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中 - 1부) '벤허', 루 월리스 著, 공경희 譯, 출판사 더스토리
벤허를 읽고 있다.
4부 끝자락까지 읽었는데, 평소에 갖고 다니면서 읽으면 좋으련만 은근 벽돌책이라서 아침에 짬내서 진도 빼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더스토리가 펴낸 국문본을 펼쳐 들었는데 서두에 등장인물, 당시 이스라엘 상황, 예루살렘 지도 등이 나와 있어서 맥락을 잡기 쉬웠다.
나는 특히나 역사나 상식에 무지한 사람이기 때문에 지면을 할애하여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책이 감사하다.
각 챕터별로 서문이 저렇게 실려 있곤 하던데, 원서에도 저렇게 실려 있으려나? 나중에 여유가 된다면 원서도 시도해볼까 고민 중이다.
실낙원으로만 알고 있던 존 밀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노래하는 시를 썼던 모양이다.
여기서 내 가련한 기억력을 고백해야 겠는데, 그것은 바로 영화 '벤허'의 초입부에 대한 것이다. 영화 '벤허'가 고전명작이라는 말을 듣고 수년 전에 영화를 찾아보았던 일이 있었다. 그러나 몇분 보지 못하고 인내심이 바닥 나 중도 하차하게 되었는데, 나는 여지껏 그 이유가 영화가 (뜬금없이) 메살라와 벤허가 말다툼하는 장면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지금 영화 '벤허' 초입부를 다시 보니 도서 '벤허'와 동일하게 1부 내용(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그리스도 탄생의 이야기)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왜 1부 내용이 영화에 없었다고 생각했을까? 1부 비중이 적어서 그런 착각을 한걸까? 책을 완독하게 되면 영화를 다시 시도해봐야 겠다.
좌우지간.. 다시 책으로 화제 전환을 해보자면, 1부는 두 갈래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한 데 모이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세명의 동방박사들이 성령의 감화를 받아 구세주 나신 곳으로 가는 이야기와, 요셉과 마리아가 호구조사에 응하기 위하여 베들레헴으로 가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가 성탄 이야기로 매듭을 짓게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 유다 벤허의 이야기는 아는 바가 없으니, 책의 도입부서부터 익히 알고 있던 성탄 이야기가 나와 편안했다. 1부에서 얻은 자신감과 추진력으로 2부까지 순항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동방박사 3인이 각각 이집트, 그리스, 인도 사람으로, 죄다 다른 나라 사람인 줄은 몰랐다. 그리스도 나심이 이스라엘 민족 뿐만이 아닌 이방 민족들에게도 기쁜 소식이었음을 예표하는 일일지? 많은 궁금증을 남기며 2부로 흘러간다.
(...) 걸음을 멈출 기미가 통 없으니, 나그네의 처신이 갈수록 이상해 보였다.
사막을 놀이터로 여기는 사람은 없다. 먹고 살기 위해서, 죽은 것들의 뼈가 산산이 흩어진 길을 걸어서 사막을 횡단하는 것이다. 샘에서 샘까지, 초지에서 초지까지. 아무리 노련한 족장이라도 홀로 길을 벗어나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러니 지금 이 여행자도 재미를 찾고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도망자의 태도도 아니다.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으니까. 그럴 때 휘둘리는 두려움과 호기심의 감정도 나그네에게 없었다. 사람은 쓸쓸하면 동행에게 마음이 약해져서 개를 동지 삼고 말도 친구 삼는다. 개나 말을 쓰다듬고 다정하게 말을 거는 게 창피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낙타는 그런 대접을 받지 못했다. 손길 한 번, 말 한 마디 없었다.
- 제1부 제1장 (p.22)
"그들은 올 거야. 나를 이끈 분께서 그들도 이끌고 계시니. 난 준비나 해 둬야겠어."
- 제1부 제2장 (p.25)
"(...) 하지만 나는 소망을 꺾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신이 사랑과 은혜를 한곳에만, 한 집안에만 주었을까요? 나는 간절히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유대인의 자만심을 뚫고 들어가서 알아냈습니다. 그의 조상들은 진실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선택된 종에 불과하고, 마침내 온 세상이 그 소식을 알고 구원받으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
- 제1부 제3장 (p.32)
"하지만 가축들은 어쩌고!"
"주님이 보살펴 주실 거야. 서두르세."
목자들은 서둘러 길을 나섰다.
- 제1부 제11장 (p.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