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빠른 스피드로 완독해서 성취감을 느꼈다.

본인이 처한 현실을 시니컬하게 바라보는 여성을 화자로 설정한 점과, 그러한 화자가 여러 남자를 저울질한다는(?) 점에서, 양귀자의 '모순'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모순'보다 '한국이 싫어서'를 더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분량이 100쪽 가량 차이가 나서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이 싫어서'에 담긴 문장이 더 가볍고 부담이 없어서 내달리듯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지.

독자에게 말을 걸려는 시도였다면 가벼운 문체가 적절해 보인다.

영화로도 나온다는데, 서스펜스는 없어 보이던데 어찌 풀어나가련가? 로드무비 장르가 될지.. 궁금하다.

사육 이데올로기를 온몸으로 거부하고, 사육장의 주인을 쫓아내야 한다-는 허희 평론가의 문장은 다소 과격하다고 느꼈다. (허희 평론가님이 그런 사람이라는건 아니지만) 체제 전복을 외치는 사람들은 전복 이후의 대안이 없거나 대안으로 자기자신/자기무리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고 느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부감이 든다.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 만날 나와서 사자한테 잡아 먹히는 동물 있잖아, 톰슨가젤. 걔네들 보면 사자가 올 때 꼭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 하나씩 있다? 내가 걔 같애. 남들 하는 대로 하지 않고 여기는 그늘이 졌네, 저기는 풀이 질기네 어쩌네 하면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있다가 표적이 되는 거지.

하지만 내가 그런 가젤이라고 해서 사자가 오는데 가만히 서 있을 순 없잖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은 쳐 봐야지. 그래서 내가 한국을 뜨게 된 거야.

- Chapter '1 터틀맨' (p.11-12)

 

W그룹이 경영이 어려워지니까 증권사 직원들한테 할당량을 주고 건실한 거라면서 계열사 회사채랑 어음을 팔게 했어. 그런데 건실은 개뿔. 몇 달 있다가 그 회사들이 부도가 났어. 직원들한테 사기를 치게 한 거지. 완전 양아치 짓거리 아냐?

이게 나한테 왜 쇼킹했냐 하면, 어쩌면 한국에 남아서 계속 종합금융에 다녔더라면 나도 그런 어음을 팔았을 수도 있어서야. W종금 카드 부문이 없어졌거든. 그 외국 카드가 한국에 직접 진출하는 바람에. 그래서 회사 이름도 W증권으 로 바꿨지. 카드 부문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증권 영업으로 갔다고 들었어.

내가 한국에 남아 있었더라면 그런 거대한 톱니바퀴에 저항할 수 있었을까. 아니었을 거야, 아마…….

- Chapter '1 터틀맨' (p.27-28)

 

예나한테 아이엘츠 공부를 하다 읽은 영어 지문에서 본 이야기를 해 줬어.

"예나야, 너 비행기에서 낙하산 메고 떨어지는 거랑, 빌딩 꼭대기에서 낙하산 메고 떨어지는 거랑, 어느 게 더 위험한지 알아?"

"어느 게 더 위험한데?"

내 동생은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뜨악한 표정이었지.

"빌딩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게 휠씬 더 위험해. 높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바닥에 당기 전에 몸을 추스르고 자세를 잡을 시간이 있거든. 그런데 낮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그럴 여유가 없어. 아차, 하는 사이에 이미 몸이 땅에 부딪쳐 박살나 있는 거야. 높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낙하산 하나가 안 펴지면 예비 낙하산을 펴면 되지만, 낮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한테는 그럴 시간도 없어. 낙하산 하나가 안 펴지면 그걸로 끝이야. 그러니까 낮은 데서 사는 사람은 더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조심해야 해. 낮은 데서 추락하는 게 더 위험해."

그런 걸 베이스(BASE) 점프라고 한대. 빌딩(Building)이나 안테나(Antenna), 교각(Span), 절벽(Earth)에서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린다고.

- Chapter '5 베이스 점프' (p.124-125)

 

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 솔직히 나라는 존재에 무관심했잖아? 나라가 나를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지켜 줬다고 하는데, 나도 법 지키고 교육받고 세금 내고 할 건 다 했어.

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그래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 줄 구성원을 아꼈지. 김연아라든가, 삼성전자라든가. 그리고 못난 사람들한테는 주로 '나라 망신'이라는 딱지를 붙여 줬어. 내가 형편이 어려워서 사람 도리를 못하게 되면 나라가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국가의 명예를 걱정해야 한다는 식이지. 내가 외국인을 밀치고 허둥지둥 지하철 빈자리로 달려가면, 내가 왜 지하철에서 그렇게 절박하게 빈자리를 찾는지 그 이유를 이 나라가 궁금해할까? 아닐걸? 그냥 국격이 어쩌고 하는 애기나 하겠지. 그런 주제에 이 나라는 우리한테 은근히 협박도 많이 했어. 폭탄을 가슴에 품고 북한군 탱크 아래로 들어간 학도병이나, 중동전쟁 나니까 이스라엘로 모인 유대인 이야기를 하면서, 여차하면 나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눈치를 줬지. 그런데 내가 호주 와서 이스라엘 여행자들 만나서 얘기 들어 보니까 얘들도 걸프전 터졌을 때 미국으로 도망간 사람이 그렇게 많았다더구먼. 학도병들은 어땠을 거 같아? 다들 울면서 죽었을 걸? 도망칠 수만 있으면 도망쳤을 거다. 뒤에서 보는 눈이 많으니까 그러지 못한 거지.

- Chapter '7 남십자성' (p.170-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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