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할 줄 알아야 겠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요즘이다. 최근 물가가 올라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주요한 이유는, 먼훗날 언젠가 off-grid로 살고자 하는 희망사항을 가진 인간이라면 필수덕목으로 요리실력을 갖추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하지만 아직 복잡한 요리는 하기 싫다. 재료 손질도 귀찮거니와 식후 뒷정리를 생각하면 뒷골이 땡겨오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봉지라면 끓이기도 요리의 범주에 들어간다. 하지만 라면은 어릴 때부터 끓여왔기 때문에 요리의 저변을 넓히려면 다른 메뉴도 시도해봐야 하는데... 하는 찰나, 교회 셀장님이 '파스타도 라면 같이 조리하기 간단하다'라는 말씀을 하셔서 결심이 섰다. 라면 조리 수준만큼의 평이함을 보장한다니, 당분간은 파스타로 요리(?) 연습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다. 이것도 연습이라고 할 수 있다면..
오늘은 페스토 파스타를 만들었다. 고기(목살)는 쿠팡이츠로 외부조달해옴. 고기도 구울까 했는데 아직 나는 파스타면 삶는 행위도 버거운 인간이니까.. 자기객관화 하자.
파스타면 삶기가 무엇이 그리 힘드냐고 할 수 있지만, 초보자에게는 이런것도 분절해서 하나하나 알려주는 가이드가 필요하다. 그래서 국가비의 '팬 하나로 충분한 두 사람 식탁'을 참고하며 파스타면을 삶고 페스토 소스를 뿌려 볶았다. 페스토 소스가 조금 많이 들어간 것 같은데 다음에는 덜 넣는 것으로.
실은 몇달 전에 이 책에 나오는 삼겹살카르보나라도 시도해봤는데 주변에서 맛있다고 호응해주어서 매우.. 기뻤다. 하지만 요리초보자인 나에게는 재료가 3가지가 넘어가면 무리임을 깨닫게 되어서.. 당분간 이 요리는 실력이 좋아지면 다시 시도해볼 듯.
어릴 때 나는 책읽기를 썩 좋아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2학년엔가에는 (읽으라는 교과서는 안 읽고) 쉬는시간부터 붙들고 있던 이야기책을 중단할 수가 없어 교과서 사이에 숨겨두고 읽다가, 같은 분단 학우들이 나를 고해바쳐서 교실 뒤편에 서있는 수치를 당하기도 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미국에 잠시 머무를 적에는 도서관에 갖은 책을 빌려와서 닥치는 대로 읽은 탓에 Reading Count 고득점랭킹에 올랐다고 상도 받았었고. 중학생 시절에도 책은 계속 읽었던 것 같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해리포터 시리즈 등등이 기억에 남는 걸 보니.
독서량이 확연히 감소한 것은 고등학교 진학 이후부터였는데, 쟁쟁한 아이들 사이에서 내신 따느라 배움이 즐거움이 아닌 스트레스로 변모해버린 지 오래였고, 하루를 열심히 살아낸 나는 보상심리로 영상시청에 탐닉했었다. 그때는 PMP로 인강 듣던 시절이어서 별의별 영화와 시리즈물을 COWON PMP에 담아두고 다녔었다. 그전에는 책을 보면 설레곤 했었는데, 고등학교 때는 이상하게 책을 보면 마음에 부담이 갔었다. 아무래도 책마저도 나의 지적수준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물이 된 탓에, 책마저도 있어보이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나보다. 그도 그럴것이, 그 당시 고등학교 시절 풍경을 생각해보면 학우들이 보통 두가지 케이스 중 하나에 해당되었다 - 아예 책을 안 읽고 내신에 집중하거나, 아니면 굉장히 어려운 책을 읽거나 (지금도 기억난다. 고등학생인데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빈 서판'을 웹소설 읽듯 읽던 친구들이..).
우여곡절 끝에 진학한 대학교에서도 그놈의 지적허영심이 고개 숙일 줄을 몰라서, 도서관에서 수준에 맞지도 않는 어려운 책들을 잔뜩 빌려오고 몇장 들춰보지도 않은 채 반납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조금만 더 스스로에게 솔직했더라면, 내가 별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좀더 빨리 깨달았더라면,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책을 만났을텐데.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인건가.
