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포스팅에서 말했다시피, (주로 여성으로 구성되었으리라 예상되는) 여러 사람들이 양귀자 작가님의 '모순'을 인생책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납득이 되었다. 그리고 그 대다수의 리뷰에서 인생책으로 꼽은 이유를 구체적으로 꼬집지 않은 까닭 또한 이해가 되었다. 한국 사회가 빚어낸 가족생활과 가족 간의 비교의식을 온전히 체험한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에게는 적어도 소설의 어느 한두군데 정도는 크게 와닿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필 주제의식이 가정사에 닿아있는만큼, 명확하게 '좋다 / 싫다' - 로 표현하기 어렵다는 점도 사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을 꺼내기 힘들게 하는 부분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가정사 중에 진절머리 나게 싫은 지점이 있을지라도, 나라는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임을 의식하는 한은 가족을 매몰차게 부정하기란 쉽지 않다.  

진절머리 나는 가정사를 꺼내봤자 별 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어른들 (혹은 청소년들)에게는, 책이 비무장지대가 되어 줄 수 있다. '나만 이런 일을 겪는가?'에 대한 대답을 얻고, 그래도 버티는 용기를 얻어가고, 나의 아픔에 공감 받는 이런 모든 과정에서, 남에게 헐뜯김을 당할 위험이란 독서하는 도중에는 전혀 없는 것이다.

'모순'은 K-가족 서사를 다루는 많은 소설 가운데에서도, 두 개의 가정을 다루기 때문에 비교의식에 연연해 하는 한국인의 정서를 본질적으로 파헤쳤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안진진의 어머니와 이모가 쌍둥이 자매이기 때문에, 이모의 유복한 가정은 어쩌면 화자 '안진진'이 누렸을지도 모를 안정적인 가정환경을 상상하게 한다. 나였다면 제풀에 지쳐 푸념에 푸념을 거듭했을테지만, 안진진은 구질구질한 집구석을 싸그리 매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행이 인생의 부피를 늘려준다'고 하여 의젓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안진진이 선택한 행보는 나를 놀라게 했다. 안진진은 이모 가정과의 비교의식에 패배한 것일까, 아니면 '인생은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과 다른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한 것일까?

모르긴 몰라도, 안진진은 속이 단단한 친구이니까 이모와 같은 결말을 맞이하진 않을 것이라는 무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세월이 지나고 또 무슨 감상평을 덧댈 수 있을까. 한번 더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책이었다.



세 번의 가출 동기가 그토록이나 변변찮았던 것에 비하면 결과는 한없이 의미심장했다. 나의 행동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은 '가출소녀'라는 렌즈를 통과해서 사람들에게 이해되었다. 나중에는 그 일 자체가 바로 나라는 인간의 본질이 되어버릴 정도였다. 나는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수없이 들었다. 세 번씩이나 집을 나간 맹랑한 년…….

그래서 나는 스무 살이 넘은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내 입으로 그 사건을 설명한 적이 없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삶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씹을 줄만 알았지 즐기는 법은 전혀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에피소드란 맹랑한 것이 아니라 명랑한 것임에도.
- '1. 생의 외침' (p. 11)

외식을 하기로 한 장소는 이모네 수준에 맞게 호텔의 정통 프랑스식당이었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어서 어디로 갈까 많이 망설이다 정한 곳이라는 이모의 부연 설명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의 외식은, 물론 그것마저 일 년에 몇 차례 불과한 일이지만, 망설임 한 번 없이 단호하게 돼지갈비집이었다. 고기 타는 연기가 식당 바깥까지 자욱하고, 맛 좋기로 소문났다는 어머니의 자랑처럼 방마다 사람들이 가득 찬 그곳에서는 먹는 일도 노동이었다. 쉴 새 없이 고기를 뒤적이고, 연기를 피해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고, 볼이 미어지게 싸 넣은 상추쌈으로 격렬한 입 운동이 불가피한 거기. 남동생과 나와 어머니는 전쟁터 속의 병사들처럼 묵묵히, 그러나 죽을 힘을 다해 돼지고기와 싸우다 거의 지쳐서 식당을 나오곤 했었다.
- '2. 거짓말들' (p.31)

(...) 약간의 흠이 있다면 이 모든 선택이 얼마나 멋들어지게 맞아떨어지고 있는가를 거듭 강조하는 나영규의 무궁한 활력이었다.

