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는 1886년에 등장했습니다. 지금도 메르세데스 벤츠로 명맥을 잇는 칼 벤츠가 처음으로 만들었으며, 단기통 954cc 엔진으로 시속 16km 정도로 주행할 수 있었죠. 그 시작은 미약했습니다.
- 3. 자율주행: 테슬라가 꿈꾸는 기계 (자율주행차가 바꿀 미래) 

Chapter 3 '자율주행: 테슬라가 꿈꾸는 기계'는 비교적 재미있게 읽었다. 기술적인 내용이 도로상황 인식기능에 치중되어 있어서 조금더 쉽게 읽힌 탓도 있었다. 레이더, 라이더, 카메라와 같은 여러 센서들을 중첩하여 도로의 장애물과 차선을 구분하는 줄은 몰랐다. 그렇게 여러 센서들이 보내온 데이터를 베이즈 정리를 통해 라벨링하여 도로상황을 판단하는 것으로 이해가 되었다. 인간인 나는 도로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판단하는지를 계속 생각하며 읽으니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 챕터가 재미있었던 진짜 이유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몰고 올 도덕적 판단의 문제와 산업재편의 가능성을 짚어준 데 있었다. 도덕적 딜레마 부분에서는 마이클 샌델 아저씨가 이야기한 트롤리 문제 (한명의 희생과 여러명의 희생 중 무엇을 택할 것인지)가 회자되는데, 완전자율주행 개념이 도입된다면 이러한 가치판단 문제도 자율주행기계가 결정하게 될 것이란 생각에 섬짓해진다. 아래 대목을 읽자마자 '역시 인간만이 자동차를 운전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고개를 쳐들 수 밖에 없음..

도덕 기계의 연구 결과뿐만 아니라 자율주행차의 딜레마에 관한 별도 연구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연구에서 참가자의 76%는 10명의 보행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1명의 탑승자를 희생할 수 있다고 답변합니다. 그 편이 훨씬 더 도덕적이라는 거죠. 하지만 자신 또는 가족이 그 차에 탑승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는 얘기를 듣고 “그래도 다수를 살리도록 하는 그 차를 구매할 것이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불과 19%만이 구매하겠다고 대답합니다.
- 3. 자율주행: 테슬라가 꿈꾸는 기계 (자율주행의 딜레마, 누구를 희생해야 할까?)

 
자율주행기술이 개발될 수록 모빌리티 서비스야 당연히 재편되겠지만, 숙박산업도 영향을 받으리란 생각은 못했다. 모빌리티 기술이 고도화되면 경유지에서의 숙박업 수요와, 덩달아 부동산 수요도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는 말.. 내가 변화를 싫어해서인지 산업이 재편된다, 시장이 바뀐다는 말에는 자연스레 긴장이 된다.

대중교통에도 큰 변화가 생깁니다. 버스와 지하철 중심의 교통체계는 지하철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고 골목마다 들어선 마을버스라는 개념도 재정의할 필요가 있겠죠. (...)

호텔 산업도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더 이상 중간 지점에서 숙박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마치 야간열차 침대칸을 이용할 때처럼 이동 중에도 자율주행차에서 숙박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아서 크게 영향을 받진 않겠지만 미국처럼 큰 나라는 엄청난 영향을 받게 될 거예요. 부동산 업계도 요동칠 겁니다. 자율주행차가 이동의 제약을 줄이면 대중교통이 편리한 입지의 의미가 많이 약화됩니다. 이에 따라 부동산 가격의 기준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지겠죠.
- 3. 자율주행: 테슬라가 꿈꾸는 기계 (자율주행차가 바꿀 미래)

 
이렇게 자율주행 기능에 대하여 읽어보았다. 챕터 3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수학 교양서도 시도해봐야 겠다. 눈치코치로 읽어나가긴 했지만, 아무래도 문과생이다 보니 베이즈 정리가 자율주행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정확하게 알기 어려웠다. 컨볼루션 신경망 부분도, 개념을 이해하고 싶어서 유튜브영상을 몇개 찾아보았지만 기초적인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제 중고등학교 시절의 문제풀이용 수학공부에서 벗어나,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이해하기 위한 수학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시점.. 

 

다르파는 이른바 ‘미친 과학국’이라는 별명을 지닌 기관입니다.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자, 깜짝 놀란 미국이 이에 대응하여 창설한 군사적 목적의 연구기관입니다. 혁신적인 연구를 후원하는 정부기관으로도 유명하죠. 1969년에는 인터넷의 원형으로 일컬어지는 아파넷ARPAnet을 개발해 유명해졌습니다.
- 3. 자율주행: 테슬라가 꿈꾸는 기계 (자율주행의 시작, 다르파 그랜드 챌린지)
2004년에 개최한 첫 자율주행대회에도 상금 100만 달러가 걸려 있었습니다. 다르파가 이처럼 상금을 내건 이유는 군사적 목적의 자율주행차를 개발하기 위함이었죠. 미군은 보급품을 싣고 위험한 군사 지역을 통과할 때 자율주행차를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차량이 공격을 받거나 폭발하더라도 인명 피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당시 미국 의회는 다르파 그랜드 챌린지를 승인하면서 2015년까지 지상 군용 차량의 3분의 1을 무인으로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합니다. 물론 2022년인 지금까지도 실전에 투입된 지상 군용 자율주행 차량은 1대도 없으니 지나치게 낙관적인 계획이었죠. 어쨌든 대회 장소 또한 당시 이라크 전쟁(2003~2011년) 중이던 중동 지역의 전투 현장과 비슷한 캘리포니아의 모하비사막을 택합니다. 
- 3. 자율주행: 테슬라가 꿈꾸는 기계 (자율주행의 시작, 다르파 그랜드 챌린지)
이제 더 이상 네모난 물체는 바위이고, 움직이는 물체는 새라는 식으로 규칙을 일일이 입력하지 않습니다. 스런이 “자동차가 스마트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두세 가지 법칙이 아니라 수만 가지 법칙이 필요하다”라고 했지만 그렇게 많은 규칙을 일일이 입력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자율주행차는 베이즈 정리(Bayes’ Theorem)라는 유명한 공식을 기반으로 운행을 해나갑니다.
- 3. 자율주행: 테슬라가 꿈꾸는 기계 (자율주행의 공식, 베이즈 정리)
현대 통계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로널드 피셔(Ronald Fischer, 1890~1962)는 확률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이런 베이즈 정리를 매우 강하게 비판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베이즈 정리는 지나치게 주관적이라는 거죠. 피셔를 중심으로 하는 통계 추종자들을 빈도주의자Frequentist라고 하는데, 이들은 베이즈주의자가 과학의 객관성을 훼손한다고 보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빈도주의자들이 이해하는 확률은 출현 빈도수입니다. 예를 들어 주사위를 600번 굴려 4가 100번 나왔다면 확률은 정확히 1/6인 거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전적인 통계 방식이기도 하며, 학창 시절에 우리가 배운 통계도 바로 이 빈도주의에 따른 겁니다. (...)

