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떠한 생각에 꽂혀 있는데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일단 시도해 보겠다.

 

테니스에는 Best efforts rule이라고, 경기에 최선을 다해 임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ITF 2023년 Code of Conduct M항).

모르긴 몰라도 이러한 규칙은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도 많이 적용되리라 생각된다. 그렇지 않으면 지고있는 팀이나 선수가 '어차피 질 텐데 뭐하러 에너지를 낭비하나'라는 생각에 불성실하게 경기에 임하게 될테고, 그렇게 된다면 관객은 굉장히 수준 낮은 경기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경기의 박진감이란, 실력이 더 좋은 선수나 팀에게 달려 있기 보다는 실력 (혹은 컨디션)이 떨어져서 경기를 지고 있는 선수나 팀에게 달려 있다. 언더도그가 경기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으면 관람객은 그 경기를 볼 이유가 없다. 

 

보통은 언더도그에게 best efforts rule 준수를 더 요구하곤 하지만,  높은 랭킹의 선수가 태업을 하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2018년 Shanghai Masters 1회전에서의 닉 키리오스 (Nick Kyrgios)가 바로 그런 케이스였는데... 당시 ATP랭킹 38위인 키리오스가 예선전을 겨우 통과한 선수 Bradley Klahn를 상대로 패한 것이다. 여기서 묘한 부분은, (아래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Bradley Klahn이 잘해서라기 보다는 키리오스가 좀체 진지하게 경기에 임하지 않아 일어난 결과였다는 점이다. 


(하긴 키리오스는 소문 나기로 멘탈 기복이 심하기 때문에, 이 경기에서 마냥 우세한 위치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악마의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안한 멘탈 때문에 모든 경기에서 언더도그인 키리오스는 대체...)

 

선수 모두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경기의 관람가치가 매우 떨어지게 되듯이, 인생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으면 그 가치가 떨어진다는 명제는.. 높은 확률로 진실일 것이다. 그런데 진지하게 임하는 태도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있는 힘껏 꾹꾹 눌러밟으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고 볼 수 있는걸까?

 

동호회에서 테니스 경기를 할 때, 나만의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치면 보통 포인트를 잃는다. 강한 스트로크와 독특한 앵글로 포인트를 따내려고 하지만 오히려 나의 범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반면, 오히려 살살 칠 때 포인트를 왕왕 따게 된다. 저쪽의 동태를 계속 살피면서 주워넘기다 보면 상대방이 실수해서 포인트를 내주거나, 상대편의 빈틈이 생겨서 그리 강한 샷을 때리지 않아도 손쉽게 포인트를 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조건 살살 쳐야 한다거나 하는 단순한 교훈으로 결론 지으려는 것은 아니고, 내가 느낀 점은 내가 내멋대로 그 포인트의 향방을 결정짓기 전에 이미 그 포인트에 내재된 밑그림이 있기 때문에 그 시그널을 기다려야 한다는 느낌에 더 가깝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이사야서 31장 1절)

 

꾹꾹 눌러쓰고 꾹꾹 눌러밟고 두손 주먹을 꽉 쥐고 양 미간을 찌푸리는 것이 인생의 왕도라고 생각해왔었다. 그것만이 내 진지함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라고 믿었다. 과거에 나는 내 노력과 고통의 양이 중요하다고 여겼지만, 지금의 나는 노력의 극대화 이전에 이 상황에서 내가 정말로 무엇을 하거나 혹은 하지 말아야 하는가 - 에 대한 밑그림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안다. 성경 특히 구약말씀을 읽다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획을 믿고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징계를 받을 때가 많다. 여기서는 노력의 양은 전혀 상관없는듯 보이기도 하는데, 오히려 인간적인 생각에서 나온 노력(애굽으로 내려감, 우상숭배, etc.)에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취해야 할 action 혹은 inaction은 이미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것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실은 text는 이미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 text를 그대로 읽어나가면 되는 reader된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다 정해져 있으면 우리의 자유의지는 어떻게 되는거냐, 우리가 주체성이 있기는 한거냐? - 라는 문제의식이 뒤따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읽는 책의 text가 pre-defined되어 있으니 독자로서의 주체성이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정신나간 사람이 어디 있는가? 좋은 책을 읽은 독자(reader)는 텍스트가 고정되어 있다며 답답함을 느끼기 보다는 정신적인 고양감에 사로잡힌다. 지혜로운 독자(≒신자)는 그 끝에 충실한 기쁨이 예비되어 있음을 믿기에 텍스트(≒성경말씀, 혹은 하나님이 마련하신 밑그림)을 성실하게 읽어나간다. 

 

그래서 best efforts rule을 가장 잘 준수하는 방법은, 상황상황마다 깔려 있는 하나님의 밑그림을 헤아리려는 품을 들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노력의 극대화는 그 다음 문제이다. (실은 노력도 하나님께서 그 적정량을 정해두셨을거란 생각이 든다.)

 

역시 내가 생각한 바를 다 표현하지 못했다.. 아직 생각이 여물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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