대학교 시절도 허덕이며 보내고 어찌저찌 취업한 직장에서도 책에 대한 허영심은 사라질 줄 몰랐다. 슬슬 돈을 벌기 시작해 있어보이는 책들을 잔뜩 사들였지만 신용카드를 긁는 순간 흥미는 빠르게 식었다. 언젠가는 읽겠지, 하고 유리책장에 고이 모셔둔 책들이 늘어만 갔다. 시간이 나면 책을 보겠지 - 생각했지만, 나는 (도파민에) 매우 예민한 사람으로서 시간이 나는 족족 유튜브를 보곤 했다. 한 책을 집어들면 다른 책이 더 가치있을까봐 걱정되어서 그나마 집어든 책을 내려놓았다. 그런 인생을 수년에 걸쳐 반복했고, 스크류테이프의 편지도 그 탓에 몇년에 걸쳐 겨우 완독했다.
몇년간 낑낑댄 결과, (비로소 드디어) 책을 (거의) 매일 읽을 수 있게 되었는데 굉장히 충만하고 뿌듯한 기분이다. 책을 읽으니 말과 글에 힘이 생기는 걸 느낀다. 잠시나마 어휘력이 풍부해지고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겨서인 것 아닐까 싶다. 물론 독서근육이 빠질대로 빠진 상황이라, 독서를 게을리 하면 바로 타격이 올게다.
계속 읽어야지.
유튜브 영상이나 인터넷 커뮤를 보면, 독서하지 않아도 충분히 정보를 취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더러 말들 한다. 나 또한 그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정보를 더 많이 얻으려고;;;) 더욱더 유튜브에 빠져들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영상으로 얻는 정보와 독서를 통해 얻는 정보는 확실히 다르다고 느낀다. 영상은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꺼버린다. 그래서 쇼츠나 릴스 형식의 컨텐츠가 성행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를 만족시켜봐.. 철저한 관람객의 자세.. 하지만 독서는 어떤 활동을 수반하는가? 밑줄을 치기도 하고 사전을 찾아보기도 하고 그저 까만 활자의 모음에서 인물의 옷차림이나 자연풍광을 상상해내곤 한다. 인간의 능력이 이토록 놀랍지 않은가? (텍스트 파일로 치면 kb 단위 분량일) 종이 몇장에서, (동영상으로 치면) 몇백 MB 내지는 몇 GB에 달하는 데이터를 추출해낼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경이롭지 않은가? 인간의 인내심, 상상력, 이해력 등등 온갖 능동적인 정신활동이 관여하는 것이다. 정신적인 스포츠 활동이다.
실은 "완벽주의"란 인간에게 허락된 개념이 아닐 수도 있겠다. 제한된 시간 내에서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 최선을 다했다면, 품질에 대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자. 제시간에 마무리짓는 습관을 들이자.
계획을 세우는 습관도 들여야겠다. 옛날에는 무리한 계획을 세운 탓에 목표한 바를 달성하지 못해 속이 상했다. 속이 상해서 계획을 세우지 않은 지 오랜 세월이 지났다. (계획이 제로베이스인 상황에서 뭐라도 이루면 그 성취감이 배가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어째 시간에 대한 책임을 져버리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내가 계획을 잘 지키지 못했던 것은, 그저 내 생각과 내 욕심으로 하루를 짰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제는 계획을 하나님께 맡겨드리자. 하나님이 주시는 미션으로 하루를 살아내자.
‘속도’는 중요한 미덕이다. 특히 저연차 직장인일수록 완벽을 기하겠다고 오래 보고서를 잡고 있기보다는 일단 완성해서 상사에게 보여 주는 것이 낫다. 물론 거의 100퍼센트 혼이 날 것이다. 일을 이따위로밖에 못하느냐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래 붙잡고 있는다고 해서 완벽해질 가능성도 작으니 어차피 혼나는 건 마찬가지다. 어쩌면 일 처리가 느리다고 두 배로 혼날지도 모른다. 내 눈에는 완벽해 보여도 상사 눈에는 흠잡을 것투성이다. 어차피 혼날 바에야 빨리 보고한 뒤 지적받은 점들을 보고서에 반영하는 것이 완벽에 가까워지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그래서 주니어 기자 시절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도, 지금 내가 후배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도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