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인간관계와 같아서
평점이 하늘을 찔러도 나에게는 와닿지 않는 책이 있는가 하면,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을지라도 나에게 한줄기 빛을 선사해주는 책이 있다.

그런 면에서 최근에 읽은 '약한 연결'과 '아무튼, 연결'은 유명세와는 상관없이 내가 도움을 많이 받은 책이다.
취향과 생각을 함께 나눈 오래된 친구가 보내온 편지와도 같다. 마치 이렇게 속삭이는 듯 하다.
'너 계획 세워도 잘 못 지키지? 상황과 여건이 항상 바뀌는데 계획 세워봐야 무슨 소용인가 싶지?
하지만 그렇게 계획 없이 살다간 인생에 뭐가 남을까 걱정도 되고.. 내가 그런 너를 위해 생각 좀 해봤어'

'약한 연결'은 통제와 조절, 계획으로 위시되는 강한 연결만으로 인생을 채우지 말고, 새로운 활동이나 만남(이를테면 여행)을 주기적으로 추구하여 인생을 환기시키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웃긴 건 이 책이 아홉 챕터 정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홉 챕터 내내 같은 주장을 변주하여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는 짜증을 유발할 서술방식이었겠지만 한번 말해서는 말귀를 못 알아먹는 나에게는 고마운 전개방식이었던 셈.

'아무튼, 메모'는 무작위성이 한층 더 돋보이는 책이었다. 그탓인지 온라인 서점에서도 '메모에 대한 잘 정리된 고찰'을 기대했다가 실망한 사람들이 남기고 간 리뷰를 볼 수 있었는데, 반면 나는 정혜윤 작가님의 의식의 흐름과 엇비슷하게 흘러가는 탓에 되려 몰입하여 읽었다. 세상에, 나랑 비슷하게 삼천포에 잘 빠지는 사람도 있구나 하면서..? 이분도 치밀하게 계획된 삶을 살기보다는 순간순간 관조하고 몰입하며 살아가는 사람인 것 같은데, 그대신 메모를 통해 순간순간을 매듭 짓고 있다고 느꼈다.

계획을 잘 세우지 못하고,
계획을 세우더라도 이런저런 일에 휘말려 잘 지키지 못하고,
결국 계획이 무슨 소용인가 허탈해하는 나에게
'약한 연결'과 '아무튼, 메모'는 이러한 해법을 선사했다.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면, 지나간 순간을 잘 갈무리할 것


몇가지 글귀를 옮겨적어보면서 글을 마무리해보도록 하자.





약한 연결 (136-137쪽)

이십대에는 13회의 애니메이션을 한 번에 쉬지 않고 보기, 이틀 밤을 새워가며 게임하기, 한 작가의 책 스무 권은 한 번에 사서 계속 일기가 가능했다. 사실, 비평가의 감성은 이런 '양적인 훈련'으로 축적된다. 특히 하위문화는 그렇다. 하지만 삼십대 중반부터는 힘들어졌다. 아이가 생긴 것이 결정적이었다. 아이를 맞이하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지만 아무래도 업무 효율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 시기부터 인생의 자원은 한계가 있고 최첨단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얻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체력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기호를 확장해갈 수는 없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이는 '늙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가 들면 광대한 네트워크를 눈앞에 두고도 정보를 수집하는 필터가 막히고, 새로운 검색어를 생각할 수 없게 된다. 때때로 필터 청소를 해야 한다.

그래서 책을 읽거나 애니메이션을 보는 대신, 휴가 때는 외국에 가는 생활방식을 채택했다. 이 책은 그 결과 태어난 것이다.





아무튼, 메모 (45쪽)
사회가 힘이 셀수록 그저 흘러가는 대로, 되는 대로 가만히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살 필요가 있다. 메모를 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자신에게 선물하는 셈이고 결과적으로 메모는 '자신감' 혹은 '자기존중'과도 관련이 있다. 스스로 멈추기 때문이다. 스스로 뭔가를 불잡아서 곁에 두기 때문이다.

