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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中 - 5부) '벤허', 루 월리스 著, 서미석 譯, 출판사 현대지성

한낱점 2024. 6. 16. 23:57


일전에 말했다시피, 5부 초중반부터 번역 문제로 더스토리 출판사에서 현대지성 출판사로 넘어가게 되었다. 실은 처음부터 번역을 의식하였던 것은 아니고, 밖에 들고 다니기에는 무거운 벽돌책인 관계로, 밀리의서재나 크레마클럽에서 다운 받아 볼 수 있는 현대지성 출판사 버전을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두 출판사의 번역본을 비교하게 된 것이다.



제4부에서는 벤허가 중요한 조력자들을 만났다면, 제5부에서부터는 여러 도움과 본인의 능력을 바탕으로 벤허가 행동 개시에 나선다. 여기서 그 유명한 전차경주 장면이 나온다. 총 7부로 구성된 '벤허'에서 5부만 전차경주의 준비과정과 진행을 다루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전차경주 그 자체에 할애된 페이지수는 책 전체로 따져봤을 때 그리 많지 않음을 감안하면, '벤허'하면 전차경주만 떠올리는 세간의 인식이 조금 아쉽다는 생각도 해본다. 다른 재미있는 부분도 참 많은데..

예를 들면 이라스가 내심 메살라를 마음에 두고 있으면서 벤허를 꼬시는 과정이라든지, 메시아는 어떤 모습으로 오실런지에 대한 논쟁, 전차경주 이후에 벌어진 피습(?)위기를 벤허가 어떻게 모면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도 전차경주 못지않게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영화 '벤허'를 보신 분들도 책을 일독해보셨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다른 디테일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

만약에 벤허 독서토론 기회가 있고, 그 중에서도 5부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세션이 있다면, 내가 물어보고 싶은 질문은 '왜 루 월리스는 네네호프라 이야기를 넣었을까?'이다. 네네호프라 이야기 자체가 상당히 흡인력이 있지만 전반적인 5부의 흐름에서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어찌되었든, 5부는 4부에 비해 사건사고가 많기 때문에 조금더 박진감 있게 읽어나갈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네네호프라

  I.
  이 세상에 똑같은 인생은 없답니다.

  굴곡 없는 삶도 없지요.

  가장 완벽한 삶은 원처럼 돌고 돌아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게 시작점에서 끝이 나죠.

  완벽한 삶은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는 보물이지요. 위대한 시대에 그분께서는 약지에 그 보물을 끼신답니다.

- 제5부 제3장
“그동안 얻은 수입 553달란트에 제가 맡은 선대 주인님의 원금 120달란트를 합치면 673달란트가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 도련님 것입니다. 이 정도 금액이면 도련님을 세상 최고의 갑부로 만들어 주고도 남을 돈이죠.”

 시모니데스는 파피루스 낱장들을 에스더에게서 받아 하나로 모은 후 잘 말아서 벤허에게 주었다. 그의 태도에서 느껴지는 자부심은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그 자부심은 의무를 잘 완수했다는 의식에서 나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모니데스 자신과는 상관없이, 벤허에 대한 의무감이었을 것이었다.

- 제5부 제7장
"(...)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무작정 나아가야 할까요? 왕께서 나타나시거나 저를 부르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할까요? 당신은 나이도 많고 경험도 풍부하시니 대답해 주세요.”

- 제5부 제8장
"(...) 그리고 이곳에 남아 있어 봤자 개죽음을 당할 것이 뻔하니 당장 일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제5부 제8장
"(...) 에스더, 그곳의 삶이 내게는 너무도 조용해.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나태한 습관에 젖어 스스로 비단 족쇄에 묶인 기분이 들지. 얼마 지나면 아무것도 해놓은 것 없이 인생이 끝날 것 같은 기분에 시달려 오히려 불안하다오.”

- 제5부 제9장
실내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메모를 읽는 동안 모든 사람이 그대로 얼어붙은 것 같았다. 메살라는 그 메모를 뚫어져라 응시했고, 그동안 놀라서 휘둥그레진 눈길들은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아주 최근에도 같은 장소에서 주위에 있던 로마인들에게 똑같이 뻐긴 적이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기억할 것이었다. 만약 서명하기를 거부한다면 영웅으로서의 체면을 구길 것이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서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100달란트는 고사하고 20달란트도 없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메살라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서 있었다. 얼굴에서는 핏기가 싹 가셨다.

- 제5부 제11장
나팔 소리가 울리는 순간의 경기장 전체 내부를 이렇게 돌아보았으니, 모든 관중이 일시에 쥐죽은 듯 고요해지며 강렬한 호기심에 사로잡혀 미동도 앉은 채 앉아 있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 제5부 제12장
정확한 비율이 확실치 않았으므로 그 거실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없었다. 건물 내부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방이 깊게 뻗어 있었다. 찬찬히 살펴보려고 멈춰 서서 바닥을 내려다보았더니 백조를 애무하는 레다의 가슴 위에 서 있는 꼴이 되었다. 좀 더 멀리 보자 바닥 전체가 신화 속 주제를 표현한 모자이크 그림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디자인이 각각 다른 등받이 의자와 등받이가 없는 의자들, 절묘하게 만들어진 예술품, 깊게 조각한 탁자들, 올라와 누워 달라고 손짓하듯 침상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벽 가까이 서 있던 가구들은 마치 잔잔한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바닥에 또렷이 비춰져 있었다. 심지어 벽장식과 그 위에 그림과 얕은 돋을새김으로 표현된 인물의 모습, 천장의 프레스코화조차도 바닥에 비춰져 그대로 드러났다. 천장은 아치 모양으로 둥글게 굽어 있었고 중앙 부분은 뚫려 있어서 그곳을 통해 햇빛이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왔고 더없이 푸른 하늘은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 제5부 제16장
여전히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는 점점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고 이라스가 왜 그렇게 꾸물거리는지 궁금해졌다. 다시 바닥에 그려진 신화 속 인물들을 따라가 보았지만 처음에 살펴보았을 때처럼 만족스러운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살피다 무슨 소리가 들리나 싶어 자주 멈춰 서서 귀를 기울여보았다. 이윽고 초조한 마음이 조금씩 엄습하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커졌다. 마침내 집안 전체를 감싸고 있는 침묵이 의식되기 시작하자 마음이 불안해지고 의구심이 생겼다.

- 제5부 제1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