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너가 능히 이길 줄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번 시합에서 예상치 못했던 점들이 있었다.


일단 (내 기억하기로 베이스라인으로부터 한참 뒤쪽에 자리잡던 선수였던) 메드베데프가 플레이스타일을 바꿔서 그렇게 베이스라인 근처에서 랠리할 줄 몰랐고

(갑자기 다른 플레이스타일을 시도하면 오히려 범실이 많아지는 경우를 많이 봤기에) 그렇게 변경한 플레이스타일이 메드베데프의 초반 1,2세트 선취를 이끌 정도로 경기 전반을 뒤흔들 줄 몰랐고

(예전에는 관중이나 체어엄파이어와 설전을 벌이기도 했던) 메드베데프가 일방적으로 시너를 응원하는 관중에 대해 별 불평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한 2년 전쯤의 호주오픈 결승전에서 메드베데프가 나달과 트로피를 두고 경쟁할 때, 일방적으로 나달을 응원하던 관중들이 생각났다.

어떤 관객은 메드베데프의 서브를 방해하려는 듯 고약한 타이밍에 괴성을 지르기도 해서, 메뎁 팬이 아니었음에도 매우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메뎁도 암묵적이나마 이런 부분을 짚었었다 (링크).

당시 나는 메드베데프의 의견에 일견 동조를 했고, 오늘 경기에서도 그런 불만을 표시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경기에만 집중했다.

굳이 관중을 자극하여 더욱 불리한 상황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 걸 수도 있고,  외부적인 요인에 신경이 안 쓰일 정도로 테니스 실력이 더 무르익은 걸 수도 있겠지만, 둘 중에 그 어느 것이 되었든 존경스럽다고 생각한다.



멘탈이 한층 더 단단해져서 돌아온 메드베데프, 그리고 젊은 나이에도 침착함을 유지하기로 정평이 난 시너가 서로 실력으로만 겨루고 결과를 성숙하게 인정하는 장면을 목도하게 되니, 그간 일상생활이나 뉴스면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많이 해소되었다.



야닉 시너.. 잘 될 줄 알았지만 앞으로 더 잘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해설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한건지 '이렇게 겸손하고 침착하고 완성된 선수가 우승하다니, 너무 기쁘다', '테니스 계는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들을 해대며 한마음 한뜻으로 축하하고 있었다.  

야닉 시너의 건강한 2024년을 빈다.



좌우지간, 즐겁고 뜻깊은 2024 AO였음!

(덧붙여, 눈여겨보던 보판나 (Bopanna)가 남성 복식에서 엡덴과 함께 우승하고, 슈웨이 (Hseih)도 여성복식/혼성복식에서 우승했다. 보판나, 슈에이 너무나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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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태복음 6장 33-34절)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장 41-42절)





벌려놓은 일도 많고 주어진 일도 많아서 혼란스럽고 집중이 안 된다.

마음만 바쁘고 일상의 기쁨은 잊은 채 전전긍긍하다가,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에 와서까지 못다한 일에 마음이 쓰여 잠과 싸우다가, 결국 지쳐 잠드는 회수가 늘어났다.

심지어는 집에서 야심한 시각에 뭐라도 더 해보겠다고 깨있으려다가 유튜브 영상과 야식만 잔뜩 섭취하고 잠에 드는 경우도 있다.

기본적인 잠자리 준비도 하지 못하고 잠옷도 입지 못한 채 기절하듯 잠에 드니, 요즘 수면의 질이 좋지 않다.

전날 푹 자지 못했다는 생각에 하루의 시작도 괜히 꿍하다.



이런 상황을 면할 요량으로 성경 말씀을 붙드는 나를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기댈 수 있는 의지처가 성경말씀 밖에 없다.

일단 잘 시간이 되어 집에 돌아오면 바로 잘 준비를 하고 미련없이 자야 겠다.


'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 中 (나가오카 겐메이 著)



'약한 연결' 中 (아즈마 히로키 著)


 
평일에 직장인으로 성실하게 살기 위해, 간단하게 적고 일찍 자는 것으로...


 
리샤르 가스케는 원백을 사용하는 낭만가이인데, 이제 37살로 노익장이 되어버렸다. (세월이여...)

그런 그가 ATP 2위의 혈기왕성한 카를로스 알카라즈와 맞붙게 되어 금이 간 유리장 처럼 깨질까 걱정되었는데, 그는 금 간 유리장이 아닌 부직포였음이 입증되었습니다..