아무튼, 메모 (48쪽)
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능력이야말로 현대인에게 가장 부족하다. 이 세상엔 우리의 관심을 원하는 것들이 너무 많이 존재하니까. 우리는 스치듯이 살아가는 방법을 이미 많이 배웠다. 마치 스마트폰의 기사를 검색하는 손가락의 가벼움처럼. 그러나 무엇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가슴 아리게도 '설레는 느낌'도 없이 살게 된다.

아무튼, 메모(41쪽)
"메모같이 사소한 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이렇게 되물고 싶다. 우리는 항상 사소한 것들의 도움 및 방해를 받고 있지 않냐고. 강아지가 꼬리만 흔들어도 웃을 수 있지 않냐고, 미세먼지만 심해도 우울하지 않냐고, 소음만 심해도 떠나고 싶지 않냐고. 그리고 또 말하고 싶다. 몇 문장을 옮겨 적고 큰 소리로 외우는 것은 전혀 사소한 일이 아니라고. '사소한 일'이란 말을 언젠가는 자그마한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어질 것이라고.

아무튼, 메모 (161쪽)
메모를 한 사람은 누구라도 자신의 메모장 안에서 인내심과 경이로운 순간들, 생각들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728x90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고, 반전이 있을거란 것도 알고 있었는데.. 독서경험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내가 기대한 반전은 꺾인 복도에 숨어 있다가 앞에서 ˝얍!˝하며 친구가 웃으며 튀어나오는, 그런 익살스러운 성격의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이 선사한 반전은 알루미늄 야구배트로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정도의 충격이었다. 그것도 두대나 때리다니.

이번 경험으로 내가 어떤 전개방식을 좋아하는지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추리하게끔 하는 반전, 나중에 답을 알게 되었을 때 ‘아! 그걸 왜 내가 몰랐지.‘하며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반전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자각했다.

9장에서 조단이 제인 스탠포드를 독살했다는 강한 의구심을 품으면서부터, 두번이나 강하게 낙하하는 기분을 맞이하니 마음 추스리는 게 힘들다. 그런데 논픽션이라서 저자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다. 논픽션이면 사실 그대로 쓰는 것이 취지에 맞는데, 저자가 자신이 취재한 과정을 그대로 담아내겠다는데 내가 뭐라 그래. 그냥 내 취향을 이번 기회에 확인하는거지.

미국이 독일보다 먼저 우생학을 발전시키고 법제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의미는 있었다..


두줄평 :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첫 페이지였다. 그 호감이 잠시 유지되었다가 9장부터 미친듯이 실망


Picture the person you love the most. Picture them sitting on the couch, eating cereal, ranting about something totally charming, like how it bothers them when people sign their emails with a single initial instead of taking those four extra keystrokes to just finish the job—

Chaos will get them.

Chaos will crack them from the outside—with a falling branch, a speeding car, a bullet—or unravel them from the inside, with the mutiny of their very own cells. Chaos will rot your plants and kill your dog and rust your bike. It will decay your most precious memories, topple your favorite cities, wreck any sanctuary you can ever build.
-p.2

 

 

 

 

 

 



사람들은 내가 무언가를 더 하기 위해 4시 30분에 일어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에게 새벽은 극한으로 치닫는 시간이 아니라 잠시 충전하는 휴식 시간이다. 즉, 새벽 기상은 그 자체로 열심히 사는 방법이라기보다 계속 열심히 살기 위한 수단이다. 너무 힘들고 지칠 때 고요한 새벽에 따듯한 차를 마시며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에너지가 채워진다. 불안하고 우울할 때도 마찬가지로 이른 아침 나만의 시간을 통해 안정감을 찾는다. (Chapter "나에게 새벽은 휴식이다")

가끔 이 루틴에 실패하더라도 자책하거나 남은 하루에 악영향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Chapter "새벽은 내가 주도하는 시간", 재인용 문구)