주사위를 던져 4가 나올 확률이 1/5.4이라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인가요? 하지만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확률입니다. 주사위를 계속해서 사용하다 보면 주사위의 한쪽 면이 닳거나, 모서리가 뭉개지거나 하면서 말이죠.

아직도 베이즈 정리가 와닿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가격 결정의 원리를 떠올려봅시다. 시장에서 물건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나요?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됩니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 가격이 떨어지고,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가격이 올라갑니다. 이렇게 가격은 점차 조정되다가 마침내 균형에 이르게 되죠. 확률을 믿음으로 보는 베이즈 정리도 이와 비슷합니다. 믿음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다가 균형에 이른다는 점에서 말이죠. 실제로 자본주의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90)와 베이즈 정리의 토머스 베이즈는 동시대 사람이며, 두 사람 모두 스코틀랜드에서 교육받았고,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76)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많은 부분이 유사합니다. 결국 이 둘은 대중이 지닌 지혜의 장점을 취하는 합의 추구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 3. 자율주행: 테슬라가 꿈꾸는 기계 (자율주행의 공식, 베이즈 정리) 

뭇사람들은 수학이나 과학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오면 무조건적인 진리라고 여길텐데, 그 옛날에는 베이즈주의자들과 빈도주의자들 간에 논쟁이 있었다는 사실도 신기하게 느껴진다. 현대사회에서 과학/수학을 절대무오의 진리로 여기는 오늘날의 경향성을 보았을 때, 옛날 사회 분위기가 조금 더 건강했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 많은 가정에서 사용하는 스마트 스피커와 비교해보죠. 카카오미니나 SKT NUGU가 100번의 발화 중 99번을 제대로 알아듣는다면 정말 훌륭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100개의 정지 신호 중 99개를 제대로 인식하는 자율주행차가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마찬가지로 박수 쳐줄 생각이 들까요? 자율주행 기능에는 엄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 한번의 오인식으로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죠. 
- 3. 자율주행: 테슬라가 꿈꾸는 기계 (완전 자율주행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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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말했다시피, 5부 초중반부터 번역 문제로 더스토리 출판사에서 현대지성 출판사로 넘어가게 되었다. 실은 처음부터 번역을 의식하였던 것은 아니고, 밖에 들고 다니기에는 무거운 벽돌책인 관계로, 밀리의서재나 크레마클럽에서 다운 받아 볼 수 있는 현대지성 출판사 버전을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두 출판사의 번역본을 비교하게 된 것이다.



제4부에서는 벤허가 중요한 조력자들을 만났다면, 제5부에서부터는 여러 도움과 본인의 능력을 바탕으로 벤허가 행동 개시에 나선다. 여기서 그 유명한 전차경주 장면이 나온다. 총 7부로 구성된 '벤허'에서 5부만 전차경주의 준비과정과 진행을 다루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전차경주 그 자체에 할애된 페이지수는 책 전체로 따져봤을 때 그리 많지 않음을 감안하면, '벤허'하면 전차경주만 떠올리는 세간의 인식이 조금 아쉽다는 생각도 해본다. 다른 재미있는 부분도 참 많은데..

예를 들면 이라스가 내심 메살라를 마음에 두고 있으면서 벤허를 꼬시는 과정이라든지, 메시아는 어떤 모습으로 오실런지에 대한 논쟁, 전차경주 이후에 벌어진 피습(?)위기를 벤허가 어떻게 모면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도 전차경주 못지않게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영화 '벤허'를 보신 분들도 책을 일독해보셨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다른 디테일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

만약에 벤허 독서토론 기회가 있고, 그 중에서도 5부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세션이 있다면, 내가 물어보고 싶은 질문은 '왜 루 월리스는 네네호프라 이야기를 넣었을까?'이다. 네네호프라 이야기 자체가 상당히 흡인력이 있지만 전반적인 5부의 흐름에서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어찌되었든, 5부는 4부에 비해 사건사고가 많기 때문에 조금더 박진감 있게 읽어나갈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네네호프라

  I.
  이 세상에 똑같은 인생은 없답니다.

  굴곡 없는 삶도 없지요.

  가장 완벽한 삶은 원처럼 돌고 돌아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게 시작점에서 끝이 나죠.

  완벽한 삶은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는 보물이지요. 위대한 시대에 그분께서는 약지에 그 보물을 끼신답니다.

- 제5부 제3장
“그동안 얻은 수입 553달란트에 제가 맡은 선대 주인님의 원금 120달란트를 합치면 673달란트가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 도련님 것입니다. 이 정도 금액이면 도련님을 세상 최고의 갑부로 만들어 주고도 남을 돈이죠.”

 시모니데스는 파피루스 낱장들을 에스더에게서 받아 하나로 모은 후 잘 말아서 벤허에게 주었다. 그의 태도에서 느껴지는 자부심은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그 자부심은 의무를 잘 완수했다는 의식에서 나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모니데스 자신과는 상관없이, 벤허에 대한 의무감이었을 것이었다.

- 제5부 제7장
"(...)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무작정 나아가야 할까요? 왕께서 나타나시거나 저를 부르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할까요? 당신은 나이도 많고 경험도 풍부하시니 대답해 주세요.”

- 제5부 제8장
"(...) 그리고 이곳에 남아 있어 봤자 개죽음을 당할 것이 뻔하니 당장 일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제5부 제8장
"(...) 에스더, 그곳의 삶이 내게는 너무도 조용해.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나태한 습관에 젖어 스스로 비단 족쇄에 묶인 기분이 들지. 얼마 지나면 아무것도 해놓은 것 없이 인생이 끝날 것 같은 기분에 시달려 오히려 불안하다오.”

- 제5부 제9장
실내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메모를 읽는 동안 모든 사람이 그대로 얼어붙은 것 같았다. 메살라는 그 메모를 뚫어져라 응시했고, 그동안 놀라서 휘둥그레진 눈길들은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아주 최근에도 같은 장소에서 주위에 있던 로마인들에게 똑같이 뻐긴 적이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기억할 것이었다. 만약 서명하기를 거부한다면 영웅으로서의 체면을 구길 것이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서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100달란트는 고사하고 20달란트도 없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메살라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서 있었다. 얼굴에서는 핏기가 싹 가셨다.

