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각한 난독증에 시달리고 있어서, 언제 샀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 '강남의 탄생' (한종수, 강희용 저)를 몇달째 끌어안고 있다. The Screwtape Letters와 함께 진도가 안 나가는 책 중 하나이다. 언제쯤 완독할지 기약이 없는고로, 책 읽는 중간중간 소소하게 몇자 끄적이는 편이 나을 듯 하다.

# 아쿠아아트 육교

더구나 '시원'하게 뚫린 남부순환도로가 앞을 가로지르고 있어 예술의전당을 찾은 시민들은 마치 단절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예술의전당은 지금까지도 "섬처럼 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물론 관계자들도 이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
세월이 지나 다시 기회가 왔다. 1997년 IMF 외환 위기 시절에 진로가 인근에 종합 유통 단지를 만들려다가 실패하면서 부근의 땅을 매물로 내놓은 것이다. 군인공제회가 아파트를 짓기 위해 이 땅을 사들였다. 그러자 인허가권을 가진 서초구청은 이때다 싶어 군인공제회에 쇼핑몰 계획을 다시 내놓았다. 그러나 수백억 원이 들어가는 일이었고 군인공제회 쪽에서는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타협안이 나왔다. 그 결과가 바로 예술의전당과 남부터미널을 연결하는 55억 원짜리 아쿠아아트 육교였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예술의전당의 접근성이 개선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
-7장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그리고 잠실' 중 '예술의전당 이야기'

진로가 애당초 계획했던 부지, 아쿠아아트의 위치 등을 찝어주는 지도라도 첨부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이 책은 그 점이 아쉽다. 예술의전당과 남부터미널을 아쿠아아트가 긴요하게 연결시켜주는지 네이버 지도로 찾아보았다.

아쿠아아트 육교를 중심으로 한 네이버지도

확실히 예술의전당 근처에 횡단보도가 많지 않아서, 그 중간에 생긴 아쿠아아트 육교가 도보 이용객의 접근성을 아주 약간 개선시키긴 했을 듯 하다. 횡단보도가 한가람 미술관에 하나 있고, 한참을 가서 우면삼거리 쪽에 또 하나 있는 격이니 말이다. 그래도 예술의전당이 주거지역에 위치한 것도 아니고 뒤에는 우면산으로 막혀 있으니, 육교 하나로 개선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남부터미널역에서 예술의전당으로 바로 갈 수 있게끔 지하보도가 있으면 좋을텐데, 그러면 현대수퍼빌 등 주거시설의 지반이 약해질테니 주민 반대가 심하려나.

참, 번외로 아쿠아아트 육교의 시공도 현대건설이 맡았다고 한다. 현대건설이 손을 안 댄 곳이 없구만.

 

 

 

728x90

 

산수유 꽃은 자세히 쳐다보고 있노라면 병아리 같이 올망졸망하니 귀엽다.

오랫동안 책장에 방치되어 있던 '지적 생활의 즐거움'을 다시 꺼내들었다. 그리고 미처 다 받아적지 못했던 인상깊었던 구절을 기록해나가기 시작했다. 몇백년 전에 살았던 영국인이 내가 생각하던 주제들을 짚어서 조목조목 이야기해주다니, 새삼 책이라는 매개체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우리를 지적으로 만드는 힘은 배운 지식과 익힌 교양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아름다운 단면들을 스스로 발견해내려는 노력과 인간답게 살아가는 기쁨을 만끽하려는 타고난 본성일 뿐입니다. 지적 생활이란 무엇인가를 이룩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순수하게 삶의 진리를 찾아나서는 아름다운 여정입니다. 그것은 가장 위대한 진리와 작은 진리 사이에서, 반드시 따라야 하는 정의와 개인의 생활 사이에서 늘 꿋꿋하고 당당하게 고귀한 쪽을 선택해나가는 것입니다. 