일을 하느니 차라리 잠을 택하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일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피하고 미룬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공감할 것이다. 이렇게 업무가 한꺼번에 몰리거나 잘해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때 새벽에 미리 일을 시작하는 게 큰 도움이 된다. 회사가 아닌 안락한 공간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편안하게 업무를 처리하면 능률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즐겁게 일할 수 있다. (Chapter "밀린 일 처리하기")

물론 각자의 학습 스타일과 생활 패턴에 맞게 공부하는 게 중요하겠지만, 평소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새벽 기상만큼 효과적인 해결 방법은 없다. 저녁에는 이미 지친 상태여서 '회사만 아니면 공부를 더 할 수 있을 텐데…’ 같은 생각에 기운이 빠지는 반면, 새벽에 무언가를 공부하고 일과를 시작하면 학업 또는 회사 일과 다른 공부를 동시에 해내는 자신이 대견스러워 자신감이 높아진다. (Chapter "새벽 공부의 놀라운 힘")

나중에 낮잠을 잔다고 해도 지금은 일어나는 것이 우선이다. (Chapter "새벽에 일어나서, 나만을 위한 순간")



내용이 반복되고 아침시간에만 값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마냥 일반화한다는 평이 더러 있던데, 나에게는 하루의 주도성을 회복하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나는 밥 대신 잠을 택하는 인간이었고, 끊이지 않는 고민에 대책없이 야근하다 다음날에도 컨디션 난조로 고생하곤 했다. 저자의 본 의도는, 그저 현생에 치인 사람들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생에 대한 설레임을 일깨워주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본인에게는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제일 효과적이었던터라 권하고 싶었을 뿐이고. 

이 책을 접하고, (4시 30분에 일어나지는 않지만) 예전보다 한두시간 일찍 깨서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거나, 하다못해 미리 일을 시작하고 마음을 가다듬을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조금은 제정신으로 하루를 살아가게 되었다는 점에서 나는 이 책이 세상에 나와주어서 고맙다.

여기까지는 세상적인 관점에서 풀어낸 것이고, 김유진 변호사 간증 영상을 보면 그녀는 새벽시간을 하나님과의 교제로 채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 목표, 내 계획, 내 욕망이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도하심에 귀 기울이는 것으로 시작한 하루는 얼마나 귀할지 되돌아 보게 된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소음은 나의 마음을 조급하게 하지만, 주님이 원하시는 바를 잘 분별하고 따라간다면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주님은 나의 성공도 주님의 계획을 위해 쓰시고, 나의 실패도 사용하신다. 하루에 눈을 뜰 때 이 사실을 계속 떠올리자.

 

 

 


누군가가 나를 위해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나는 로자 아줌마가 그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돌봐주는 줄로만 알았고, 또 우리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밤이 새도록 울고 또 울었다. 그것은 내 생애 최초의 커다란 슬픔이었다. ('1장')

물론 나를 돌봐주는 대가로 누군가가 돈을 지불하고 있긴 했지만, 로자 아줌마와 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 둘 다 아무것도, 아무도 없다는…… ('4장')

젊은 의사는 한 시간이나 지나서야 나타났다. 로자 아줌마는 입에 거품을 물고 소파에 늘어져 있었고, 젊은 의사는 열 살짜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여긴 뭐하는 곳이냐? 유치원 같은 데냐?” 젊은 의사는 이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상기된 표정으로 내게 동정의 눈길을 보냈다. 르 마우트는 바닥에 주저앉아 질질 짜고 있었다. 로자 아줌마의 엉덩이에 다 쏟아버린 그의 행복이 억울해서였다. “그런데 말이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누가 이 노부인에게 헤로인을 주사한 거야?” 나는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그를 바라보면서 말없이 미소를 보냈다.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겨우 서른밖에 안 된 그 젊은 친구는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은 풋내기인 것을. ('10장')



이건 그냥 내 느낌인데 미국문학은 진취적이고 직선적인 맛이 있다. 주인공이 잠깐 멈춰서 고뇌하는 단계도 있지만 그건 언제나 다음 진도를 빼기 위한 디딤돌이라는 느낌. 그 때문에 스토리 전개가 시원하다.