승리는 예상한 대로 알카라즈에게 돌아갔지만 첫번째 세트에서 보여준 가스케의 경기 운영 능력은 예상 외로 질겼다.

상대방을 코너로 몰아넣고 원백 다운더라인으로 보내버리는 낭만샷을 계속 보기 위해서라도, 가스케가 롱런했으면 좋겠다.

 
 

 
 상쥔청과 알카라즈의 경기는 두번째 세트서부터 보기 시작했다.

상쥔청 오른쪽 허벅지가 안 좋아 보였는데, 그런 조건에서도 생각보다 스트로크가 좋아서 놀랬다. 하지만 알카라즈가 넘사벽...

상쥔청이 결국 메디컬 타임아웃을 가지기에 알카라즈 눈치를 (내가) 슬쩍 봤는데, 알카라즈는 한껏 경기장의 열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월등한 실력자는 저렇게 관대하고 여유로울 수가 있구나. 조금 부러웠다. 상대방의 메디컬 타임아웃 가지고 항의하는 선수도 종종 봤는데 말이다..

우리나라 해설위원이 상쥔청은 경기 승패를 떠나 알카라즈와 공을 주고받는 경험을 최대한 많이 가져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으나, 3세트에 진입하자마자 상쥔청은 기권을 선언했다.

본인 몸은 본인이 제일 잘 아니까 기권할 수는 있는데, 그 경기에는 중국인이 꽤 많이 관전하러 왔기 때문에 그의 결단이 굉장히 기이하고.. 멋있어 보였다.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어떻게든 시합을 이어가려고 했다가 몇개월 간 부상으로 쉬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여자 단식을 보면서 이렇게 흥분할 줄은 몰랐다.

애초에 이 경기를 볼 생각이 없었다. (슈비옹텍에 큰 관심이 없어서...)

그런데 노스코바가 여자단식 1위 슈비옹텍을 상대로 생각보다 꽤 잘 하는 것이다!

아니, 꽤 잘 하는 정도가 아니고.. 19살에 저 수준이 말이 되나? 싶을 정도로 안정적인 스트로크를 구사하질 않나, 서브 마저 정교하게 T존 내지는 와이드에 내리 꽂더라.
 
슈비옹텍은 위기감을 느꼈는지, 2세트가 끝나고는 화장실도 다녀와보고 경기 후반부에 노스코바 서브를 지연시키려 라켓도 들어보는 등 애를 썼지만... 탈락.

솔직히 막판에 슈비옹텍 굳이 라켓을 들어서 상대방 서브 리듬을 빼앗으려는 듯 보일 때는 괜히 내가 화났는데, 노스코바가 이기니까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

슈비옹텍도 저렇게 간절하게 구니까 경기가 볼만했던 것일 수도.

어찌 되었든 공을 어떻게든 받아보려고 한발이라도 더 내딛고 팔을 더 뻗어보려는 분투가 있는 경기가 재미있는 것이다.

못 받을 줄을 알고 일찌감치 포기하는 선수를 볼 정도로 내가 여유 있지는 않다.



 
스비톨리나 vs 골루비치 경기.  순전히 골루비치가 나와서 본 경기이다.

예상했던 대로 골루비치는 0-2로 패했다.

처음 골루비치를 눈여겨 보게 된 것은 여자 테니스 선수 중에서 희귀하게도 원핸드 백핸드를 구사하는 선수여서였지만,

골루비치의 행적을 지켜보게 만든 것은 그녀가 독특한 멘털리티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경기에서 지나 이기나 그녀는 감정에 기복이 거의 없다. 이따금 어이없는 실수가 나오면 허벅지를 때리는 등 분노를 표출할 때도 있지만, 그때일 뿐.

경기에서 지면 지는거고 이기면 좀 기쁘다? - 그녀는 이런 정서를 지니고 사는 것 같다.

매사에 안달복달해 마지않는 나와 참 다른 성격인데, 이런 성격이 참 신기하고 부러워서 골루비치 경기나 소식을 가끔 챙겨본다.

같이 관전하던 어머니가 옆에서 골루비치는 테니스 잘하냐고 물어보셨을 때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덧붙여 골루비치를 이렇게 방송화면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으니 지금 봐두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골루비치가 테니스 기량을 조금만 더 개량시켜서 몇번 더 경기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팬도 뭣도 아닌 인간이 이래라 저래라 할 상황은 아니다만..