-'서문'에서

인생의 아름다운 단면들을 스스로 발견해내려는 노력, 늘 꿋꿋하고 당당하게 고귀한 쪽을 선택해나가는 것이라니. 필립 길버트 해머튼은 어떻게 이런 표현을 생각해내는 것일까. 본질을 꿰뚫어버리는 그의 표현에 가슴이 뛴다. 이것도 배워야 하고, 저것도 배워야 하고, 주어진 시간 내에 정해진 학습량을 끝마쳐야 함을 역설하는 건조하고 기계적인 책이 아니어서 정말 기뻤다. 마음 맞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기분이다. 평범한 단어만으로 진실을 외치는 문장이 내 마음을 후드려 팬다. 홈런이야 당신, 홈런이야. 

번역도 꽤 매끄럽게 된 편이다. 읽으면서 흐름이 끊긴 순간이 많지 않았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번역이었다. 원문 번역이 아니고 편역이어서 문체가 조금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던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편역본과 원서 간에 내용 차이가 있는데, 아마존에서 "The Intellectual Life"를 다운받아보니 로마 카톨릭과 같이 편역본에 없던 주제가 몇개 보였고, 반대로 편역본에 실려 있던 시구가 원서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더라. 해머튼의 다른 저서에서 가져온 것인지 상당히 궁금하다. 정체불명의 그 시구를 끝으로 이 쪽글을 마친다. 1년 뒤에 읽어도 흥분이 가지 않는 책이라 몇 번 더 포스팅할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 옛날 어느 페르시아 시인이 남긴 독백을 당신에게 들려드리겠습니다.

  길도 없는 험한 바다에 나를 띄운다.
  지금부터는 고독만이 유일한 재산이다.

  내 순례의 걸음이 나의 영원한 조국을 찾을 때까지
  멈추지 않기를 날마다 기도한다.

  나의 두 무릎은 두 번 다시 대지를 밟지 않을 것이다.
  나의 영원한 조국을 찾을 때까지.

  그날 이후 월계수는 나를 위해 꽃을 피우지 않았고,
  나의 이마를 장식했던 가시면류관도 땅에 떨어졌다.

  나를 낳아준 고독이여!
  고통은 짧고 기쁨은 영원했다.

-Chapter "고독한 작가의 삶을 두려워하는 친구에게"

 

 

예민하다는 것은 일단 보통 사람들보다 자극을 더 많이, 더 강하게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성격이 강한지, 약한지,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지능이 얼마나 높은지 하는 것은 예민함과는 상관이 없다.

-Chapter “1장-나는 예민한 사람입니다”


미숙한 시절 나는 사람들과 많이 다투곤 했다. 친구 사이나 가족 구성원을 중재하다가 그 불똥이 오히려 내게 튄 적도 많다. 누군가 농담을 하려고 뜸을 들이면 나 혼자 의도를 알아채 먼저 낄낄 대버려서 분위기 상 엇박자를 탄 적도 있고, 도리어 자극 하나에 얽매여서 프로젝트 진도를 빼지 못한 경험도 있었다. 

내 삶의 고통은 상당 부분 타인들과 나의 상황인식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이게 문제다, 저게 문제다 내가 이야기를 꺼내면, 사람들이 그게 그리 떠들썩하게 굴 문제냐고 반문하고는 했다. 그리고 한참 지나서야, 내 주장에 동조를 해주는 사람이 몇 생겼다. 기뻐해야 할 일인데, 난는 도리어 '그러면 안 되지. 이러면 정말 그 상황이 문제여서 이슈화된 것이 아니라, 내가 계속 난리법석을 피워서 내 주장이 먹힌 것 같잖아.' 라며 다시금 심적으로 방황하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하는 식으로 고통받아왔다.    

이러한 와중에 최근 16 Personalities에서 무료테스트를 해봤는데 INFP-T란다. 소개글을 읽어보니 예민보스도 이런 예민보스가 없다. 어쨌든.

스스로의 성격이 너무 피곤한데 또 고치기에는 너무 늦어서 예민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책을 두 권 정도 집어들었다. 하나는 '센서티브 (일자 샌드 저)'이고 다른 하나가 '예민함이라는 무기'였다. 특히 '예민함이라는 무기'에서 가장 큰 위로를 얻었는데, 몇가지 문구를 나열하려고 한다. 본인의 민감한 성격에 고통받는 분이 계시면 아래 문구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1

과거에 나는 내담자들과 더불어 늘 빗나간 노력들을 해왔다. 주변에 적응하고자 하는 노력들, 되도록 둔감해지려는 노력들을 해왔던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의 본모습과 다르게 살려는 노력들이었고, 자연스러운 지각을 포기하고자 하는 헛된 노력들이었다. 그렇게 노력하는 가운데 자기 지각이 희생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지각은 사그라드는 듯하다 다시금 고개를 들고 찾아왔다.