반면, 이것도 그냥 내 느낌인데, 프랑스 문학이나 영화는 인생의 본질을 깊이 탐구하는 구석이 있다. 질리지도 않는지 인생과 그 안에 있는 고통, 즐거움, 슬픔을 계속해서 관조하고 관찰한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 예술이 도돌이표 예술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이 책을 읽는 중반까지도 로자 아줌마가 죽은 이후의 모모 이야기가 계속 진행될 줄로만 알았다. 예상과 달리, 이 소설은 사랑하는 사람 (로자 아줌마)의 죽음을 구심점으로 두고 뱅뱅 돈다. 도무지 그 구심점에서 뻗어나갈 생각을 않는 바람에, 나는 로자 아줌마를 힘겹게 떠나보내는 모모의 곁을 지킬 수 밖에 없었다. 곁을 지킨 그 끝에는 큰 보상이 있었는데, 이 열네살 짜리 꼬마는 결국 "사랑해야 한다"고 다짐하며 일어서주었다.

어찌할 수 없는 삶의 바닥에서, 그저 숨이 붙어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통스럽게 몸부림 쳐야 할 때가 있다. 이러한 딱한 인생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작가가 있듯이. 하나님도 당신의 삶을 지켜보고 계신다.


나는 나쁜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해본 다음에나 그 행복이란 놈을 만나볼 생각이다. ('10장')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읽혔다. 가벼워 보이는 제목 뒤에는 가볍지 않은 고찰이 자리잡고 있었다.

 

사안의 요모조모를 곱씹어 본 뒤 장기하가 내린 결론은, 세상사 중 상당부분은 크게 걱정하고 고민하고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결론이 싱거운가? 하지만 싱거운 음식이 몸에 좋듯이 싱거운 결론도 정신건강에 좋다. 단순한 한줄짜리 결론을 위해서 260쪽 남짓의 책을 쓴 것은 "상관없다"는 것을 납득시키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독자를 설득하기 이전에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한 과정 말이다. 

 

나는 생각이 많아서 인생스텝이 종종 꼬이는 인간인데, 장고 끝에 심플한 결론을 내리는 장기하의 사고방식이 신선했다. 오랜 시간 고민했다고 복잡한 결론을 내란 법은 없는데 말이지. 시도해봄직하다. 인상 깊었던 몇가지 구절을 인용하고 서평을 이만 줄이고자 한다.


나는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산다. 그런데 이것은 달리 말하면 하고 싶은 것이 없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한다. 물론 공연이라든지 녹음이라든지 정해진 일정이 있을 때는 그럴 필요가 없지만, 그 일정들도 따지고 보면 매일 고민한 결과로 생긴 것들이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나는 잠에서 깨는 순간 출근을 하는 셈이다. 정신이 들자마자 '너는 무엇을 하고 싶냐'고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물음에 나 자신은 그리 자주 대답해주지 않는다. 대답을 듣더라도 불명확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뾰족한 수 없이 하루를 지나 보내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너무 실망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크게 좌절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하루의 어느 순간에는 스스로 퇴근해야 한다. 그런데 이 퇴근이라는 것도 간단하지 않다. 정해진 장소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뇌만을 이용해 내 뇌를 퇴근시켜야 한다. 그것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고? 나 역시 아직 연구하는 중이다.
   -'자유의 그늘' (116~117쪽) → (사견) 재택근무의 고충을 잘 알 수 있는 문단이다.

