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읽는 데 장장 130여일이 걸렸다.
원서로 읽었던 탓도 있겠지만, 외견상 스토리가 건조하여 쭉쭉 진도를 빼기 힘들었다.
하지만 문장 하나하나에 짜임새가 있고, 줄거리가 느슨한 듯 하면서 흥미진진했다. 1920~30년대 미국 금융사, 예술, 의학의 발전, 비밀스러운 부부의 가정사가 이렇게 곱게 갈려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하다니. 작가 에르난 디아즈의 리서치 능력과, 또 알아낸 지식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는 구상력에 존경을 표한다.
스포일러가 아닌 것 같아서 말하자면,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고, 모든 파트가 단 하나의 사건 (재벌금융가 부부의 사별)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만 서술자가 달라지는 것이 특징인데,
- 1부 '채권' ('Bonds')은 한 작가가 해당 사건을 재구성한 소설,
- 2부 '나의 인생' ('My Life')은 그 소설로 자신이 가십거리가 된 것에 발끈한 남편 (앤드류 베벨)이 작성한 자서전,
- 3부 '회고록을 기억하며' ('A Memoir, Remembered')는 앤드류 베벨이 자서전을 작성하게끔 보조해준 비서의 이야기,
- 4부 '선물' ('Futures')은 그 논란의 중심인 앤드루의 부인 (밀드레드 베벨)이 쓴 일기이다.
소설 속의 소설인 탓에 1부의 인물명이 다르다. 여기서 사람들이 많이 걸려 넘어지는 것 같다.
⟪Trust⟫ 는 책을 읽어야 겠다는 원초적인 본능을 일깨워준다. 4부에 언급된 도서 (버지니아 울프의 ⟪플러시⟫ 포함)가 몇개 있었는데 그것들도 읽고 싶었고, 스위스의 요양병원에서 지내는 밀드레드를 지켜보면서 토마스 만의 ⟪마의 산 ⟫도 읽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시 미국 금융시장에 대한 설명을 다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본 소설 ⟪Trust⟫를 한번 더 읽고 싶다.
국문으로 번역된 ⟪트러스트⟫는 밀리의 서재에서도 읽을 수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주변 사람들이 국문본은 읽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번역된 문장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어나간 사람은 결국 이 책의 진가를 인정하게 되는 것 같다.
Morning brought out a deeper sort of white from the changeless snows capping the peaks the peaks on either side of the valley, which, later, in the midday sun, would become blinding splinters. A pastoral bell echoed across the sky dappled with flocks of small solid clouds, while unseen birds found themselves, yet again, unable to break their bondage to their two or four notes. The air was laced with the scent of water, stone, and the long-dead things that, darkly, were finding their way back to life deep under the dew-soaked dirt. During that unpopu lated hour, the buildings ceased to be objects of artifice and industry to reveal the nature fossilized in them and come forth in their mineral presence. The breeze dissolved in stiller air; the treetops, so green they were black against the blue, stopped swaying. And for a moment, there was no struggle and all was at rest, because time seemed to have ar rived at its destination.
아침이 되자 계곡 양옆의 높다란 봉우리를 덮은 만년설에서 더 깊은 흰색이 우러나왔다. 나중에 오후의 햇빛을 받으면 그 흰빛은 눈이 멀 듯 길쭉한 가시가 될 터였다. 작고 단단한 구름떼로 얼룩진 하늘에는 목장의 종소리가 울려퍼졌고, 눈에 보이지 않는 새들은 이번에도 겨우 두 가지 혹은 네 가지 음밖에 내지 못하는 속박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있었다. 공기에는 물과 돌, 오래전에 죽어 이슬에 젖은 흙 속 깊은 곳에서 다시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것들의 향이 깃들어 있었다. 인적이 드문 그 시간에 건물들은 더이상 기술과 산업의 대상이 아니게 되어 그 안의 화석화된 자연을 드러내고 광물로서의 존재감을 띤 채 앞으로 나섰다. 산들바람이 비교적 고요한 공기 중에 녹아들었다. 너무 푸르러서 하늘의 파란색을 배경으로 검게 보이는 숲의 꼭대기도 흔들리기를 멈추었다. 잠시 아무것도 몸부림치지 않았고 모든 것이 휴식을 취했다. 시간이 결국 목적지에 이른 것만 같았다.
- 'Bonds'의 chapter 4
The mass production of the automobile created a phenomenal cir- cle of prosperity, in which consumption and employment fueled each other. A number of adjacent industries, from oil refineries to rubber factories, flourished around the motor car. Millions of miles of roads were paved. Fleets of trucks expedited commerce. At the beginning of the century there were some 8,000 cars registered in the United States By 1929 that figure had risen to almost 30,000,000.
자동차 대량생산은 놀랄 만한 번영의 원을 만들어냈는데, 그 안에서 소비와 고용이 서로의 연료가 되었다. 정유에서 고무 제조에 이르는 수많은 연관 산업이 자동차를 중심으로 번영했다. 수백만 킬로미터의 도로가 포장되었다. 트럭 부대가 상업을 촉진시켰다. 그 세기가 시작할 때는 미국에 등록된 자동차가 8,000대를 좀 넘었다. 1929년에는 그 숫자가 거의 30,000,000으로 불어났다.
- 'My Life'의 chapter 'A Destiny Realized'
It is not unlikely that I am still bound to confidentiality by that I ed agreement. This particular document has not come up in my archival research into Bevel's papers so far. The estate's counsel has told me that the law firm held on retainer back then no longer exists. And this is as far as I intend to take the matter.
내게 지금까지도 그 계약에 의한 비밀 엄수의 의무가 있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껏 내가 기록보관소에서 찾아본 베벨의 서류에서는 그 특정한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다. 저택의 자문 변호사는 당시에 의뢰를 맡았던 법무법인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 정도 선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 'A Memoir, Remembered'의 chapter II-2
I'm Adam, Eve. Mad, am I?
D F# E A / A E F# D
나는 아담이다, 이브. 미쳤나, 내가I’m Adam, Eve. Mad, am I?
D F# E A / A E F# D
- 'Futures'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1독평) ⟪혼자 있기 좋은 방⟫, 우지현 著 (0) | 2025.04.12 |
---|---|
(1독평) ⟪나 같은 기계들⟫, 이언 매큐언 著 (0) | 2025.03.30 |
(1독평) ⟪희랍어 시간⟫, 한강 著 (0) | 2025.02.23 |
(1독평) ⟪달리기⟫, 장 에슈노즈 著 (0) | 2025.02.17 |
(1독평) ⟪From the Mixed-Up Files of Mrs. Basil E. Frankweiler⟫ (국문명: '클로디아의 비밀'), E.L. Konigsburg 著 (1) | 2025.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