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으로 김금희 작가님을 알게 되는 큰 수확을 얻었다. 이 작품을 쓰신것만으로도 김금희 작가님은 (나 한정) 까방권을 얻었다. 작가님은 따뜻한 천재라고 감히 말해보고 싶다.
한강 작가님 작품에서는 에곤 쉴레와 같은 서늘한 느낌을 받는 반면, 김금희 작가님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에서는 덴마크 화가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Peder Severin Krøyer)의 작품이 발산하는 따뜻함과 애정이 느껴진다. '나뭇잎의 잎맥처럼 섬세하게 그려'졌다던 정서경 작가님의 평이 마음에 와닿는다.

좋아하는 마음에 압도되어서 책을 다 읽고도 수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감상을 조리있게 설명하질 못하겠다. 그만큼 문장 하나하나가 좋았고, 서사도 좋았고, 주인공을 비롯한 각종 캐릭터들에게도 마음이 빼앗겼다.
다만 리사나 이창충과 같이 차가운 사람/악인들에게는 지면을 당최 할애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악역에게도 이런 사연이 있어요 -'라며 악인 캐릭터에 입체성 (내지는 당위성)을 부여하는 작금의 트렌드와는 달리, 김금희 작가님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변명의 여지도 주고 싶지 않았던걸까.

(자칭) 딜레탕트로서 참고문헌이 있는 점도, 작가님의 성실함이 느껴져 감동받는 포인트 중 하나...
뻐렁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창경궁 답사도 갔단 말이지.






김금희 작가님 책 더 읽어볼 의향이 있고, ≪대온실 수리 보고서≫은 기회가 된다면 재독 삼독하고 싶다.
"영두는 근데 서울은 좋아하나?"
"서울이 뭐 사람인가 좋아하게."
"서울 가면 잘할 수 있나? 혼차?"
"지금은 뭐 혼차 아닌가. 아까 아침에 아빠 들어오는 거 보고 나 어서 오시겨 인사할 뻔했잖아. 옆집 아저씨인 줄 알고."
"아부지가 낯이 없네."
"낯 없는데 어떻게 말은 하네."
대화하는 동안 우리는 마당 장대에 널려 건조되고 있 는 가오리를 올려다보았다. 연처럼 꼬리가 긴 그 생선은 밑에서 쳐다보면 눈코입이 늘 웃는 듯 보여서 문제였다. 마주하고 있으면 많은 것들이 시시해졌다. 바람이 한번 불고 지난 뒤의 모래사장처럼 마음의 표면이 평평하게 균형이 맞춰지는 게 느껴졌다. 고작 그 시시함으로.
- '1장. 원서동' (p.25)
그런 사람을 무작정 만나러 가라니 나는 입맛을 잃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불친절하기밖에 더하겠어, 하는 오기도 생겨났다. 사는 게 친절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하면 불친절이 불이익이 되지만 친절 없음이 기본값이라고 여기면 불친절은 그냥 이득도 손실도 아닌 '0' 으로 수렴된다.
- '2장. 옮겨다 심은 종려나무 밑' (p.70)
"사랑한다고."
"뭐라고?"
나는 얘가 귓구멍이 막혔나 싶어서 어깨에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고 "사랑한다고, 안 들려?" 하고 외쳤다. 순신은 양쪽 다리로 자전거를 지탱하더니 핸들바를 놓고 뒤돌아 나를 꽉 안았다. 나는 좋은 부분을 오려내 남기지 못하고 어떤 시절을 통째로 버리고 싶어하는 마음들을 이해한다. 소중한 시절을 불행에게 다 내주고 그 시절을 연상시키는 그리움과 죽도록 싸워야 하는 사람들을.
- '3장. 야앵(夜櫻)' (p.156)
해방 이후에도 오랫동안, 장과장이 말한 것처럼 케이블카 같은 유흥시설을 확충해가면서 유원지로서 사람들이 즐겼다는 점은 또다른 상징성을 생각하게 했다. 해방 이후 황실 재산을 관리한 구황실재산사무총국은 창경원 경내 전역에 전등을 가설하고 심지어 무대를 만들어 공연과 문화영화 등을 울렸다. 밤벚꽃놀이, 야앵은 그렇게 흥행해 한국전쟁이 채 끝나지도 않은 1952년과 이듬해에도 행해졌고 참여객은 날이 갈수록 늘어 1974년에는 2백여만 명이 봄소풍을 즐겼다.
- '3장. 야앵(夜櫻)'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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