 

다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자유롭다고 자부하는 나의 삶도 늘 시원스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퇴사에 관한 산문들을 읽으며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직장인분들이라면 십중팔구 나 같은 사람을 부러워할 것이다. 하지만 뭐랄까, 나는 삶이란 늘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더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더 외로워질 것도 각오해야 한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란다. 자유 따위 좇아봤자 소용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글에서만도 여러번 반복했지만 나는 자유를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고, 따라서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분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당신의 오늘 하루가 원하는 만큼 자유롭지 못했다고 해도, 바로 그 때문에 누렸던 무언가는 있을 것이다. 내가 하루종일 막막함에 시달렸고 그래서 방금 밤 산책을 하며 쓸쓸함을 느끼긴 했지만 어쨌건 오늘도 마음대로 사는 데 성공한 것처럼 말이다. 
   -'자유의 그늘' (119~120쪽)

 

다가오는 방식이 제각각이니 내 기분 역시 그때그때 다를 수밖에 없다. 가끔 너무 무례하게 말을 거는 분을 만나면 기분이 나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어느 정도는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내 직업은 기본적으로 관심을 먹고사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헐, 대박, 장기하!' (122쪽)

 

나는 사람의 죽음도 일몰을 바라보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연인과 헤어지거나 유학길에 오르는 친구를 배웅하는 일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죽음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 아니냐고 묻고 싶은 분도 있을지 모른다. 만약 그런 분이 있다면 조심스레 되묻고 싶다. 혹시 일몰을 바라보고 연인과 헤어지고 친구를 배웅하는 일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냐고 말이다. 

   -'만약 의견을 낼 수 있다면' (237~238쪽)


아 참, 그리고 '상관없는 거 아닌가'로 시작해서 '상관없는 거 아닌가'로 끝나는 수미상관 구성도 깨알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프롤로그 (13쪽)
에필로그 (263쪽)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린도전서 13장 12절

 

 

 

 

우리를 지적으로 만드는 힘은 배운 지식과 익힌 교양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아름다운 단면들을 스스로 발견해내려는 노력과 인간답게 살아가는 기쁨을 만끽하려는 타고난 본성일 뿐입니다. 지적 생활이란 무엇인가를 이룩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순수하게 삶의 진리를 찾아나서는 아름다운 여정입니다. 그것은 가장 위대한 진리와 작은 진리 사이에서, 반드시 따라야 하는 정의와 개인의 생활 사이에서 늘 꿋꿋하고 당당하게 고귀한 쪽을 선택해나가는 것입니다. 

-Chapter "서문"


중학생 시절, 나는 시험공부가 어렵다며 종종 어머니한테 달려가서 칭얼대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화이팅 넘치는 동기부여 멘트 대신 당신 곁에 나를 앉히고 교과서를 같이 읽어주셨다. 한줄한줄 읽을 때마다 어머니는 문장을 곱씹기도 하고, 그 배경과 행간의 의미를 유추해보기도 하고, 모르는 개념이 나오면 백과사전 등 참고도서를 같이 찾아보기도 했다. 한 문단 정도 그렇게 읽고 나면 어머니는 뿌듯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곤 하셨다. "재밌지 않니?"

 

재미있지 않냐니- 당장 내일모레 중간고사에서 시험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나로서는 굉장히 인상깊은 말이었다. 돌이켜보면 공부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아서 혼난 적은 있어도, 시험점수가 형편없다고 어머니에게 야단맞은 적은 별로 없었다.

 

좌우지간 어머니와의 이런 기억은 오늘날까지도 내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정 개념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인터넷을 돌아다니고 책을 사모은다. 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당장 나에게 뭐라고 할 사람은 없지만, 배움의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허투로 흘려보낼 문장/개념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개념 이해에 결국 실패하는 경우도 많지만 간혹가다 수수께끼가 풀리는 귀한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면 예의 그 말이 재생된다: "재미있지 않니?"


유감스럽게도 익혀야 될 지식을 선택하는 데 있어 정해진 기준은 없습니다. 지금 문득 생각난 것이 있는데, 가장 합리적인 기준은 알고 싶다, 궁금하다고 느꼈던 기분입니다. 그 기분을 순수하게 믿어야 됩니다. 만일 당신이 무엇인가 궁금한 것이 생겼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당신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이런 기분도 전적으로 옳다고 말하기 힘들지만, 그나마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왜곡된 의견보다는 낫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주의할 점은 인간은 자신과 관련이 없는 것들에 간혹 의문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의문으로 그쳐야 되는데 의문이 확신이 될 때까지 추구하다보면 정작 관심을 가져야 될 것들에 소홀해지기도 합니다.

