 편이다. 읽으면서 흐름이 끊긴 순간이 많지 않았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번역이었다. 원문 번역이 아니고 편역이어서 문체가 조금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던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편역본과 원서 간에 내용 차이가 있는데, 아마존에서 "The Intellectual Life"를 다운받아보니 로마 카톨릭과 같이 편역본에 없던 주제가 몇개 보였고, 반대로 편역본에 실려 있던 시구가 원서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더라. 해머튼의 다른 저서에서 가져온 것인지 상당히 궁금하다. 정체불명의 그 시구를 끝으로 이 쪽글을 마친다. 1년 뒤에 읽어도 흥분이 가지 않는 책이라 몇 번 더 포스팅할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 옛날 어느 페르시아 시인이 남긴 독백을 당신에게 들려드리겠습니다.

  길도 없는 험한 바다에 나를 띄운다.
  지금부터는 고독만이 유일한 재산이다.

  내 순례의 걸음이 나의 영원한 조국을 찾을 때까지
  멈추지 않기를 날마다 기도한다.

  나의 두 무릎은 두 번 다시 대지를 밟지 않을 것이다.
  나의 영원한 조국을 찾을 때까지.

  그날 이후 월계수는 나를 위해 꽃을 피우지 않았고,
  나의 이마를 장식했던 가시면류관도 땅에 떨어졌다.

  나를 낳아준 고독이여!
  고통은 짧고 기쁨은 영원했다.

-Chapter "고독한 작가의 삶을 두려워하는 친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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