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잘 지내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엄마와 한바탕 하고 자취방에 도망치듯 와 있다. 자취방에 와서도 전화로 언성을 높이다가 차단하다가 다시 문자로 서로 상처를 주다가 또 차단했다. 옆방 사람이 이 소란을 듣고 뭐라고 생각할지.. 알고 싶지도 않다. 

 

우리 가족이 굉장히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한사람 한사람 뜯어보면 번듯해보이지만, 지난 삼십년 세월 동안 평온하게 보낸 개월수가 손에 꼽을 정도다. 누구 한명이 특별히 문제랄 것도 없고 누구 한명이 온전히 결백한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엄마 아빠의 결혼, 그러니까 결이 전혀 다른 집안 간의 결합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내 탓인가? 내가 두분 결혼하시라고 등 떠밀었냐구요!

 

사춘기와 대학생 시절에는 이 모든 것이 괴로워서 친구에게 털어놓을 때도 있었다. 모두 속사정을 들어줄 법하다고 생각되는 꽤 친한 친구들이었는데, 더러는 공감하고 위로해주었고 더러는 도리어 내게 상처를 주었다. 물론 그 친구들이야 내게 상처 줄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 "가족 욕은 누워서 침 뱉기" (← 누가 몰라서 이러냐.. 오죽하면 너한테 털어놨겠니),
  • "이래서 가정환경이 안 좋은 사람과는 사귀면 안 된다" (←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비슷한 요지였음. 나를 사람으로 보지도 않는 것 같아서 충격 받았다. 그래놓고도 나에게 한동안 계속 연락했던 저의가 무엇인지.),
  • "OOO이 불쌍해!" (← 대충 가족구성원 한명만 일방적으로 편드는 말. 우리 가족 중에 피해만 본 사람은 없다.)

이 말들은 아직도 볼썽사나운 흉터로 남아 있다. 소중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 더 잔인하게 들렸다. 따지고보면 그네들이라고 남의 가족사가 듣고 싶었겠나. 친구들이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내 가족사를 듣게 되었듯이, 나도 내 의사와 상관없이 잔인한 말을 듣게 되었을 뿐.

 

그래서인지 요즘은 가족 이야기를 남에게 잘 하지 않는다. 마침 경제활동도 시작하게 되어 가족 스트레스를 돈으로 풀 수 있게 되었다. 독립하면서 나만의 공간을 가지게 되었고, 차를 몰게 되면서 이동의 자유가 생겼고,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그냥 시키고, 하고픈 운동이 있으면 회원권을 끊었다.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은 여전히 있다. 돈지랄을 아무리 해도 구제되지 않는 날이 있다. 이 포스팅을 쓰게 된 이유다. 원치 않게 이 글을 죽 읽고 기분이 안 좋아지신 분들께는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일전의 제 친구들처럼 절 위로할 의무감에 얽매이는 일은 없을테니 (...?) 지금이라도 백스페이스를 누르시면 되겠슴다. 

 

친구랑 친구 아버지와 신나게 공놀이 하다가 왔는데 집에 와보니 한바탕 난리가 나 있던 날. 그 낙차로 인한 절망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해? 누가 내 처지를 알고나 싶겠어? 누가 나랑 엮이고 싶을까? 방금 전까지도 나랑 같이 공놀이 하던 그 친구는, 내 가정사를 알면 다음에도 어울려 주려나? 

 

우리 가족이 하나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하루하루 기도하고 버티다 보면 그런 날이 오겠지? 

 

일기장에나 적어야 마땅한 글이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매번 적으려니 답답했다. 망망대해에 띄우는 유리병 편지처럼 나와 어느 정도 무관한 사람이 읽어주길 바라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제 나는 남은 주말을 수습하러 가보겠다.

p.s. 이러고 몇시간 뒤에 엄마랑 통화해서 화해했다. 민망..하지만 해피한 결말에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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