-Chapter "배움은 다양할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친구에게"


2020/04/04 - [도서] - '지적 생활의 즐거움'을 다시 꺼냈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말했지만, 이 책은 점수 따는 법을 알려주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배움 예찬서'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방법론을 논하는 책 (이하 "자기계발서")과는 오히려 상반되는 주제의식을 가졌다고도 느껴진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짧은 시간에 최대의 효과 (점수, 자격증 등)를 낼 수 있는 방법을 논하다보니 학습내용 마저도 전략적으로 접근한다. 이 과목은 과락을 면하는 정도만 공부하자, 이 부분은 시험에 거의 나오지 않으니 넘어가자, 지금은 이해할 수 없으니 이렇게 일단 외워두자 - 뭐, 주로 이런 문장들이었다. 한때 이런 단호한 말들에 혹해서 경주마 처럼 앞만 보고 달렸는데 지금 보면 나와 영 맞지 않는 조언이었다. 


매일같이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지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지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지식노동에 회의감을 느껴 교양으로부터 멀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식을 활용하는 기술만 늘어나는 것입니다. 지성과 교양의 궁극적 목표인 개인의 완성과 성취감, 행복은 사라지고 오직 지식이 재물로 변환되는 물질적 성과에 급급하게 되어 지식인임에도 지성인이 되지 못하는 사람도 우리 주변에는 많습니다.

- Chapter "가난한 지식인에게"


반면 '지적 생활의 즐거움'은 독자에게 잠시 멈춰서서 생각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스스로의 궁금증을 존중해주고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을 본인이 직접 찾아가도록 용기를 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당신 자녀보다도 중간고사 공부에 재미를 느끼셨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사회가 알아주는 자격증, 점수를 얻어내기 위해 남들이 알려주는 지름길을 무작정 가기 보다는, 내 지적세계를 스스로 세워나가게끔 도움을 준 어머니와 이 책에 감사를 표한다. 


당신의 조부는 지적 생활 앞에서 절박함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몰라서 초조해진다거나, 불안해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두려움을 모르고 사셨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그분은 매일 하고 싶은 공부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처럼 쫓기는 사냥감의 심정으로 지식의 문을 두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미식가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살이 찌듯 그분은 즐기듯 지적 영역을 탐구했고, 세월이 차곡차곡 쌓여감에 따라 지성인으로서 발자취가 확대되었습니다.

당신의 조부는 자신이 지적으로 불완전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타인과의 비교로 불행한 압박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분은 고대 로마인처럼 라틴어를 아름답게 구사하지는 못하셨습니다. 그렇다고 라틴어 실력이 부족하다며 스스로를 책망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만일 당신의 조부가 고대 로마인을 만나 그가 하는 말을 반밖에 알아듣지 못했더라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분은 당대 라틴어 전문가들과 비교해 월등한 능력을 보여주셨으나,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분에게 라틴어는 지적 즐거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조부께서는 누군가와 경쟁하려고 서재에 틀어박혔던 게 아닙니다. 세상의 강요로 서재에 갇혔던 것도 아닙니다. 고대 로마의 저술과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 위해 자발적으로 책을 읽었고 라틴어를 공부하셨습니다. 그곳에서 당신의 조부는 철저히 혼자였으나 외롭지 않았습니다. 책장에 남아 있는 위대한 지식인들의 생명이 치구가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Chapter "여러 분야를 공부해야 한다고 집착하는 친구에게"


번외로, 얼마전 홍진경이 '공부왕찐천재 홍진경'이라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기에 영상을 몇개 봤는데 굉장히 고무적이었다. 딸이 질문할 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공부 채널을 개설하는 데 제일 큰 동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녀의 교육만이 걱정이었다면 비싼 과외선생님 붙여줘도 됐을텐데, 홍진경 본인도 배움에 대한 갈증이 꽤 컸던 것 같다. 그 갈증이 있음을 선언하고 해결하려는 모습이 멋있다. 