- 제5부 제11장
나팔 소리가 울리는 순간의 경기장 전체 내부를 이렇게 돌아보았으니, 모든 관중이 일시에 쥐죽은 듯 고요해지며 강렬한 호기심에 사로잡혀 미동도 앉은 채 앉아 있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 제5부 제12장
정확한 비율이 확실치 않았으므로 그 거실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없었다. 건물 내부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방이 깊게 뻗어 있었다. 찬찬히 살펴보려고 멈춰 서서 바닥을 내려다보았더니 백조를 애무하는 레다의 가슴 위에 서 있는 꼴이 되었다. 좀 더 멀리 보자 바닥 전체가 신화 속 주제를 표현한 모자이크 그림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디자인이 각각 다른 등받이 의자와 등받이가 없는 의자들, 절묘하게 만들어진 예술품, 깊게 조각한 탁자들, 올라와 누워 달라고 손짓하듯 침상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벽 가까이 서 있던 가구들은 마치 잔잔한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바닥에 또렷이 비춰져 있었다. 심지어 벽장식과 그 위에 그림과 얕은 돋을새김으로 표현된 인물의 모습, 천장의 프레스코화조차도 바닥에 비춰져 그대로 드러났다. 천장은 아치 모양으로 둥글게 굽어 있었고 중앙 부분은 뚫려 있어서 그곳을 통해 햇빛이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왔고 더없이 푸른 하늘은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 제5부 제16장
여전히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는 점점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고 이라스가 왜 그렇게 꾸물거리는지 궁금해졌다. 다시 바닥에 그려진 신화 속 인물들을 따라가 보았지만 처음에 살펴보았을 때처럼 만족스러운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살피다 무슨 소리가 들리나 싶어 자주 멈춰 서서 귀를 기울여보았다. 이윽고 초조한 마음이 조금씩 엄습하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커졌다. 마침내 집안 전체를 감싸고 있는 침묵이 의식되기 시작하자 마음이 불안해지고 의구심이 생겼다.

- 제5부 제16장




퀸투스 아리우스의 양자가 되어 새로운 신원으로 로마를 누빌 수 있게 된 벤허는, 이스라엘과 허 가문 복수를 위해서라면 로마의 정치적 몰락만이 답이라 생각하여 군사 훈련 등을 통해 개인 기량을 다듬으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 이 와중에 벤허는 아버지의 대리인이었다던 상인 '시모니데스'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를 만나러 가지만, 자신이 허 가문의 아들임을 밝힐 객관적인 증거를 내밀지 못해 결국 이렇다 할 소득 없이 시모니데스의 집을 나서게 된다. 하지만 시모니데스는 벤허를 보고 허 가문의 아들임을 직감하고 하인 말루크를 보내 벤허의 동태를 살펴보게 하는데...

제4부에서는 앞으로의 벤허 여정을 조력자로서든 적대자로서든 함께 할 주요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시모니데스, 일데림, 발타사르, 말루크, 에스더, 이라스 그리고 메살라까지.. 또한 4부는, 벤허가 구세주에 대한 이야기를 발타사르로부터 전해듣게 되면서, 내실 다지기에 집중했던 지난날을 뒤로 하고 본격적인 행동 개시에 나서기로 결심하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루 월리스는 이번에도 친절하게 '벤허가 내실을 다지는' 다소 지루한 구간을 건너 뛰었다.)

4부를 읽으면서 믿음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한다. 벤허는 그 당시 유대인 기준으로 믿음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타사르의 구세주 이야기('정복자 왕이 아닌 영혼의 구원자로 오실 메시아')에 납득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고정관념으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을 바라보면 안 되는데, 사람의 머리로 생각하는지라 그렇게 아니하기가 참 어렵다.

"(...) 분개한 총독이 말 그대로 집안을 통째로 쓸어버렸죠. 한 명도 남기지 않고요. 저택을 봉쇄해서 지금은 비둘기 소굴이 되었고, 땅도 몰수했지요. 허 가문 소유로 밝혀진 재산은 모두 몰수했어요. 총독이 상처에 황금 연고를 바른 셈이지."
승객들이 웃었다.
"그가 재산을 차지했다는 뜻이군요."
누군가 이렇게 말하자 히브리인이 대답했다.
"그렇다고들 하더군요. 난 들은 대로 이야기하는 것뿐이니. 한편 이곳 안디옥 지점의 대리인이던 시모니데스는 얼마 후 본인 이름으로 장사를 시작했는데, 놀랍도록 빠른 시간에 손꼽히는 거상이 되었습니다. 옛주인이 하던 대로 카라반을 인도에 파견했지요 현재 바다를 누비는 그의 갤리선들은 왕실 함대만큼이나 많고요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엇나가는 법이 없다고들 말합니다. 그의 낙타들도 늙어 죽으면 모를까 죽지 않고, 배들은 침몰하지 않지요. 시모니데스가 강에 작은 돌멩이를 던지면 황금으로 되돌아온다고 하네요."
"그렇게 잘 나간 지 얼마나 됐습니까?"
"10년이 채 안 될겁니다."
- 제4부 제1장 (p.247~248)
알고 보니 조각상은 경이로운 미모의 다프네였다. 하지만 벤허는 여신의 얼굴을 힐끗 쳐다볼 짬도 없었다. 조각상 아래에 호피를 깔고서 남녀가 끌어안고 자고 있었다. 옆에는 일할 때 쓰는 도구들(청년의 도끼와 낫, 아가씨의 바구니)이 시드는 장미더미 위에 내동댕이 쳐져 있었다.
이런 광경에 벤허는 깜짝 놀라서, 서둘러 향기 나는 잡목 숲으로 되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위대한 숲의 매력은 두려움 없는 평화였고, 그런 점에 반할 뻔했다. 그런데 벌건 대낮에 남녀가 끌어안고 자는 모습에서(다프네의 발 아래서 이렇게 자는 모습에서) 그는 깨달은 것이다. 이 숲의 원칙은 사랑이나, 원칙 없는 사랑이다.
이게 다프네의 달콤한 평화다!
이게 여신을 신봉하는 자들의 종착지다!
이것을 위해 왕후장상들은 재산을 헌납했다!
- 제4부 제6장 (p.294~295)
"(...) 일데림 족장은 로마를 좋아하지 않거든요. 원한이 있어요. 3년 전에 파르티아인들이 보스라에서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로에서 카라반을 급습했습니다. 카라반의 물품에 그 지역에서 걷은 세금이 들어 있었지요. 도적들이 사람들을 다 죽였지만, 로마의 감찰관은 그 세금의 완납만 닦달했습니다. 그러니 세금을 이중으로 내게 생긴 농부들이 황제에게 하소연했고, 황제는 헤롯에게 보상하게 했고, 헤롯은 반역적인 의무 불이행이라면서 일데림의 재산을 몰수했어요. 족장이 황제에게 호소했지만 황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대답을 했어요. 그래서 노인은 감정이 상해서 앙심을 품었고, 나날이 복수심을 키우고 삽니다."
- 제4부 10장 (p.326)
"그러면 좋겠네요."
에스더가 부드럽게 말을 맺었다.
그 말이 아버지의 관심을 끌었다. 말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말에 담긴 바람 때문이었을까. 아주 큰 나무에 아주 작은 새가 앉아도 가장 멀리 있는 잎까지 흔들림이 전해지는 법. 사람들은 때로 아주 사소한 말에도 민감해진다.
"그가 돌아오기를 바라느냐, 에스더?"
- 제4부 11장 (p.333)
2천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는 안다. 신 스스로 진정한 신이요 주인이요 구원임을 증명하는 것 외에 이 혼란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은 없음을. 하지만 당시에는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자들조차 오직 로마의 붕괴에서 희망을 찾았다. 로마가 무너지면, 복구되고 재편성되면서 구제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도하고 음모를 꾸미고 반란을 일으켜 싸우다가 죽었다. 그렇게 오늘은 피로, 내일은 눈물로 땅을 적셨지만 결과는 매양 똑같았다.
- 제4부 15장 (p.381)