-Chapter “들어가며”

 

#2

스스로를 제때에 지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하고, 삶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다. 그러면 외부 세계와 접촉할 때마다 에너지를 잃게 되고, 자기 색깔을 내고 선을 긋는 데 문제가 생긴다. 반면 의식적으로 지각하고, 중심을 잡고, 자기 정체성과 경계를 분명히 할 수 있는 사람은 에너지가 충만하다.

-Chapter “들어가며”

 

#3

예민하다는 것은 일단 보통 사람들보다 자극을 더 많이, 더 강하게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성격이 강한지, 약한지,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지능이 얼마나 높은지 하는 것은 예민함과는 상관이 없다.

-Chapter “1장-나는 예민한 사람입니다”

 

#4

부당하거나 잘못된 일이 있으면 예민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감지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빠르게 깨닫는다.

-Chapter “과소평가된 독특한 기질”

 

#5

또 고반응군에 속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두뇌 연구에서 편도체와 전전두피질의 특이성이 확인되었다. 아론이 말하는 고민감성과 마찬가지로, 케이건이 주장하는 고반응성은 유전된다.

-Chapter “과소평가된 독특한 기질”

 

#6

예민한 아이는 지각이 굉장히 섬세하다 보니 이중의 메시지나 숨은 메시지를 한결 더 잘 감지한다. 배경을 짐작할 수 있고, 하지 않은 말까지 들을 수 있다. 이런 메시지는 종종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모순될 수도 있다. 

-Chapter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

 

#7

이제 예민한 사람은 즐거운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가 지금껏 얼마나 맞추어주느라 힘들었는지를 잘 모른다. 단지 지금 당장의 거슬리고 튀는 행동만이 부각된다. 예민한 사람들은 이처럼 억울한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고집스런 태도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가 많다. 

-Chapter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

 

#8

이렇게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사람이 뒤늦게 생각을 거듭해서 이룩한 자신의 입장으로 그간 부족했던 자기중심성을 만회하고자 하면, 상당히 부자연스런 상황이 펼쳐진다. 그럴 때 그는 매우 이론적이고, 잘난 체하고, 세상물정을 모르는 것처럼 보이고, 독선적인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런 경우 예민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 아주 고집 세고, 모난 사람처럼 여겨진다.

-Chapter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

 

#9

예민하지 않은 아이는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가족 내의 불균형, 부당함, 숨겨진 문제들에 대해 잘 지각하지 못한다. 반면 예민한 아이는 가족 상황을 빠르게 읽어내어 더 쉽게 말려 들어갈 수 있다. 더욱이 자기자신보다는 가족의 화목한 분위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자꾸 얽힌 걸 풀어내려고 한다. 이런 일은 의지적으로 일어나거나 아니면 그냥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가족 내의 화목을 위해 노력하느라 본인은 정작 희생자나 아웃사이더의 역할을 감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면 예민한 아이는 스스로 손해 보거나 아웃사이더가 되는 걸 감수한다. 아이의 이런 수고에 보상은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를 챙기지 못하고, 소속감을 느낄 수도 없다. 가족들의 감사가 주어지기는커녕, 스스로 멸시와 비하를 당하고 배제되기 십상이다. 

-Chapter "아이의 마음도 모르는 부모의 욕심"

 

#10

예민한 아이를 기르는 부모라면 이 점을 의식하고 아이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의식의 성장을 이루는 모습, 스스로를 펼쳐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럴 때에야 아이들 역시 자유롭게 스스로 성장하는 길을 가게 된다.

-Chapter "아이의 마음도 모르는 부모의 욕심"

 

#11

그러나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을 할 때에는 이런 강한 면모들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예민한 여성이 자신의 한계를 훌쩍 넘어버려서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주변에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때가 많다. 예민한 여성 스스로도 자신을 돕는 사람으로 여길 뿐,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 여기기 힘든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도움이 필요할 때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한다. 결국 슬럼프가 찾아오고, 이때 그들을 붙잡아주거나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Chapter "여자는 당연히 예민하다고요?"