간단하게 적고 일찍 자려고 했는데 벌써 두시네.. 빨리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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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매여 살다가 이따금 여백이 허락될 때가 있는데,

이런 귀중한 기회는 자주 오지 않으니까 평소에 하지 않던 짓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들곤 한다.



그래서 미술관 전시 관람이라는 모험을 강행했다. Lawrence Weiner의 개인전을 가게 된 것.



별도의 리서치는 하지 않고 그저 포스터 하나만 보고 가게 된 것인데 맥락을 모른 채 전시를 보려니 죽을맛이었다.



일단 구상화만 소비하던 내게 개념미술이란 분야가 너무 난해했다.

플러스, 미술관에서 제공되는 설명자료는 (개념미술을 이미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을 대상으로 작성된 듯 하여) 내 무지함을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현장에서 겨우 주워담은 몇마디 설명으로는 Lawrence Weiner는 언어를 재료로 삼아 작품활동을 했다는데, 단어의 조합일 뿐인 작품에 이렇게까지 높은(?) 가치가 매겨지는 것에 큰 의구심을 느꼈다.

(그럼 더욱더 허다한 단어의 조합을 창출해내는 소설가나 시인은 왜 Lawrence Weiner 정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가? 라는 생각도 들었고..)



내가 이러한 궁금증과 의구심을 소리내어 말하니

한 친구는 "야 그래도 컵슬리브에 이렇게 인쇄되니 얼마나 이쁘니"라고 하고 (오설록 일회용컵 슬리브에 Lawrence Weiner의 작품이 작게 인쇄되어 있었음),

다른 한 친구는 "그래도 1940년대생의 사람이 이런 아이디어를 가졌다니, 시대를 앞서나갔다"라고도 이야기했다.





그래도 그의 작품과 그에 담긴 의미가 다 이해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미술작품의 캡션도 오롯이 이해하기 어렵다.

'언어 + 언어가 가리키는 재질 (Language + the materials referred to)'가 재료라는데, '언어가 가리키는 재질'이 도대체 무슨 말이지? 미술작품이 붙어있는 벽을 가리키는 걸까..



언젠가는 이해될 날이 오겠지? 그때를 위해서 지금의 무지하고 무식한(?) 기록을 남겨둔다.


그래도 미술작품 자체는 예쁘고 사진에 담기 좋았다.






아래는 미술관에서 얻어온 전시회 설명서이다. 아래 내용을 일독하였으나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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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사냥에 실패하고, 되려 까치떼에 둘러싸인 고양이 표정


방어기제를 가진 인간은 본인의 취약점을 의식하고 있는, 메타인지를 가진 인간이다.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음을 자각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 메타메타인지를 가진 인간?

저 친구 방어기제를 가졌군-을 얼마간 욕처럼 사용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본인이 취약한 분야를 별 전략도 없이 뛰어드는 자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내가 그러하다.


서사, 당신의 서재


인턴 때에는 어떻게든 꼼꼼히 해서 드리려고 했는데, 지금은 상황에 맞추어 행동해야 할 때가 왔다. 아니, 실은 몇년 전부터 그렇게 했었어야 했는데 내가 스스로를 놓지 못했다.

pass through는 당연히 지양해야겠지만, 협업방식으로 굴러가는 조직에서 내 실수 내보이기 싫어서 움켜쥐고 있는 행위는 민폐가 아닐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지금 망설임의 근원이 자존심인지 신중함인지 나 스스로도 헷갈린다.

나도 헷갈리니까 일단 다른 지혜로운 분이 보시도록 넘겨드려야 겠어. 혼난다면 달게 받아야지.. 꾸지람 받는 것도 업무의 일부임을 알아버린 직장인.



몇년 전에 지인이 모카포트 추천했는데, 얼마전부터 갑자기 유튜브 피드에 관련 영상이 많이 떠서 괴롭다.

집에서 커피 마실 일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닌데, 순전히 저 앙증맞은 디자인에 소비욕구가 일어나다니.. 자존심 상한다.

온갖 짱구를 굴려봐도 저 기구를 살뜰히 쓸 것 같지 않다. 혹해서 샀다가 당근마켓에 내다팔 듯. 조금 더 참아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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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랠리할 때,
110 세기의 공이 계속 올 때 나도 똑같이 110으로 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상대방은 본인 최대 힘의 70퍼센트로 치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나도 내 최대 힘의 70으로 쳐야 일관성 있게 랠리를 이어나갈 수 있다.

내 최대 힘이 100이면 상대방이 아무리 공을 세게 준다한들 70으로 줘서 어떻게든 공을 넘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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