"(...) 구원이 누구에게 있을까? 온 세상에 있소. 구원이 어떻게 올까? 믿음을 굳건히 하시오, 젊은이! 다들 로마가 완전히 무너져야 행복해진다고 믿지. 신을 몰라서가 아니라 통치자들의 실정 때문에 문제들이 생겼다고 말이야. 하지만 난 반대로 생각한다오. (...) 구원이 정치적인 목적이 될 리 만무하오. 통치자와 권력자는 끌어내리면 그 빈자리를 다른 자가 차지하고 위세를 떨칠 뿐이오. 그런 게 구원이라면 신의 지혜가 인간사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말 아니겠소. 나도 그대들만큼이나 모르기는 매일반이지만 그래도 말해 보자면, 오실 분은 영혼을 구원하실 게요. 신이 이 세상에 다시 오셔서, 그가 여기 머무는 것이 견딜 만해지도록 정의가 이루어진다는 뜻이오."
벤허는 고개를 숙였다. 얼굴에 드러나는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 제4부 제16장 (p.388~389)

부당함을 바로잡으려는 사람은 잘 싸우지만, 영광스러운 결과를 앞에 두면 휠씬 더 잘 싸우기 마련이다. 그에게 상처의 약이 되고, 용맹에 대한 보상이 되고, 죽음의 순간에 추억과 감사가 될 만한 결과가 앞에 있다면.
- 제4부 17장 (p.393)







더스토리 출판사에서 펴낸 벤허를 읽다가, 번역 문제로 5부 초입부터 현대지성 출판사 버전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3부까지는 더스토리 버전으로 어떻게든 읽고 있었는데 4부부터 공중제비를 돌고 물구나무를 서도 의아스러운 문장들이 대거 출현하기 시작했다. 가령 아래 사진과 같은 문장들이었는데

'로마의 신민으로 평화로워지자' 문구의 대상이 강인가? 그렇다면 강이 신민이 된다는 표현이 영 어색하다.
괄호 친 부분..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건지 모르겠다.
태도를 수식하는 문구에 솔직하다는 단어가 두번이나 나올 필요가 있나? 원문에 그렇게 적혀 있었나 궁금해지는 대목.
상아판의 일부는 거의 '닮은' 상태였다..? 그냥 오탈자 교정이 덜 된듯..


아무튼 읽는 도중 턱턱 막히는 느낌에 기분이 영 좋지 않던 와중에, 전자책으로 현대지성 출판사의 버전도 확인해볼 기회가 있었다. 현대지성은 더스토리만큼 각주가 많이 달려있지 않았음에도 가독성이 좋았다. 그만큼 현대지성 출판사 버전이 번역이 더 잘 되었다는 뜻이렸다.

더스토리가 펴낸 '벤허'는 표지와 디자인, 각주 등등 여러 면에서 공을 들였지만 컨텐츠 그 자체를 놓친 것 같아 아쉽다. 번역본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독자가 컨텐츠에 접근할 기회가 차단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번역자와 출판사에 탓을 돌릴 수도 있겠지만 좋은 품질의 번역에 돈으로 보답하기를 거부하는 한국사회 분위기도 한몫하는 듯. 조금 씁쓸하다. 아니면 원문이 워낙 번역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고.. 에라이 모르겠다.

일단 더스토리 버전의 벤허는 4부까지 읽었으니, 해당 지점까지는 더스토리 기준으로 포스팅을 올리겠다.

세가지 문장(혹은 문단)에 대해서 원문 - 더스토리 - 현대지성 순으로 번역 비교를 하고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제4부 제2장

원문

"The river here runs to the west," he said, in the way of general answer. "I remember when it washed the base of the walls; but as Roman subjects we have lived in peace, and, as always happens in such times, trade has had its will; now the whole river front is taken up with wharves and docks. (...)"

더스토리
"이 강은 서쪽으로 흐릅니다. 강물이 성벽에 바로 찰랑대던 때가 기억나는 군요. 하지만 로마의 신민으로 평화로워지자 자연히 무역이 번창했지요. 그래서 이제는 강의 전면에 부두와 선창이 세워졌지요. (...)"

현대지성
"강은 여기서 서쪽으로 흘러간답니다. 강물이 담 기슭에 밀려왔던 때가 생각나네요. 하지만 로마 백성으로 이제껏 우리는 평화롭게 살아왔죠. 그리고 태평성대에 늘 그렇듯 교역이 융성하여 이제는 강가 전체에 부두와 선창이 들어섰죠. (...)"

원문에도 Roman subject로서의 we 라고 주어가 명시되어 있다. 더스토리 버전의 문장은 주어가 누락돼 혼란스럽다.

제4부 제6장

원문

Some there were, no doubt, caught by the promise held out to their troubled spirits of endless peace in a consecrated abode, to the beauty of which, if they had not money, they could contribute their labor; this class implied intellect peculiarly subject to hope and fear; (..)

더스토리
일부는 고통받는 영혼이 성소에서 끝없는 평화를 얻으리라는 약속에 붙들린 것이다. 이들은 신전의 아름다움을 위해 돈으로, 돈이 없으면 노동력으로 봉사했다. 이 부류는 특히 희망과 두려움을 조건으로 지성을 암시한다.

현대지성
지친 영혼들이 성스러운 곳에서 끝없는 평온을 누릴 수 있다는 약속에 자로잡혀 돈이 없다면 일을 해서라도 그 아름다움에 기여하려는 이들이 분명 있었다. 이러한 부류는 특히 희망과 두려움을 품기 쉬운 식자층일 확률이 높다.

음.. 이 문장은 현대지성 쪽에서 번역을 잘한것 같다. 원문 문장이 어렵다;;


제4부 제12장

원문

The manner was frank, cordial, winsome. Drusus melted in a moment.

더스토리
솔직하고 쾌활하면서도 솔직한 태도에 드루수스는 곧 마음이 풀렸다.

현대지성
솔직하고 진심이 담긴 메살라의 쾌활한 태도에 드루수스는 언제 화가 났었냐는 듯 금세 풀어져 (...)