 

#12

휴가를 받은 어른들이 다른 환경에서 스스로 기분 전환을 하고자 여행을 떠나는 경우, 예민한 아이들은 낯선 환경을 특히나 힘들어한다.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힘든 경우 계속해서 칭얼대면서 부모의 휴식을 방해하는 일도 생긴다. 이런 아이들은 휴가를 두 번, 세 번 같은 장소로 떠나서 같은 역이나 같은 숙소에 반복적으로 갈 때 안정감을 느낀다. 

예민한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새로운 놀이나 스포츠에 참여하기로 결정하려면 망설이는 시간이 상당히 필요하다. 

-Chapter "예민한 아이들에겐 시간을 주세요"

 

#13

특히 이상화의 위험은 예민한 아이에게 자칫 부담이 될 수 있다. 예민한 아이가 상황을 잘 파악하고, 두루두루 빠르게 이해할지라도, 그 아이는 여전히 아이이며, 아이가 될 권리가 있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어린 시절을 보낼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Chapter "예민한 아이들에겐 시간을 주세요"

 

#14

즉, 예민한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를 지각하는 것을 배워야 하며, 그것을 넘어 자신의 지각을 지각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Chapter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 기르기"

 

#15

지각은 걸러내기 과정이다. 한순간 지각할 수 있는 자극의 양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특정 자극을 지각하려면 여타 자극을 지각하는 걸 포기해야 한다. 

-Chapter "자극으로부터 중심 잡기"

 

#16

현대사회에는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은 무한한 환상에 사로잡혀 현실에 뿌리박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무제한에 대한 이데올로기는 최고에 도달하지 못하면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버릴 뿐이며, 오로지 강한사람과 성공한 사람을 두둔하는 이론에 불과하다. 예민한 사람들도 이런 생각에 쉽게 유혹당할 수 있다. 물론 선을 긋고 경계를 설정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예민한 사람들이 이런 생각 속에 있으면 기존의 어려움은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의 경계는 어디일까? 스스로 지각하지 못하고, 늘 바깥으로만 주의를 돌리며 살았던 예민한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경계를 잘 알지 못해서 스스로를 존중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에 대한 자신의 경계를 지킬 수도 없는 사람들이 많다.

-Chapter "나를 보호하는 경계 짓기"

 

#17

경계를 존중하고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지속적으로 신체와 접촉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체를 센서로 활용해야 한다. 예민한 사람들 중에는 바로 이 부분에서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 소속감, 인정, 평판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주느라 자신의 신체 지각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Chapter "나를 보호하는 경계 짓기"


특히 우리는 15번과 16번 문구를 유념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운동선수가 경기 한판 뛰면 충분한 휴식을 취해줘야 하듯이, 우리도 주기적으로 휴식시간을 취해주어야 센서를 통해 받아들인 정보를 정리하고 센서가 재충전할 수 있다. 배터리팩이 9%인데 주변사람들이 정서적/사무적인 도움을 요청해오면, 마음이 아플지라도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좋다.

내가 느끼기에 나는 꽤 정확한 센서를 달고 태어났지만 그를 뒷받침해줄 배터리팩이 부실하다. 그렇기에 센서를 사용할 때와 아닌 때를 분별할 능력과, 센서를 부지불식간에 남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재점검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물론 고퀄의 센서와 고용량 배터리팩을 둘 다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있겠으나, 이 책은 그런 행운아를 위한 책이 아니다. 

