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토리 출판사에서 펴낸 벤허를 읽다가, 번역 문제로 5부 초입부터 현대지성 출판사 버전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3부까지는 더스토리 버전으로 어떻게든 읽고 있었는데 4부부터 공중제비를 돌고 물구나무를 서도 의아스러운 문장들이 대거 출현하기 시작했다. 가령 아래 사진과 같은 문장들이었는데
아무튼 읽는 도중 턱턱 막히는 느낌에 기분이 영 좋지 않던 와중에, 전자책으로 현대지성 출판사의 버전도 확인해볼 기회가 있었다. 현대지성은 더스토리만큼 각주가 많이 달려있지 않았음에도 가독성이 좋았다. 그만큼 현대지성 출판사 버전이 번역이 더 잘 되었다는 뜻이렸다.
더스토리가 펴낸 '벤허'는 표지와 디자인, 각주 등등 여러 면에서 공을 들였지만 컨텐츠 그 자체를 놓친 것 같아 아쉽다. 번역본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독자가 컨텐츠에 접근할 기회가 차단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번역자와 출판사에 탓을 돌릴 수도 있겠지만 좋은 품질의 번역에 돈으로 보답하기를 거부하는 한국사회 분위기도 한몫하는 듯. 조금 씁쓸하다. 아니면 원문이 워낙 번역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고.. 에라이 모르겠다.
일단 더스토리 버전의 벤허는 4부까지 읽었으니, 해당 지점까지는 더스토리 기준으로 포스팅을 올리겠다.
세가지 문장(혹은 문단)에 대해서 원문 - 더스토리 - 현대지성 순으로 번역 비교를 하고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제4부 제2장
원문
"The river here runs to the west," he said, in the way of general answer. "I remember when it washed the base of the walls; but as Roman subjects we have lived in peace, and, as always happens in such times, trade has had its will; now the whole river front is taken up with wharves and docks. (...)"
더스토리
"이 강은 서쪽으로 흐릅니다. 강물이 성벽에 바로 찰랑대던 때가 기억나는 군요. 하지만 로마의 신민으로 평화로워지자 자연히 무역이 번창했지요. 그래서 이제는 강의 전면에 부두와 선창이 세워졌지요. (...)"
현대지성
"강은 여기서 서쪽으로 흘러간답니다. 강물이 담 기슭에 밀려왔던 때가 생각나네요. 하지만 로마 백성으로 이제껏 우리는 평화롭게 살아왔죠. 그리고 태평성대에 늘 그렇듯 교역이 융성하여 이제는 강가 전체에 부두와 선창이 들어섰죠. (...)"
원문에도 Roman subject로서의 we 라고 주어가 명시되어 있다. 더스토리 버전의 문장은 주어가 누락돼 혼란스럽다.
제4부 제6장
원문
Some there were, no doubt, caught by the promise held out to their troubled spirits of endless peace in a consecrated abode, to the beauty of which, if they had not money, they could contribute their labor; this class implied intellect peculiarly subject to hope and fear; (..)
더스토리
일부는 고통받는 영혼이 성소에서 끝없는 평화를 얻으리라는 약속에 붙들린 것이다. 이들은 신전의 아름다움을 위해 돈으로, 돈이 없으면 노동력으로 봉사했다. 이 부류는 특히 희망과 두려움을 조건으로 지성을 암시한다.
현대지성
지친 영혼들이 성스러운 곳에서 끝없는 평온을 누릴 수 있다는 약속에 자로잡혀 돈이 없다면 일을 해서라도 그 아름다움에 기여하려는 이들이 분명 있었다. 이러한 부류는 특히 희망과 두려움을 품기 쉬운 식자층일 확률이 높다.
음.. 이 문장은 현대지성 쪽에서 번역을 잘한것 같다. 원문 문장이 어렵다;;
제4부 제12장
원문
The manner was frank, cordial, winsome. Drusus melted in a moment.
더스토리
솔직하고 쾌활하면서도 솔직한 태도에 드루수스는 곧 마음이 풀렸다.
현대지성
솔직하고 진심이 담긴 메살라의 쾌활한 태도에 드루수스는 언제 화가 났었냐는 듯 금세 풀어져 (...)
원문을 읽어보면 같은 단어가 두번 반복되지 않는다. 더스토리는 솔직하다는 표현이 두번 나오는데 번역단계는 그렇다 치고 편집단계에서는 이 문장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한건지 의문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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