원문을 읽어보면 같은 단어가 두번 반복되지 않는다. 더스토리는 솔직하다는 표현이 두번 나오는데 번역단계는 그렇다 치고 편집단계에서는 이 문장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한건지 의문이긴 하다.




친한 언니가 선물해줘서 이탈로 칼비노의 책을 처음 읽게 되었다. 민음사 TV의 정기현 편집자님이 이탈로 칼비노를 자주 언급하기에 궁금하던 차였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에게 답사한 도시들에 대하여 들려주는 이야기를 담아, 동방견문록의 테마를 차용하고 있다. 다만 이탈로 칼비노의 책은 상상 속의 도시들을 나열하고 있다. 허구의 도시들이기 때문에 관념적&개념적 요소가 많이 부각되고, 패턴을 소개하는 동시에 카오스를 강조하며, 정서적인 디테일이 생략되어 있다. 상상의 나래는 잔뜩 펼치는 동시에 관조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이탈로 칼비노의 필치가 상당히 건조하다. 그 때문인지 신기한 광경은 잔뜩 마주치지만 어쩐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이 많이 생각났다. (건조한 모래밭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꽤 있어 더욱 달리의 작품이 연상되었을 수도..)

화자인 마르코 폴로는 괴이한 도시에 거주하는 시민들에 대한 동정심도 없고, (얼마 있지도 않은) 이상적인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지 않는다. 마르코는 방문한 도시들은 하나의 요소로 환원하고 추상화하고자 하고, 없는 도시는 상상을 통해 존재케 하는 데 몰두하는 상념보이로 보인다. 

한줄평을 하자면,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기하학 서적과 프로그래밍 서적과 시집이 짬뽕된 느낌을 주었다. 상상 행위가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는지 보는 재미가 있었다.
 

“제가 아직 젊었을 때, 어느 날 아침 그곳에 도착했습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시장으로 향하는 길을 바쁘게 걸어갔고 아름다운 치아를 가진 여인들이 제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어요. 무대 위에서는 병사 세 명이 클라리넷을 연주했고 사방에서 바퀴들이 굴러다녔고 색색깔의 플래카드들이 휘날렸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아는 것이라고는 사막과 대상로밖에 없었지요. 그날 아침 저는 인생에서 제가 기대할 수 있는 행복이 도로테아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 제 눈은 다시 광대한 사막과 대상로를 바라보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길이 그날 아침 도로테아에서 제 앞에 열려 있던 수많은 길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제1부 '도시와 욕망 1'

소설 초반부터 무슨 말인지 종잡을 수 없는 문단을 만나 좌절해 버렸다. 문장 사이사이의 거리감에는 무신경한 채, 연상되는 이미지와 낭독소리,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어야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읽을 자격이 부여되는 것인가?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이 시집과도 같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말하다 보면, 저는 폐하께 이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말씀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 제1부 '도시와 욕망 2'

 

사신들은 페르시아인, 아르메니아인, 시리아인, 콥트인5), 셀주크인들이었다. 황제는 그의 신하들 모두에게 외국인이었다. 그러니 오로지 외국인들의 눈과 귀를 통해서만 제국은 쿠빌라이 앞에 그 존재를 드러낼 수 있었다. 사신들은 자신들도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부터 들은 소식들을 칸에게 보고했는데, 칸은 그 사신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 확실치 않은 소리들로 세금 징수원이 걷어 들인 총 액수, 해직당하고 참수당한 관리들의 이름과 성, 가뭄이 들 때면 폭이 좁은 강물에서 물이 흘러드는 수로의 크기 같은 것 들을 말했다.
- 제1부 closing 부분

 

하지만 베네치아의 젊은이가 보고를 할 때는 그와 황제 사이에 전혀 다른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다. 동방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곳의 언어를 전혀 몰랐던 마르코 폴로는 몸짓과 높이 뛰어오르기, 감탄이나 공포의 비명, 포효하는 동물 울음이나 새소리로, 혹은 여행 가방에서 타조 깃털, 콩알 총, 석영 같은 물건들을 꺼내 자기 앞에 체스 말처럼 늘어놓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었다. 쿠빌라이가 부여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이 재능 있는 외국인은 즉석 무언극을 보여 주었고 칸은 그것을 해석해야만 했다.
- 제1부 closing 부분

 

숲을 이룬 관들의 끝에는 수도꼭지, 샤워기, 홈통과 배수관이 달려 있습니다. 가지에 매달려 있는 때늦은 과일들처럼, 하늘을 배경으로 세면대와 욕조나 다른 자기 제품들이 하얗게 빛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배관공들이 자기 일이 끝나자 벽돌공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떠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 제3부 '섬세한 도시들 3'

이 문단을 읽고 살바도르 달리가 강하게 연상되었다. 



마르코 폴로가 돌 하나하나를 설명하며 다리를 묘사한다.

“그런데 다리를 지탱해 주는 돌은 어떤 것인가?”

쿠빌라이 칸이 묻는다.

“다리는 어떤 한 개의 돌이 아니라 그 돌들이 만들어 내는 아치의 선에 의해 지탱됩니다.”

마르코가 대답한다.

쿠빌라이는 말없이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가 이렇게 묻는다.

“왜 내게 돌에 대해 말하는 건가? 내게 중요한 건 아치뿐이지 않은가?”

폴로가 대답한다.

“돌이 없으면 아치도 없습니다.”

- 제5부 closing 부분

 

 (...) 그러나 트로이에 대해 말하면서 마르코 폴로는 트로이를 콘스탄티노플처럼 이야기했고 마호메트가 여러 달 동안 그 도시를 포위 공격하게 되리라는 예상을 했다. 마호메트가 오디세우스같이 영리한 사람이라면 한밤의 어둠을 이용해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골든 혼에 이르는 급류를 타고 페라와 갈라타를 돌아 노를 젓게 할 거라고 했다.

그와 같이 뒤섞여 버린 두 도시에서 제3의 도시가 탄생했는데 이 도시는 샌프란시스코라고 불릴 것이었으며, 금문 해협과 만 위에 길고 가벼운 다리가 놓일 수도 있고 가파른 길마다 전차가 올라갈 수 있으며, 태평양의 중심 도시로 꽃필 수도 있었다. 천 년 뒤, 황인종과 흑인종과 북아메리카 원주민과 살아남은 백인종의 자식들이 칸의 제국보다 더 광대한 제국에서 융화될 수 있는 시간인, 삼백 년 간의 긴 집중 공략 시기가 끝난 후에 말이다.
- 제9부 opening 부분

실존하는 도시들이 나와 잠시 기뻤으나, 그마저도 뒤섞어버리는 마르코 폴로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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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서 벤허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었다.

3부는 벤허가 노잡이로 복역(?)한 지 3년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등장하는 아리우스 사령관은 명장으로서, 해적을 소탕하는 임무를 가지고 아스트로이아 호에 승선하게 된다. 갤리선 이모저모를 꼼꼼히 살피던 아리우스 사령관의 눈에 능숙한 노잡이 한 명이 눈에 띄게 되는데, 여기서 벤허와 아리우스 사령관의 인연이 시작된다.