본인의 성격이 스스로를 힘들게 해서 우연히 이 페이지에 닿은 분들, 부디 본인의 센서를 걸림돌로만 생각하지 마시고 아껴주시기를. 남의 요구에만 귀 기울이지 말고 본인의 니즈에도 적절히 반응해주시기를. 감당못할 희생만 연이어 하다가 자기연민에 빠지지 마시기를. 그리고 그 예리한 센서로 예술의 아름다움, 자연의 경이로움, 학문의 지혜로움에 누구보다 큰 감동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728x90

 

 

전반적으로 유용한 책이었다. 굳이 '전반적으로'라는 부사를 덧대는 이유는 중간중간에 나오는 소설 꼭지는 내게 별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머리말에 따르면 "기왕이면 재미있게 읽히도록 한쪽에 소설 같은 이야기를 곁들"였다는데, 없었으면 읽기에 더 깔끔했을 것이다. 화자가 국숫집에 가고, 자갈밭과 비단길을 엉덩이로 찧어가는 꿈을 꾸는 것이 당췌 나와 무슨 상관이랑 말인가. 나는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으려고 이 책을 집어들었는데 말이다. 서브플롯 대신 문장 구성에 대한 설명을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가 빈약한 본론을 보완하고자 서브플롯을 집어넣었다기 보다는, 그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모양이다. 어찌 됐든 나에게 도움되는 꼭지가 많았고, 특히 김훈의 문장력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이동하는' 문장흐름의 원칙은 작가의 통찰력이 깊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사실 나는 내 문장도 그렇게 자세히 뜯어본 적이 별로 없다. 뭔 소리야.

유익하게 느꼈던 몇 꼭지를 소개하며, 서둘러 포스팅을 마치도록 하자.


#1. 

사과와 배가 충분하다는 걸 힘주어 강조할 요량으로 굳이 써야겠다면 말릴 생각은 없지만, 대개의 경우 '-들, -들, -들'을 붙여서 좋을 건 없다. 예전엔 편집자들이 '-들'을 반복해서 쓴 원고를 '재봉틀 원고'라고 부르기도 했다. '들들들들'만 눈에 띄니 마치 재봉틀로 바느질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였다. 

-Chapter "적·의를 보이는 것·들 ③'


#2

이처럼 '대해'는 빼 버리면 그만일 때가 많지만, '대한'을 쓰는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가령 '사랑에 대한 배신', '노력에 대한 대가'처럼 단지 빼 버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장식처럼 집어넣은 경우와는 다르다고나 할까. 말하자면 '대한'을 쓰는 이유는, 습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문장을 이해하고 만드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랑에 대한 배신

노력에 대한 대가

예문에서 보듯 '대한'이 들어간 문장은 '대한'을 활용한 문장이라기보다 '대한'이라는 붙박이 단어를 중심으로 나머지 단어를 배치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니 주체적으로 '대한'을 선택해 쓴 것이 아니라 '대한'에 기대서 표현한 것뿐이다. 그리고 '대한'은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 준다. 표현을 더 정확히 하려고 고민할 필요가 없게 만들어 주니까.

사랑을 저버리는 일 (또는)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하는 행위 (또는) 사랑에 등 돌리는 짓 등등

노력에 걸맞은 대가 (또는) 노력에 합당한 대가 (또는) 노력에 상응하는 대가 등등

-Chapter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 ①"


#3

삿된 주어들은 지시 대명사나 인칭 대명사로 가리켜지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그, 그녀, 그것, 그들. 김훈은, 소설 문장에선 금기시하는 반복된 호명을 감수하면서까지 주체를 오직 이름으로만 불러낸다. '그'라거나 '그녀'라는 삿된 대명사를 좀처럼 쓰지 않난다. 주어라면 모를까 주체는 손가락질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리라. 그리고 김훈의 주체는 주어와 달리 첩질을 하지 않는다. 서술어를 여럿 거느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주어 하나에 서술어 하나, 서술아가 둘 이상일 땐 주어를 반복해서 쓴다. '밥이 차가운 데다 되기까지 해서 씹어 삼키기가 힘들었다'라는 문장이라면 김훈은 아마도 '밥은 차갑고, 차가운 밥은 차지지 못해서 밥을 삼키는 목은 그 차가움과 차지지 못함을 그대로 받아내느라 서럽고 처량했다'라고 쓸 것이다. 

-Chapter '말을 이어 붙이는 접속사는 삿된 것이다'


#4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있다. 너무 당연해서 원칙이라고 여기지 못하는 원칙. 그건 누구나 문장을 쓸 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써 나간다는 것이다. 

이 말은 누구나 문장을 읽을 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읽어 나간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실제로 문장을 읽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그러니 문장을 쓰는 방법도 그와 다를 수 없다. 