"좋지요? 이 집을 선택한 것은 경치도 경치지만 '그날 오후'라는 찻집 이름이 짱이었어요. 먼 훗날, 진진 씨와 내가 앉아서 그날 오후, 우리가 그곳에서 차를 마셨었지, 하고 회상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기에 안성맞춤이었거든요."

추억까지 미리 디자인하고 있는 남자, 현재를 능히 감당하고도 남음이 있어 먼 훗날의 회상 목록까지 계산하고자 하는 그의 도도한 힘이 나에게는 조금 성가셨다. 하지만 나는, 추억이란 계산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만들어진다는 등,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일에 그렇게 머리를 쓰고 살자면 피곤하겠다는 등의 분위기 깨는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부득불 해가면서 살아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아껴서 좋은 것은 돈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돈보다 더 아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이었다.
- '3. 사람이 있는 풍경' (p.75)
쓰러지지 못한 대신 어머니가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극대화시키는 것이었다.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 거대한 불행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훨씬 견디기 쉽다는 것을 어머니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생애에 되풀이 나타나는 불행들은 모두 그런 방식으로 어머니에게 극복되었다.

불행의 과장법, 그것이 어머니와 내가 다른 점이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진저리를 치는 부분도 여기에 있었다. 그렇지만 어머니를 비난할 수는 없었다. 과장법까지 동원해서 강조하고 또 강조해야 하는 것이 기껏해야 불행뿐인 삶이라면 그것을 비난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없다. 몸서리를 칠 수는 있지만.
- '7. 불행의 과장법' (p.152 ~ p.153)
업무 첫날, 나는 내 책상의 반을 차지한 커다란 컴퓨터를 보고 기가 질렸다. 간단한 요령 몇 가지만 익히면 금방 해낼 것이라고 부장은 말했지만 간단치 않은 온갖 서류들을 작성하여 타이핑을 하고 다시 저장하는 복잡한 일들이 모두 내 몫이었다.

내가 취직한 회사는 고급 타일이나 바닥재 혹은 석재들만을 전문적으로 수입하여 국내에 유통시키는 건축자재업체였다. 취급하는 종류가 다양하고 종류마다 디자인이나 색상이 제각각 다른 것들인 만큼 입고에서부터 주문현황, 대리점 판매물량, 분기별 입금확인, 재고파악까지가 일일이 각각의 양식을 요구하고 있었다. 업무를 인계해줄 선임자는 이미 떠나고 없어서 누구 도움을 요청할 만한 사람도 없었다. 빌딩들을 주로 설계하는 건축가 이모부는 이 회사의 주요한 고객이었으므로 나를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지만, 이모부 때문이라도 실력 없는 신입직원으로 찍히는 일은 결단코 피하고 싶었다.

하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출근 첫날의 점심시간에 당장 회 사 건너편의 컴퓨터학원 새벽반에 등록을 하였다. (...)
- '7. 불행의 과장법' (p.162 ~ p.163)

(...) 나는 이모를 많이 닮았지만 그러나 이모의 딸은 아니었다. 내가 이모의 딸로 태어났다면 나도 주리처럼 답답하고 재미없는 인간으로 성장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세상의 숨겨진 진실들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것은 마치 평생 똑같은 식단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식이요법 환자의 불행과 같은 것일 수 있었다.

(...) 단조로운 삶은 역시 단조로운 행복만을 약속한다. 지난 늦여름 내가 만난 주리가 바로 이 진리의 표본이있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준 주리었다. 인간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언제라도 흥미가 있는 일이었다. 인간만큼 다양한 변주를 허락하는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
- '12. 참을 수 없는, 너무나 참을 수 없는' (p.227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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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이 내 집중력과 시간을 좀먹고 있던 와중에, 친구가 '피드가 안 뜨게끔 하는' 신기한 설정을 알려주었다.