작가 루 월리스는 묘사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편이라 생각이 드는데, 특히 지리 지형과 등장인물의 옷 차림새에 대해 세세하게 묘사를 하곤 한다. 안타깝게도 그 당시 지역 풍습도 모르고 유럽/중동 지역의 지리지식 또한 일천한 나는 이러한 묘사 장면에서 갈피를 못 잡고 헤매기 일쑤다. 3부에서는 보스포루스 해협 일대를 묘사하고, 갤리선 내부 구조도 자세히 담고 있는데, 둘 다 경험한 바가 없으니 뇌를 깨는 고통으로 읽어나가는 수 밖에 없었다. 루 월리스도 독학해서 얻은 지식으로 쓴 것이라던데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는...

다만 소설의 전개방식만은 루 월리스가 독자를 배려한 흔적이 보인다. 주인공 벤허의 첫 노잡이 생활 3년을 건너 뛰었기 때문이다. 루 월리스가 알아서 생략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우울해하거나 지루해했을 거다.

"뭐야, 자네는 이 배가 처음이야?"
"처음 봤지. 배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은가?"
"신경쓸 일들은 있지만 큰 문제는 아니야. 바다에서는 서로 금방 알게 되거든. 사랑도 미움처럼 급박한 위험이 닥쳤을 때 생기니까."
- 제3부 제1장 (p.194)
그는 배를 완전히 파악할 때까지 쉬지 않을 작정이었다. 잘 알면 요행수가 끼어들 틈이 없는 법. 노잡이장, 항해장, 선장을 시작으로 다른 장교들도 차례로 만났다. 수병 지휘관, 보급품 관리관, 설비 감독관, 주방 및 화기 관리관의 보고까지 들은 후에는, 각 구역을 돌아보았다. 단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철저히 살폈다. 시찰을 마치자, 아리우스가 승선자 중에서 그 배의 상태와 발생가능한 사고 유형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 출항 준비까지 완벽하게 끝내고 나자, 이제 단 한 가지가 남았다. 자신이 통솔할 부하들을 철저히 파악하는 일이다. 이는 가장 섬세하고 까다로운 업무이기에, 그는 시간을 들여서 나름의 방식으로 착수하기로 했다.
- 제3부 제2장 (p.198)
힘을 쓰려면 근육의 양뿐 아니라 질도 중요하고, 우월한 경기를 하려면 힘뿐 아니라 정신력도 필요하다는 이론은 그의 신념이었다. 취미를 가진 자들이 그렇듯, 아리우스는 자신의 신념에 들어맞는 예를 늘 찾고 있었다.
- 제3부 제2장 (p.203)
로마군이 자기 배의 갑판에서 싸운다? 유대인 청년은 등골이 오싹했다. 사령관이 심한 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 제3부 제5장 (p.227-228)
벤허는 노잡이장을 마지막으로 쳐다보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달아나는 게 아니라 사령관을 찾기 위해서.
- 제3부 제5장 (p.229)
아리우스는 또다시 다른 생각을 더듬는 듯했다. '네가 그의 아들이라면 틀림없이 카토와 브루투스에 대해 들어 봤겠지. 대단한 자들이었고, 무엇보다 죽음을 맞이함에 있어 비할 데 없이 훌륭했다. 그들 덕분에 로마에는 이런 죽음의 법칙이 생겼거든 '로마인은 행운이 따르는 동안만 산다.'* 듣고 있나?'
*각주: A Roman may not survive his good-fortune. 굴욕적인 상황이 되면 행운을 구걸 하지 않고 목숨을 끊겠다는 의미다.
- 제3부 제6장 (p.234)
벤허가 결연하게 대답했다. "맹세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사령관님, 제게는 유대 율법이 가장 엄중한데, 그 율법이 제게 각하의 목숨을 책임지 게 할겁니다. 반지를 도로 받으십시오."
- 제3부 제6장 (p.237)





소전서가에서 펴낸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퍼스널컬러는 제주신라호텔이었구나? 연분홍색 표지와 푸른 배경이 사뭇 잘 어울린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펴낼 때 출판사 소전서가가 세심하게 신경 쓴 부분은 표지 디자인뿐만이 아니다. 매 챕터에 이상이 그린 삽화와, 또 맨 뒤에는 '배우신 분들'의 대담을 실었다. 특히 대담이 실려 있는 점이 감동 포인트였는데, 대담을 통해 구보가 경성을 하릴없이 거닐었던 이유, 이 소설과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간의 관계성, 이 소설의 디자인적인 측면, 그리고 소설가 박태원과 이상의 삶을 다른 시각에서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담'에서 '박태원 그리고 구보의 고현학'을 인상 깊게 읽었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서는 <모데로노로지오>라고 표현되는 모더놀로지(modernology), 즉 고현학은 '지금의 모습을 그리자!'라는 기치 아래 고고학과 비교되어 나온 용어로, 곤 와지로가 1920년대 관동 대지진 이후 재건되는 도쿄 모습을 기록하기를 주창한 것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당대를 관찰해보려는 행위인건데, 소설가 박태원과 구보는 글쟁이이니 고현학에 관심이 갈 법하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은 고현학을 하기에는 녹록치 않은 환경이었고, 그 부분을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보여주고 있다.      

그저 나와 비슷한 성향(추정컨대 INFP?)이라 구보가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낸 것으로만 여겼는데, 당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이 그의 걸음걸이에 녹아있었던 것.

유승환: 저는 이 고현학이라는 것이 식민지 조선에서 식민지 작가에 의해서 실현될 수 있느냐는 문제를 다루는 작품이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현학의 성과를 보여 주는 작품이 아니라, <그게 가능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문제 삼습니다. 구보 씨가 산책 나갈 때 들고 다니는 아이템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단장이고 다른 하나는.
김미정: 노트.
유승환: 무언가를 봤을 때 노트에 적어야 고현학이죠. 근데 이 작품에서 구보가 고현학을 하기 위해 노트를 펴는 장면이 얼마나 나옵니까? 딱 두 부분이 있어요.

그랬던가..? 생각해보니 구보가 노트는 계속 들고 다니면서 딱히 뭘 적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유승환 님에 의하면 구보가 노트를 펼치는 두 장면은 아래와 같다.

  1. '젊은 아낙네가, 실수로 떨어뜨린 복숭아가 바세도우씨 병에 걸린 노동자에게까지 이르르자 집어들기를 단념'한 일련의 과정을 구보가 기록하려고 노트를 펼쳤다가 근처의 사복경찰을 목도하고 기록을 포기한다.
  2. 친구와 카페에 가서 여급들과 놀 때 농담 따먹기로 서로의 정신병을 명명할 때 노트를 다시 펴든다. 다시말해 구보는 고현학을 하기 위해 노트를 지참했음에도, 막상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인 것은 밤 카페라는 닫힌 장소에서였음을 유승환 님은 지적한다.