더군다나 한국어 문장은 영어와 달리 되감는 구조가 아니라 펼쳐 내는 구조라서 역방향으로 되감는 일 없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풀어내야 하니다. 영어가 되감는 구조인 이유는 관계사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관계 부사나 관계 대명사를 통해 앞에 놓인 말을 뒤에서 설명하며 감았다가 다시 나아가는 구조가 흔할 수밖에 없다. 

-Chatper '문장 다듬기 1'

 

 

 

 

작년 상반기 교토여행을 결심하면서 집어든 책이다. 여행에세이에 대한 편견 탓에, 해봤자 범람하는 여행사진 가운데 감성 충만한 문구 대충 몇 줄 집어넣은 작업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책에 작가의 교토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오밀조밀하게 녹아있어서 여행 많이 다니는 친한 언니에게 비밀장소들을 전수받는 기분이었다. 

 

"교토에 다녀왔습니다"는 일상적인 장소 (카페, 식당 등)에 좀 더 집중하여 소개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임경선 작가는 동네사람들이 즐겨찾는 서점이나 가게 (노포)와 같은 일상적인 공간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면서 교토의 정서를 묘사하고 싶었던 듯 하다. 

 

교토의 노포에선 무조건 손님을 ‘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파는 쪽과 사는 쪽을 대등하게 여긴다는 건 그만큼 자기가 만들고 파는 제품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령 노포의 현관문을 열거나 노렌(천 장막)을 걷고 들어갈 때 먼저 말을 거는 쪽은 가게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다.                      “실례합니다.”                                   

“안녕하세요.”                                

 “들어가도 될까요?”                          

이렇게 손님이 먼저 가게 안쪽의 주인에게 조심스럽게 묻고 입장하는 것이 교토의 예절이다. 인사 없이 불쑥 들어갈 경우 손님이 아닌 침입자로 취급된다. 자부심이 있는 노포 주인들은 손님에게도 인성과 기본 매너를 암묵적으로 기대한다. 그것은 물건을 사고 파는 일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장사가 아닌 인간 대 인간, 면 대 면으로 가치를 주고받는 진중한 행위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윤 추구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때로는 돈을 버는 일보다 소중하게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Chapter ‘3. 세월이 빚어내는 아름다움’

 

아, 물론 일반적으로 추천하는 명소도 안내하긴 한다. 철학자의 길 같이 한두번쯤 들어봤을 명소는 주로 부록 ('임경선의 교토')에 수록되어 있다. 기본적인 정보는 얻을 수 있으니 부록만 읽어도 여행일정 짜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개인적으로 부록에 언급된 장소 중에서는 오코치산소가 고즈넉하니 좋았다. 동행한 친구도 차분한 분위기에 매료된 눈치였더랬지. 

 

교토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작가가 했던 말이 계속 떠올랐다. 예컨대 아래와 같은 문장들.

 

가모강을 유명하게 해준 트레이드마크는 강기슭에 같은 간격 (약 2미터)을 주욱 앉아 있는 커플들의 풍경이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지켜야 한다'는 규칙을 지켜가면서 연인들은 사랑을 속삭인다.

-Chapter '9. 가모강과 사람들'

 

교토에는 경관 조례법이 있어 지나치게 화려한 간판 색깔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브랜드 이름의 글자 색상은 흰색, 검정색, 갈색 외에는 접수가 되지 않고 특히 선정적인 느낌의 빨간색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또한 교토의 특정 거리는 건물 높이도 20미터까지로 제한되어 있다. 

-Chapter '8. 풍경을 위해서라면'

 

단순히 교토 거리를 거닐 뿐인데도 지인피셜을 비밀스럽게 제공받은 것 마냥 뿌듯했다. 내가 아는 언니가 가모강에 커플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고 간판이 사뭇 심심할거라고 했는데, 진짜네. 뭐 이런 느낌이었달까. 임경선 작가의 시선을 통해 여행한 교토는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아 참, "7년의 밤"에서 겪었던 이북리더기의 문제가 이번 책에서도 발생하는데, 그것은 사진들이 축소된 회색조 이미지로 나온다는 것. 여행에세이집에 사진이 넘쳐난다는 장르적 문제와, 사진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이왕 찍었으면 보여야 할 것 아니냐. 확실히 크레마카르타는 여행에세이를 담는 기기로서는 부적합한 것 같다. 갤럭시탭은 그래도 컬러로 나오기 때문에 전자책을 이미 구매하신 분이라면 태블릿PC로 보는 것을 추천한다.

