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이미 수년전에 스포(?)를 당한 전적이 있다.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 ≪채식주의자≫를 최근에 읽었는데, 그 책에서 예술하는 한 남자가 처제와 관계하는 사건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그말을 듣고 나는 한강 작가님의 책은 읽지 않겠노라고 결심했다. (어차피 당시엔 책과 별거상태였으므로 별 어려울 일도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작년 10월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다음날 직장에 가보니 책 좀 읽는다 하는 사람들은 온통 한강과 그녀의 작품 이야기뿐이었다.
한국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나에게도 기쁨을 넘어 흥분감을 안겨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수년전에 들었던 <몽고반점> 줄거리의 충격이 아직 가시질 않은 상황이었다. 사소한 일에 영향을 잘 받는 사람인지라 한강의 작품세계를 깊이 들여다보고 싶지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이랑 대화는 섞고 싶고... 해서 그나마 가벼워 보이는 책(≪희랍어 시간≫)을 집어들었다.
≪희랍어 시간≫은 다 읽는데 45일이 걸렸다. 반면 채식주의자는 완독에 11일 정도가 걸렸다. 그 정도로 ≪채식주의자≫는 물 흐르듯 죽죽 읽혔다. 주인공 영혜를 각기 관찰자의 시점에서 서술한다는 점 (영혜에 감정이입을 덜하게 되어 덜 고통스러움), 소재&줄거리가 파격적이라서 이목을 확 끌었다는 점 등이 비교적 단시간에 독파한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어찌되었건 같은 작가의 두 소설을 읽은 뒤의 나의 느낌은 : 한강은 분명 텍스트로 이야기하는데 나에게 남은 것은 이미지 뿐이네..
한강은 설명하거나 설득하는 문장을 쓰기보다는, 묘사하고 그려내는 문장을 빚어내는 작가 같다. 메시지나 논리를 담고 있는 글이라면 내 나름의 논리로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데, 그녀의 문장들을 읽으면 강렬한 이미지만이 남게 되어 강한 동조도 부정도 하기가 어렵다. 미술관만 가면 절절 매는 내가, 한강이 내 뇌에 투사한 이미지의 의도를 안다고 말하기가 참 난처하다.
막막한 마음에 ≪채식주의자≫에 대한 세간의 논평을 찾아봤는데, 많이들 이 소설이 폭력에 대한 저항과 생명 중시 사상을 이야기한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런가. 그런데 왜 영혜는 '채식주의자' 말미에서 새를 물어뜯었을까? 식물로 되어가는 과정이었는데 굳이 형부랑 관계할 필요가 있었는지? 정말 생명존중과 폭력반대가 이 소설의 중심메시지였다면, 필요 없어보이는 장면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성별이 뒤바뀐 듯한 묘사들 ('몽고반점'에서 후배 J가 남자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고, 옛연인 P가 계속 형이라고 불러대서 P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계속 갈피를 못 잡았다.), 사회적으로 암묵합의된 프로토콜들이 힘을 잃어버린듯한 장면들 ('채식주의자'에서 부부동반모임에 갔을 때의 영혜의 옷매무새, 남편 직장상사의 부인을 빤하게 쳐다보는 행동)
이런 장면들을 통해 '영혜는 폭력에 예민한 사람이구나'라는 느낌이 들기 보다는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영혜의 기행에 사람들이 질문을 던질 때마다 영혜의 대답은 한결같다 (꿈을 꿨어).
영혜에게는 외려, 이 세상이 환상지대이고 꿈속세상이 현실인게 아닐까? 다른 리얼리티를 살아내는 사람한테.. 채식을 멈추고 고기를 먹으라는 주변의 원성이 말같지도 않게 들리진 않았을지. 이런 사람과 진정한 소통을 하려면, 내가 그 사람이 사는 세계로 건너가는 수 밖에 없다. 나는 (3부에 걸쳐 영혜를 지켜보았던) 언니 인혜가 마지막에 영혜의 귀에 대고 하는 말이 그 첫 시도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음식들이 서빙되기 시작하자, 내가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팽팽한 노력의 끈은 끊어졌다.
처음 우리 앞에 놓인 것은 탕평채였다. 가늘게 채썬 묵청포와 표고버섯, 쇠고기를 버무린 정갈한 음식이었다. 그때까지 한마디의 말도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아내는, 웨이터가 자신의 접시에 탕평채를 털어놓으려고 국자를 드는 찰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안 먹을게요."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좌중의 움직임이 멈줬다. 의아해하는 시선들을 한몸에 받은 그녀는 이번엔 좀더 큰 소리로 말했다.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 <채식주의자> (p.34)
마침 작업실 문은 잠겨 있었다. 일요일 오후는 거의 유일하게 그 혼자서 작업실을 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기업 메세나 운동의 일환으로 K그룹에서 본사건물 지하 이층에 제공한 이 여덟 평의 공간에서는네 명의 비디오작가들이 컴퓨터 하나씩을 붙들고 작업했다. 고가의 장비들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지덕지였지만, 혼자일 때에만 몰입이 되는 그의 예민한 성격으로는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 <몽고반점> (p.83)
영혜는 그녀보다 네살 어렸다. 터울이 제법 져서인지 그녀들은 자매간에 흔히 볼 수 있는 티격태격하는 갈등 없이 자랐다. 손이 거칠던 아버지에게 차례로 뺨을 맞던 어린시절부터 영혜는 그녀에게 무한히 보살펴야 할, 흡사 모성애와 같은 책임감을 안겨주는 존재였다. 발뒤꿈치에 새카만 때가 끼어 있고 여름이면 콧잔등에 땀띠가 빨긋하게 돌던 여동생이 성장하여 결혼하는 것을 그녀는 신기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다만, 나이를 먹을수록 동생의 말수가 적어진 것이 내심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녀 역시 신중한 성격이긴 하지만 분위기에 따라 밝고 싹싹한 편인 데 반해, 영혜의 심중은 어느 때건 들여다보기 어려웠다. 너무 어려워 때로는 타인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 <나무 불꽃>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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