 

 

응원합니다 홍진경님.


마음이 성실한 자에겐 보상의 시기가 반드시 찾아오는 법입니다. 노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인생을 약속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실망은 시키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감사할 때 인생은 더 많은 노력을 선물로 베풀어줍니다.

당신 인생에 함부로 명령을 내리지 마십시오. 당신을 반대하는 자들에게 미소로 승리하십시오. 당신 자신에게 반항하십시오. 그리하면 이루어질 것입니다. 남에게 명령할 때는 웃는 낯으로 하십시오. 웃음은 칼보다 강합니다.

-Chapter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 실패를 거듭하는 지식인에게"

 

 

 

 

 

 

이 책은 1년 가까이 붙들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어제 다 읽었다. 끝마무리 짓기 힘들어하는 나로선 완독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쁘다. 삼천포로 잘 빠지는 성격인지라, 턴키 방식, 체비지와 같이 모르는 개념이 나오면 검색하려고 스마트폰을 집어들고는 이내 유튜브 영상을 보는 본인을 발견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여간 재미있게 읽었다. 원래 논밭이 많고 저지대라 침수가 잘 되던 미개발 지역이 몇십년 새에 서울 노른자 땅으로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이 복잡하고 흥미롭다. 원래 섬이었던 잠실이 뭍이 되기까지의 과정, 예술의전당이 지리적으로 접근하기 힘든 이유, 목동 주민의 투쟁과정 등등 여러 에피소드를 읽고 나니, 서울이 다시 보였다. 대법원과 국회의사당이 고층건물도 아닌데 우뚝하니 돋보였던 이유를 되짚기도 하고, 아크로비스타와 목동에 아픈 과거가 있었음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쉬웠던 것은, 지도 자료가 풍부하게 실리지 않았던 점이다. 가령 잠실섬과 부리섬의 위치, 한강다리 위치를 저자가 줄글로만 위치를 설명하니 도무지 머리 속으로 그려지지 않아 인터넷을 헤매야 했다. 추후에 개정증보판을 내게 된다면 사진만큼이나 지도자료도 보완을 해주면 정말 좋겠다.

 

 

 

728x90

 

‘권위’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이라고 한다. 근거 없이 강제력을 행사하는 의미로 느껴져 여전히 거부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저자인 마틴 로이드 존스는 영국인이었으니, 영어단어인 ‘Authority’의 어원을 따져 보았다. Authority는 라틴단어 auctor에서 파생되었는데, 이는 창조자, 창건자, 시조라는 뜻이란다. 결국 ‘권위 (authority)’는, 그 어원을 따라 올라가보면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을 가지는 주체가 어떤 현상이나 사실관계 등의 근본/근원이 되기 때문임을 내포하고 있다. 

세상에 있는 권위는 보통 누군가가 위임해준다. 대통령이 대법관을 임명하고, 학급 급우들이 반장/부반장을 뽑는다. 세상의 권위는 파생적이지만 만유의 근원이시자 세상을 만드신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님이 가지시는 권위는 본래적인 성질을 갖는다.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시는 성부 하나님 (출 3:14)과,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었다고 말씀하시는 성자 예수님 (요 8:58)은 권위를 위임받은 것이 아니다. 성삼위일체는 근원적인 존재이기에 이미 순수한 의미의 권위를 가지고 계셨다.  

자식이 부모에 대하여 권위를 가진다. 제자가 스승에 대하여 권위를 가진다. 굉장히 이상하게 들린다. 양육/교육의 대상이 양육/교육의 주체 (근원)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말이 이치에 맞지 않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성도들은 성삼위일체로부터 나온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 그리고 성령을 마음대로 재단하는 것을 방임하며, 심지어는 세상의 판단에 기대는 것이 교회, 성경, 성삼위일체의 권위를 세워준다고 착각한다. 나 또한 이러한 내적 갈등에 휘말릴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기점으로 다시 다짐하고자 한다. 나와 세상의 근원 되시는 성삼위일체의 권위에 기대어 발언하기로 말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