설정을 적용해보니 유튜브 홈 화면이 깨끗해질 뿐만 아니라, 실제 유튜브에 버리는 시간이 많이 줄어든 느낌이 든다.

무의식적으로 추천 피드를 타고 타며 끊임없이 추천영상을 클릭하는 일이 줄어들게 되니, 시청 영상의 범위도 구독채널과 검색한 영상 위주로 축소되고 정신이 정돈된다.

나처럼 유튜브 추천 피드에 많이 흔들리는 분들이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 설정내역을 적어본다.


1. 먼저, 내 계정 페이지에 들어가서 '시청 시간' 카테고리에 들어가보자.




2. '시청 시간' 페이지에 들어오게 되면, 통계 그래프 밑에 있는 '시청 기록' 하이퍼링크를 클릭한다.

 

3. 그렇게 들어오면 우측 상단에 점 세개짜리 메뉴버튼을 눌러서, '시청 기록 일시중지'을 선택해 뒤이어 뜨는 팝업창에서 '일시중지'를 클릭한다.

 

4.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점 세개 메뉴버튼에서 '시청 기록 지우기' 버튼을 클릭하게 되면,



짜잔 - 이렇게 깔끔한 홈 화면이 나를 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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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서 기록을 제때 못하고 있는데,,

양귀자의 '모순'을 최근에 완독했다. 사연 있는 사람들은 죄다 공감할 만한 소설이라 생각했다. 왜 여러 사람들이 인생책이라 하는지 알겠다. 하지만 그 이유는, 역시, '인생'에 대한 책이기 때문에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양귀자의 문장은 강하고 단단하고 깊었다. 이런 문장을 쓸 정도의 인생내공과 통찰력이 생겼으면 좋겠다..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는 AI 지식', '벤허'도 다 읽었지만, 이 책들은 과거에 내가 한 챕터씩 리뷰하느라고 아직 1독평을 올리지 못했다. 차라리 1독평을 먼저 올릴까 - 하는 생각이 든다. 포스팅이 차일피일 미뤄지면 이것도 방법이겠다

Hernan Diaz의 Trust는 아직 읽고 있는 중이다. 같은 이야기를 네번씩이나 반복하는 구성인데 어떻게 반전이 있을 수가 있지? 빨리 4부에 가닿고 싶은데 진도가 느려서 조바심만 난다.

이언 매큐언의 '나 같은 기계들'도 병렬하여 읽고 있다. 이언 매큐언은 이 책에서 완급조절은 전혀 하지 않고 중요하고 밀도 높은 문장을 앞뒤 간격 없이 빽빽히 배치해두고 있어서, 한페이지를 읽는 도중에도 체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아주 천천히 읽는 중. (..) 실은 모든 책을 아주 천천히 읽고 있다. 나라는 인간에게 속독이란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그 와중에 새로운 책을 업어왔다. 지적허영심은 최대한 빼고, 담백한 현실감각으로 책을 골라오려고 했는데.. 나 잘 골라온 것 맞겠지? 어서 읽고 싶다. 그런데 그 전에 사둔 책들은 또 언제 읽는담..

외로움을 달래는 데에는 책읽기 만한 것이 없어. 최근 주변인의 퇴사 선언을 연속으로 들었더니 외로운 감정이 더욱더 사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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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미디어는 사랑과 성욕을 혼동하도록 사람들을 세뇌시킨다.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 대중가요에서 외치는 '사랑'이라는 말은 '욕망'이라고 바꾸어 말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될 정도이다. 가령, 부부의 세계에서 이태오가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고 외치지만, 그 문장이 실질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욕망(욕정)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이다. 수많은 노래 가사는 '우리는 서로 사랑을 했다'고들 하지만, 기실 '우리는 서로 욕망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다.