머리가 띵했다. 온종일 이어지던 구보의 실없음에 나는 일견 공감하기도 했지만 한심하게 보기도 했었는데, 사실 구보는 검열과 감시를 끊임없이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를 견뎌내고 있었구나. 구보가 '명랑을 가장한다'는 문구가 몇번 나왔는데, 검열과 감시가 이루어지는 환경에서는 무해한 시민으로 보이기 위해 애쓴 결과가 아니었을지.

유승환: 이곳이 재미있는 대목입니다. <서소문정에 왜 못 갈까?>라는 문제가 일단 하나가 있잖아요. 서소문정이라고 하면 서촌으로 가기 위한 입구입니다. 지금도 시청에서 서소문동을 지나 죽 올라가면 서대문 쪽으로 가는 큰 길이 나오죠. 그렇게 서대문, 소위 서촌으로 죽 가면 마주치는 장소들이 독립문이나 서대문 형무소 같은 곳이죠. 그러니까 사라져 버린 조선, 혹은 조선 독립의 문제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들이에요. 그렇다면 거기서 무엇인가를 기록한다는 건에 공포를 느낀 것이 아닐까.
김미영: 검열을 의식한다는 거겠지요.
유승환: 정작 검열이 두렵다고 말하지는 못합니다. 사실 검열 때문에 검열에 대해서조차 말하지 못하는 거죠. 그 대신 구보는 자기가 신경 쇠약에 걸려서 거기에 가지 못한다고 말해요. 근데 이게 말이 안 되는 게, 이 작품 초반에 구보는 <나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신경 쇠약이라고 해요. 농담이에요. 일부러 그렇게 말한 거에요.
사실 검열 때문에 검열에 대해서조차 말하지 못하는 거죠.


추가적으로, 11장에 본인의 신경쇠약을 의식하는 동시에 옆을 지나쳐가는 건장한 사내에게 위압감을 느끼며, 어릴 적 『 춘향전』을 읽었던 일을 구보가 후회하는 장면이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 춘향전』이 어디가 어때서? 야시꾸리한 내용이 나온다고 들었는데, 그 때문에 그러나?'라고 의심스레 여겼었다. 하지만 대담을 읽으며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유승환: (중략) 그러면서 구보는 <그럼 내가 언제부터 이런 신경 쇠약에 걸렸을까?>하며 11화부터 『 춘향전』 이야기를 합니다. 박태원의 다른 산문을 보면 자신의 문학적인 경험의 시작으로서 취학 이전에 『 춘향전』을 탐독했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 춘향전』을 읽은 건은 박태원 문학의 출발점이죠. 그런데 박태원은 바로 그 춘향전을 볼 때부터 내가 이미 신경 쇠약에 걸릴 운명이었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김미정: 작가의 운명.
유승환: 작가는 신경 쇠약이라는 병에 걸리는 존재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식민지 조선에서 문학을 한다는 건 자체가 일종의 공포, 신경 쇠약이라는 이름으로 가장되는 공포를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해해서 미안해요 구보 씨. 소설가로서의 고민을 털어놓은 문장인 줄도 모르고..

대담에는 고현학 외에도 시대적 배경과 주변부 사실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대담을 읽고나면 확실히, 한 소설가의 밋밋하고 실없던 하루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대담은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린다.


그나저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될 당시 이상이 삽화가로 참여했다는 점이 신기하다.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인 줄로만 알았는데, 본래 전공은 건축과인데다가 삽화도 그리다니, 다능인이었구나.

19화, 29화, 30화에 삽화가 빠져 있는데 이상이 그날 개인적인 문제로 그리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일까? 궁금증을 자아내는 포인트.

어머니는 다시 바느질을 하며, 대체, 그애는, 매일, 어딜, 그렇게, 가는, 겐가, 하고 그런 것을 생각해본다.
하지만, 보통학교만 졸업하고도, 고등학교만 나오고도, 회사에서 관청에서 일들만 잘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또 동경엘 건너가 공불 하고 온 내 아들이, 구해도 일자리가 없다는 건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는 어딜 갈까, 생각해 본다. 모두가 그의 갈 곳이었다. 한 군데라 그가 갈 곳은 없었다.
구보는 종로 네거리에 아무런 사무도 갖지 않는다. 처음에 그가 아무렇게나 내어놓았던 바른발이 공교롭게도 왼편으로 쏠렸기 때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때, 구보는 차라리 고독에게 몸을 떠맡겨 버리고, 그리고, 스스로 자기는 고독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꾸며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amp;amp;hellip;
그러나, 여자가 청량리행 전차 속에서 자기를 또 한 번 발견하고, 그리고 자기가 일도 없건만, 오직 여자와의 사이에 어떠한 기회를 엿보기 위해 그 차를 탄 것에 틀림없다는 것을 눈치챌 때, 여자는 그러한 자기를 얼마나 천박하게 생각할까. 그래, 구보가 망설거리는 동안, 전차는 달리고, 그들의 사이는 멀어졌다.
그러면서도 구보는 그 비극에서 자기네들을 구하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서려 들지 않았다.
결혼 비용 삼천 원. 신혼여행은 동경으로. 관수동에 그들 부처를 위해 개축된 집은 행복을 보장하는 듯싶었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을 때, 두 사람은 거의 일시에 머리를 돌리고 그리고 구보는 그의 고요한 마음속에 음울을 갖는다.
&amp;amp;amp;amp;amp;amp;amp;amp;amp;lt;모데로노로지오&amp;amp;amp;amp;amp;amp;amp;amp;amp;gt;를 게을리하기 이미 오래다.
때마침 옆을 지나는 장년의, 그 정력가형 육체와 탄력 있는 걸음걸이에 구보는, 일종 위압조차 느끼며, 문득 아홉 살 때에 집안 어른의 눈을 기어 『 춘향전』을 읽었던 것을 뉘우친다.
구보는 이 조그만 사건에 문득, 흥미를 느끼고, 그리고 그의 &amp;amp;amp;amp;amp;amp;amp;amp;amp;lt;대학 노트&amp;amp;amp;amp;amp;amp;amp;amp;amp;gt;를 펴들었다. 그러나 그가 문 옆에 기대어 섰는 캡 쓰고 린네르 쓰메에리 양복 입은 사내의, 그 온갖 사람에게 의혹을 갖는 두 눈을 발견하였을 때, 구보는 또다시 우울 속에 그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황금을 찾아, 황금을 찾아, 그것도 역시 숨김없는 인생의, 분명히, 일면이다. 그것은 적어도, 한 손에 단장과 또 한 손에 공책을 들고, 목적 없이 거리로 나온 자기보다는 좀 더 진실한 인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여자가 그자에게 쉽사리 미소를 보여주었다고 새삼스러이 여자의 값어치를 깎을 필요는 없었다.
「이리 온.」 그러나 강아지는 먼젓번 동작을 또 한 번 되풀이하였을 따름, 이번에는 입을 벌려 하품 비슷한 짓을 하고, 아주 눈까지 감는다.
사실, 그는, 지금 벗을 가진 몸의 다행함을 느낀다.
구보는 그저 『 율리시스』를 논하고 있는 벗을 깨닫고, 불쑥, 그야 &amp;amp;amp;amp;amp;amp;lt;제임스 조이스&amp;amp;amp;amp;amp;amp;gt;의 새로운 시험에는 경의를 표해야 마땅할 게지. 그러나 그것이 새롭다는, 오직 그 점만 가지고 과중 평가를 할 까닭이야 없지.
그들의 세상살이의 걸음걸이가,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가를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속으로 지난날의 조그만 로맨스를 좀 더 이어 생각하려 한다.
그는 여자가 기독교 신자인 경우에는 제 자신 목사의 졸음 오는 설교를 들어도 좋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비 내리는 공원 안을 그들은 생각에 잠겨, 생각에 울어, 날 저무는 줄도 모르고 헤매 돌았다.
구보는 대체 무슨 권리를 가져 여자의, 그리고 자기 자신의 감정을 농락하였나.
그러나 아이들은 그렇게도 단순하다. 그들은,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을 반드시 따랐다.
문득, 제비와 같이 경쾌하게 전보 배달의 자전거가 지나간다. 그의 허리에 찬 조그만 가방 속에 어떠한 인생이 압축되어 있을 것인고.
구보는 자기가 이러한 사내와 접촉을 가지게 된 것에 지극한 불쾌를 느끼며, 경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그와 사이에 간격을 두기로 하였다.
어느 틈엔가 종로에까지 다시 돌아와, 구보는 갑자기 손에 든 단장과 대학 노트의 무게를 느끼며 벗을 돌아보았다.
갑자기 구보는 온갖 사람을 모두 정신병자라 관찰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그럼 이 세상에서 정신병자 아닌 사람은 선생님 한 분이겠군요.
그 맑은 두 눈은 그의 두 뺨의 웃음우물은 아직 오탁에 물들지 않았다.
참말 좋은 소설을 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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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2 - [도서] - (#1)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읽고




