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하는데 그냥 하기 싫다.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관심도 없는 과목을 공부해야 했던 학창시절부터 이어져 오던 유구한 감정이다. 하기 싫다고 안 하면 스트레스가 더 쌓이니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는데, 그냥 너무 하기 싫다. 이럴 땐
- 흐린 눈을 하고 평소 지력의 50 퍼센트만 쓴다. 평소 지력을 다 활용하면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상태를 자각하게 되어 작업을 멈출 위험이 있다. 음악이라도 들어서 주의를 분산시켜야 한다.
- 다른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이메일을 쓴다고 생각하지 말고 잡지에 실릴 글을 쓴다고 상상해보자. 내가 설득하는 이 상대가 매일 만나는 상사가 아니고, 일생일대의 기회를 내어줄 수 있는 잠재고객이라고 생각해보자.
- 나노 단위로 작업을 분절하여 나노 작업만 하고 그만 해야지, 라며 행복회로를 돌린다. 나노작업 1에 어찌저찌 착수하면 저도 모르게 나노작업 2, 3, 4에 몰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방법은, 나노단위로 분절하는 것마저도 귀찮으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2021.03.08 - 회사에서 알터릭스 라이선스는 구매해줬는데 아직 사용법이 익숙치 않다. 알터릭스 커뮤니티 (링크)에 가입해서 Interactive Lesson 완강을 목표로 하고자 한다. 이미 몇개는 듣긴 했다.
2021.03.11 - Interactive lessons의 creating analytic apps 카테고리 듣고 있다. creating drop downs까지 수강함.
2021.03.12 - creating analytic apps 의 customizing error messages까지 수강함. 이거 끝나면 alteryx for excel users 카테고리 들어야 할듯
2021.03.22- creating analytic apps의 남은 두 강의를 결국 다 듣지 못하고. 여기저기 다른 카테고리의 interactive lessons를 들었다. 계획대로 들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보다 이렇게 내 순수한 궁금증에서 비롯된 need-based 수강 패턴이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루틴은 원래 별거 아닌 걸 매일 성실하게 하는 거다. 그리고 나에겐 이 루틴도 꽤 버거웠던 때가 있었다. 그땐 일과 걱정이 끊이지 않아서 잠에 들면 안 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살았다. 돌이켜보니 강박에 열심히 시달리기만 하고 업무효율은 뒷전이었던 것 같다. 하여간 이 루틴을 확립하고 수면의 질과 업무효율이 개선되었으며, 성격이 조금더 부드러워졌다.
요즘 추가하고 싶은 루틴은 (아침)운동루틴이다. 예전처럼 PT를 가지 못하니 집에서 계속 늘어지기만 한다. 가끔 홈트레이닝을 하긴 하는데, 루틴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심리적 장벽이 낮아지지 않고 있다. 어느 부분에서 부담을 느끼고 있는지 생각을 해봐야 할듯.
테니스는 고독한 면이 있는 듯 하다. 코트 너머에 상대 선수가 있고 복식게임의 경우 파트너가 있지만, 내게 넘어오는 공은 내가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 ATP 경기, 그랜드슬램 경기의 경우에는 경기 중간에 코치가 선수에게 조언을 해줄 수 없다. 철저히 내 신체능력과 지력만으로 네트를 넘겨야 한다.
공을 끝까지 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들었건만 계속 빗맞는다. 나는 공을 끝까지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무심결에 시선이 미리 목적지를 향하나 보다. 답답해하시는 코치님을 앞에 두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친 공이 in인지 out인지, 코트 어디에 떨어지는지 너무너무 궁금한걸! 내 실력에 확신이 없어서 공의 목적지에 눈길이 가게 되는데, 바로 그 행동이 내 실력에 악영향을 미치는 이 아이러니란..
내가 계속 말귀를 못 알아듣자 결국 코치님은 다음과 같은 주문을 하셨다: 공을 친 직후 잠시동안 contact point를 쳐다봐라. 공이 어디 갔는지 보지 말고.
타구 결과를 즉시 확인하고 싶은 나에게 여간 부담스러운 주문이 아닐 수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공을 친 다음에 억지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코치님이 "제발 이렇게 쳐. (흡족)"라고 말씀해주신 덕에 포핸드 드라이브가 제법 멋지게 들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는데!) 여하튼 "(i) 공에 시선이 고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ii) 몸을 정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낀 날이었다.
테니스 치면서 인생 사는 법도 다시 익히는 기분이다. 인생이 던져주는 공에 집중해야 하는구나. 공이 떨어질 목적지를 보면 안 되는구나. 돌이켜보면 정말 계획 (목적)을 세워서 잘 풀린 적이 거의 없었다. 그 계획이 아무리 현실적일지라도 삶은 내게 기대 이하의 것만 안겨주었다. 반면, 지금 하고 있는 공부, 일, 작업 자체에 재미를 느꼈을 때에는 분에 넘치게 받았다. 재미를 느낀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상받는 기분이었는데 좋은 성적, 타인의 인정, 그리고 (가끔) 금전적 보상이 덤으로 주어졌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깨우침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란 사람은, 현재의 범사에 집중하고 기쁨을 느끼고 감사하기만 하면 된다. 미래는 기대하지도 걱정하지도 말자. 점을 찍는 것은 나지만, 그 점을 이어 그림을 그리시고 채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니!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자!
(+) 여담으로, 로한 보판나 (Rohan Bopanna)라는 인도 테니스 선수가 있다. 땅에 내리 꽂는 서브가 인상적인 선수인데, 집안이 커피 농장을 운영하고 있어서 (링크) 보판나가 도끼질을 꽤나 했단다. 해설위원은 보판나의 파워서브가 도끼질 덕을 봤을 거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보판나 본인은 서브를 잘 하려고 도끼질을 하지는 않았을 거다. 집안일 도우려고 한 도끼질이 그의 테니스 생활을 조금이나마 윤택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