'사랑=성욕'이라고 컨텐츠 크리에이터가 그리 생각했든, 컨텐츠 소비자가 그리 생각했든,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공식은 이제 너나할 것 없이 무의식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을 읽어보면 사랑과 성욕(욕망,욕정)은 다를 뿐만 아니라 상반된 성질의 것임을 느낄 수 있다.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 고린도전서 13장 4절-7절 -


고린도전서 13장은 오로지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만을 사랑으로 인정하고 있다. 오늘날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숱한 사람들이 저지르고 있는 시기질투 및 나를 드높이는 행위가, 정녕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거론하는 '사랑'의 의미에 걸맞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구태여 '사랑'의 정의에 가장 부합하는 관계성을 세상에서 찾자면, 개인적으로 그것은 (통상적으로) 부모가 자식에게 쏟아주는 사랑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관계에서 부모는 (많은 경우에서) 대가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쉽사리 자식을 포기하지 않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부모가 자식을 생각함과 같이,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연인관계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 관계에는 사랑이 없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사랑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중 한갈래의 생각을 여기 두고 간다.









'하지 않음'의 상태도 유익이 될 수 있다.

백해무익하다고 일반적으로 분류되는 일들은 가급적 하지 않는 편이 통상 더 좋다.

그러나 유혹의 덫에 빠져들면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백해무익한 일을 저질러버리게 된다. 자각하고 끝의 끝까지 참아야하는 것이다.

지금 갤럭시 Z 폴드 6 구매를 참고 있다는 말을 이리도 길게 하고 있다.

 

 

01
여기저기 들고다니며 읽다보니 많이 헤졌다.

지식을 어떻게 획득하고 갈무리하는지 - 에 대한 주제에 내가 환장하나 보다. 내가 아껴마지 않던 책을 꼽아보자면 아래와 같다 : 

  • '지적생활의 즐거움', P.G.해머튼 지음, 김욱 편역;
  • '약한 연결', 아즈마 히로키 지음, 안천 옮김;
  • '아무튼, 메모', 정혜윤 지음.

이번에 읽게 된 책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내 환심을 샀다. 그런 사소한 이유로 집어들었지만, '책을 아껴가며 읽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정독하게 된 진실된 이유 중의 하나는 저자 김지원 님의 통찰력이 담긴 문장들 때문이었다. 문단 째로 옮겨 오고 싶은 부분도 많았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김지원 님이 '종이책'이라는 특정매체에 주제의식을 한정시켰기 때문이다. 이북리더기를 잘만 사용하고 있는 나로서는 종이책만이 가진 차별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전자책이 어떤 면에서 열등한 것인지(?) 김지원 님의 생각을 알아내고 싶었다. 

종이책은 내가 어떤 것을 우선해야 할지, 어떤 것은 손쉽게 읽고 버려도 될지, 어떤 정보는 읽지 않고 그냥 지근거리에 두어도 될지를 위계적으로 판단해 정리해 둘 수 있게 한다. 오히려 이 때문에 당장은 읽을 필요가 없는 정보에도 적정한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된다. (사 두고 안 보면 된다.) 어떤 책은 오랜 세월 두고두고 먼지를 뒤집어쓰고서 "서가에 꽂힌 채 나를 노려보"다가, 결과적으로는 먼 훗날 때가 되었을 때 마침내 "내 인생의 책"이 되기도 한다. 아카다 아키노리는 이처럼 어렵지만 언젠가는 읽어야 하는 책을 당장 읽지 않고 일단 서가에 꽂아 두는 것을 '책 재우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 이에 반해 전자 텍스트는 북마크를 해 두어도 간혹 링크가 변경되거나 저자의 변덕 혹은 사이트 장애로 인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 Chapter '책은 다양한 읽기 경험을 돕는 도구다' (p.95 ~ p.97)
수력공학 • 원자력 • 수학 • 농업 등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책, 외국어로 된 서적이 가득 꽂힌 서가를 배회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모르는 세계의 부피를 체감할 수 있게 된다. 인터넷상의 읽기에서는 좀처럼 하기 어려운 경험이다. 이 '서가 배회'를 통해 나는 어디에 가면 어디쯤에 어떤 정보가 얼마나 있는지를 어렴풋하게라도 알게 된다. 자연스럽게 나중에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그것에 관한 정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는 감각이 생기고, 필요한 책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틈날 때마다 굳이 도서관을 찾는 이유다. 아마도 나의 독서 중 20퍼센트는 이처럼 때때로 서가를 이리저리 배회하며 책등을 읽고 내키면 책을 꺼내어 표지를 읽는 '책등 독서'일 것이다. 