 

 

 

728x90

 

 

"야구는 단순한 거야. 공을 던지고, 공을 치고, 공을 받고. 타자가 타석에 들어오면 투수는 공을 던져야 하는 걸세. 포수는 승부구를 요구해야 하고. 7년 전, 그 아이는 내가 지켜야 할 공이었지만 이젠 아냐. 내 배터리야. 내가 사인을 보내고 서원이가 던지는 거야. 내 사인을 거부하든 받아들이든 그건 그 아이의 선택이지. 하지만 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네야. 그 아이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게." 

-Chapter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여행지에서 가볍게 읽을 만할 책으로 여겨 들고 갔는데 오산이었다. 여행 그 자체보다 책의 줄거리가 더 무겁게 다가왔으니 말이다. 

난독증을 자처하는 나에게는 이 소설이 쉽지 않았다. 소설이 액자식 구성인데다가 시간순으로 줄거리가 전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살인범이 누구인지 꽤 일찍 밝혀진 까닭에 초반부터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스릴러물이 벌써부터 답을 내놓아도 되는 것인가? 이 책은 범법자를 초반부에 까발리고 범법자의 향후 심리묘사를 그리는 데 치중할 제 2의 '죄와 벌'이 될 뿐인가? 여러 의문점이 생겼지만, 문체 자체가 흡입력이 있는데다가 야구, 잠수 등 전문 분야를 설명하는 작가의 필치가 탁월해서 내려놓기 쉽지 않았다. 

이 책은 단순한 '죄와 벌' 리메이크작이 아니라는 것을 중후반부에 다다라서야 깨달았다. 왜냐하면 살인을 저지르고 남은 쪽수 동안 그저 양심의 가책과 자기정당화 사이에서 번민했던 라스콜리니코프와 달리, '7년의 밤'의 살인범에게는 사건이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수의 감정선에 대한 탁월한 묘사 이외에도, 영제의 복수극을 비롯한 향후 행보, 그리고 진실을 마주하게 된 서원이 취하게 될 태도 등이 미결로 남아 있으니, 독자는 남은 천릿길을 기꺼이 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어차피 독자는 범인을 내심 옹호하고 있기 때문에 범인에 대한 징벌은 독자를 만족시키기는 커녕 분통을 터뜨리게 할 것이다.  

참, 더 말하고 싶은데 스릴러물이라 까발리기도 그렇고. 결론은 재미있습니다. 최근 읽은 소설이 3권 (편혜영의 '더홀', 클레어 맥킨토시의 '너를 놓아줄게')이 공교롭게도 모두 못된 남편을 반동인물로 설정하고 있었는데, 그 3권 중에서 '7년의 밤'에 나오는 남편 캐릭터가 가장 현실성이 있었다. 정유정 작가님은 싸이코패스 수십명과 내밀한 면담이라도 하셨는지. 

 

처음엔 그것이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고 여겼습니다. 나중에야, '자기 것'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라는 걸 깨달았지요. 그에게 아내와 아이는 '자기 것'의 핵입니다. 자신이 정한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 자신의 권위와 영향력과 통제력을 확인하는 대상, 자신이 주는 것만 받고 자신이 요구하는 것을 주는 존재, 자신의 방식대로 움직이는 손가락과 발가락입니다. 그것이 흔들린다는 건, 자기세계의 핵심이 손상당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남편에게는 절대로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것이 복원이 불가능한 상태로 손상당했을 때, 남편이 어떻게 할지는 상상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Chapter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7년의 밤'은 크레마로 읽었는데, 전자책 단말기의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지도가 크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짚어두고 싶다. 서점 가서 실물 책을 보니까 두 페이지 가량을 지도가 차지하고 있었던 반면, 크레마는 반쪽 정도 차지한다. 작가가 텍스트로 이미 세령마을의 지형을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종이책을 권한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