 

 


Chapter 2 '알파고: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의 등장'에서는 체스나 바둑과 같은 보드게임에서 인공지능이 어떻게 인간을 능가하게 되었는지, 그 로직의 발전을 다루고 있다.

여러가지 개념이 한꺼번에 다루어지고 있어 다 이해하기란 어려웠다. 특히 몬테카를로 방식이나 정책망&가치망에 대한 설명은 따로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러나 저러나 이해가 안 되도 계속 읽어나가는 것으로. 성경 말씀도 내 머리로 안 풀어지는데 어떻게든 읽어나가는 것처럼 말이지. 머릿속에 담아두고 계속 들여다보면 언젠가는 풀릴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경로를 탐색하는 것을 완전 탐색(Exhaustive Search)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모든 경로를 탐색할 필요는 없습니다. 좀 더 효율적으로 탐색하기 위해, 한 번 탐색해보고 성과가 없다면 그쪽은 더 이상 탐색하지 않도록 표시해두면 되기 때문이죠. 미로찾기에서 막다른 길로 이어지는 경로를 표시해뒀다가 다음번에는 그 경로로 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컴퓨터 과학에서는 가지치기(Pruning)한다고 표현합니다. 막다른 길은 더 이상 가볼 필요가 없기에, 이 경로는 나뭇가지 자르듯 쳐내버리고 다시는 탐색하지 않는 거죠. 이렇게 하면 불필요하게 탐색해야 하는 경로를 제외할 수 있어 그 다음부터는 전체적인 탐색 속도가 빨라지며, 더 효율적으로 탐색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딥 블루는 체스의 수를 계산할 때 이처럼 탐색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의 수를 가지치기를 거쳐 배제해 계산을 점점 줄여나갔습니다. 이외에도 오프닝과 엔드게임 테이블베이스를 활용하면서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을 더 과감히 생략했죠.  
- 2. 알파고: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의 등장 (딥 블루는 어떻게 체스 챔피언이 되었을까?)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전개형 보드게임에 임하는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발전할 수록 인간의 사고방식에 가까운 방식을 취하였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예단하기로는 인공지능이나 컴퓨팅 능력이 발전하면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전수계산방식을 취할 줄 알았는데, 가망이 없어보이는 루트는 재빨리 괄호 밖으로 빼버리는 인간과 같은 로직으로 구현해내려 했다는 점이 신기하다. 물론 게임트리 측면에서 봤을 때 바둑에서 완전탐색을 구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되었다. 하지만 미래에 하드웨어 계산성능이 좋아진다면 완전탐색을 추구하려 하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좌우지간 완전탐색을 구현하지 않음(혹은 못함?)으로써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한번이라도 이길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알파고는 왜 신의 한 수를 허용하고 말았을까요? 알파고의 작동 원리를 다시 한번 되새겨봅시다. 알파고의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은 유망한 수를 중심으로 꼼꼼하게 탐색해나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확률이 높은 쪽을 향해 더 많이 더 깊게 탐색해나가고 가장 신뢰가 놓은 지점에 착수를 하는 원리죠. 하지만 이세돌이 둔 신의 한 수 지점에 착수할 확률을 알파고는 1만 분의 1로 매우 낮게 예측했다고 합니다. 알파고는 설마 그 지점에 둘 줄은 몰랐기에, 충분히 탐색하지도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제한 시간 내에 1억 번 정도 탐색할 수 있다면 다른 곳은 수백만, 수천만 번씩 탐색한 데 반해 그 지점은 수십 번도 채 탐색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 지점이 묘수인지 아닌지조차 알아내지 못하는 거죠. 애초에 탐색을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78수 다음에 대국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알파고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이세돌이 78수를 착수하는 순간, 미처 충분히 탐색하지 않았던 알파고는 그제서야 당황하게 됩니다.
- 2. 알파고: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의 등장 (신의 한 수)
알파제로와 겨룬 스톡피쉬는 초당 7,000만 번의 수를 계산했습니다. 하지만 알파제로는 더 이상 이렇게 많은 수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약 8만 번 정도만 계산했는데 스톡피쉬와 비교해보면 1/875에 불과합니다. 각종 체스 규칙과 다양한 전술을 미리 입력해 두고 활용하는 스톡피쉬와 달리 알파제로는 어떤 체스 전략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강화학습으로 스스로 학습한 다음, 인간과 마찬가지로 유효한 수만 찾아 마치 직관에 따른 것처럼 다음 수를 두었죠.
- 2. 알파고: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의 등장 (인간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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