모든 책을 다 읽을 필요는 당연히 없다. 이렇게 책등이나 서문을 제외하고 '읽지 않은 책'들의 계보를 확장하다 보면, 나중에 정말 필요할 때 원하는 정보에 쉽고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 

- Chapter '책은 믿을 만한 지식의 지도다' (p.109)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종이책은 지식지도에서 내가 위치하는 좌표계를 알 수 있게끔 도와준다는 데 그 차별점이 있다 하겠다. 이러한 종이책의 특장점은 (문헌정보학으로 체계화된) 도서관이라는 공간과 결부되었을 때 극대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이라면 이북리더기가 한수 접고 들어가야 겠다. 책등읽기라든지 서가배회와 같은 활동은 어려우니 말이다. (그래도 이북리더기 나름의 간편함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이북리더기와 종이책이라는 두 매체를 병행할 생각이다.)

김지원 님의 첫 책이라는데, 앞으로의 저작활동이 기다려질 정도로 즐거운 독서경험이었다. 무릎을 탁 치는 문장을 하나하나 다 옮기고 싶지만 그렇게 한다면 책의 거의 대부분을 옮겨야 할 판이므로.. 몇 개 부분만 발췌하고 이만 마치도록 하겠다.

우치다 다쓰루는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에서 단순히 쉬운(=대중적인) 입문서를 쓰겠다면서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의 예시를 가지고 오는 것은 독자를 바보 취급하는 것이라며, 상대에게 직접 말 거는 글쓰기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독자에게 말을 걸겠다는 마음으로 쓰인 글은 비록 어렵더라도, 왠지 모르게 어떻게 해서든 더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즉 '중2도 이해할 수 있도록 써라'라는 것은 결국 '중2도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써라'와 다름없다. 정말로 내가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글은 검색을 하고 사전을 찾아서라도 읽게 된다. 단순히 평이한 단어를 쓰고 존댓말을 쓴다고 해서 읽고 싶은 글이 되는 것이 다니다. 반드시 상대방에게 직접 말을 거는 방식의 글쓰기여야 한다. 

- Chapter '읽는 맛 • 읽을 가치 있는 • 읽을 수 있는 글' (p.42 ~ p.43)
2023년 이후, 생성형 AI시대에 언론계 및 출판계와 AI 업체 간의 갈등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원천 정보에 대한 권리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자, 인터넷에 대중없이 섞여 있는 수만은 정보(1차, 2차, 3차, 4차, 5차••••••) 가운데 결국 재생산에 활용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정보는 원천에 가까운 정보라는 것을 방증한다. 만약 AI 데이터베이스에 정보라면, 그게 뭐든 무조건 많이 쏟아부으면 된다고 한다면, 굳이 까다로운 샅바까움을 벌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 Chapter '책은 원산지가 표시된 정보다' (p.81 ~ p.82)
그래서 본래 간결한 글을 좋아하지만, 서문에 대한 취향은 조금 다르다. 서문만큼은 거창하고 방대하고, 때론 장황하고 갈지자로 휘청이고 제 깜냥보다 욕심이 앞서는 글도 싫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서문에서는 자기 삶에 녹아든 질문 • 헤매는 모습 그리고 그럼에도 위로 어떻게든 1밀리미터라도 뚫고 나가려는 에너지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서문이 실린 책에서는 저자의 미시사와 세계사가 아코디온을 접었다 펼쳤다 하듯 교차한다. 익숙하고 뻔한 것 • 향수를 주는 것 • 누구나 안전하게 동의하는 전통에서 저자가 갸우뚱거리며 한 발짝 앞으로 내딛는 순간, 서문은 책보다 더 커진다.

- Chapter '책은 서문이 붙어 있는 글이다'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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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건 아니라고 말하긴 해야 한다.

아닌건 아니라고 말하려면 몇가지 마음가짐이 필요한데,

  • 비판의 대상을 사람에게 맞추지 말기. 특히 나는 이 부분을 정말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옳지 않은 행동만을 대상삼아 비판하기란 내게 어려운 일인지라, 결국 상대방을 판단하는 수순을 밟게 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견적내기란 쾌감을 일으키는 유흥거리일 뿐, 어떠한 영적 유익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내가 동일한 행동을 했을 때 비판에 직면할 용기를 가질 것. 옳지 않은 행동을 했다면 나도 기꺼이 지적받아야 된다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나는 비판 받고 싶지 않지만.. 이 사회에 옳지 않은 행동이 설 자리가 사라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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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테니스화 착화기를 올린 적이 있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서 업데이트를 해본다.


윌슨 카오스

01

예전에 한 남자 회원분이 윌슨 카오스를 신고 랠리하는 모습을 봤는데, 발이 가뿐해보였다. 빠른 발놀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인 나는 바로 구매를 질렀다. 확실히 가볍긴 하다. 그런데 다른 테니스화에 비해서는 안정적인 맛이 좀 적다.  당연히 일반 운동화보다는 발을 잘 잡아주기는 한다만, 지면에 닿는 면적이 좁은 것인지 좌우 움직임이 심했을 때 (마찰력이 적어서) 넘어질 것 같은 느낌이 가끔 든다. 그래도 못 쓰겠다 정도는 아니다. 원래 테니스화 브랜드로 윌슨이랑 바볼랏은 쳐다도 안 봤었는데, 나로서는 이 신발이 모험이었던 셈. 


아식스 Court FF 3

01

한국 테니스 동호인들이 신는 테니스화는 점차 아식스로 수렴해가는 듯 하다. 내 첫 아식스 테니스화는 친구의 추천으로 사게된 젤레졸루션 8인데, 무난함의 극치라고 평할 수 있겠다. 너무 무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가벼워서 지면과의 마찰력이 안 느껴지는 정도는 아니고, 너무 갑갑하지도 않지만, 너무 물렁하지도 않다. 테니스화가 너무 무거우면 발이 느려지고, 너무 마찰력이 없으면 스윙에 힘이 안 실린다. 또 테니스화가 너무 갑갑하면 발이 아프지만, 너무 물렁하면 좌우 러닝하다가 정말 부상을 당하는 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식스가 테니스화 올라운더인듯.
 
먼젓번 샀던 젤레졸루션 8은 밑창이 닳아서 버리고, 아식스 Court FF 3를 구매해서 신고 있다. Court FF는 젤레졸루션 8에 비해서 소폭 무거운 감이 있다. 그리고 젤레졸루션 8에 비해 무게중심이 뒤에 가있는 느낌이 있다. 입증할 방법은 없지만..
 
조코비치가 쓰는 아이템들은 다 무난무난하고 밸런스가 좋아보이는 효과가 있는데, 테니스화의 경우 아식스가 그렇고, 라켓 카테고리에서는 헤드가 무난함의 이미지를 가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뻘스러운 생각을 해본다.  

한줄평 : 윌슨 카오스, 아식스 젤레졸루션 8, 아식스 Court FF 3를 비유해보자면, 윌슨 카오스는 바람막이, 젤레졸루션 8은 코트, Court FF 3는 갑옷을 입은 느낌이다. 이 또한 뻘스러운 생각이다. 
 


 
내게 테니스 아이템 시장은 독특해보인다. 라켓, 볼, 의류, 신발시장을 주름잡는 선도업체가 다 제각각이다. 라켓은 헤드/윌슨/바볼랏/요넥스가 평정하고 있는데, 신발은 아식스/나이키/아디다스가 메이저업체이고, 볼은 윌슨/바볼랏/헤드가 주름잡고 있다. 의류는 각축전인 듯. 테니스에 대한 기술적인 지식이 높아지면 모든 아이템에서의 시장 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이것도 (마케팅과 같은) 경제적/사회적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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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2 - [Things] - 테니스화 3종 착화기 (나이키, 아디다스, 요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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