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평) 2024 호주오픈 결승전
시너가 능히 이길 줄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번 시합에서 예상치 못했던 점들이 있었다.
일단 (내 기억하기로 베이스라인으로부터 한참 뒤쪽에 자리잡던 선수였던) 메드베데프가 플레이스타일을 바꿔서 그렇게 베이스라인 근처에서 랠리할 줄 몰랐고
(갑자기 다른 플레이스타일을 시도하면 오히려 범실이 많아지는 경우를 많이 봤기에) 그렇게 변경한 플레이스타일이 메드베데프의 초반 1,2세트 선취를 이끌 정도로 경기 전반을 뒤흔들 줄 몰랐고
(예전에는 관중이나 체어엄파이어와 설전을 벌이기도 했던) 메드베데프가 일방적으로 시너를 응원하는 관중에 대해 별 불평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한 2년 전쯤의 호주오픈 결승전에서 메드베데프가 나달과 트로피를 두고 경쟁할 때, 일방적으로 나달을 응원하던 관중들이 생각났다.
어떤 관객은 메드베데프의 서브를 방해하려는 듯 고약한 타이밍에 괴성을 지르기도 해서, 메뎁 팬이 아니었음에도 매우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메뎁도 암묵적이나마 이런 부분을 짚었었다 (링크).
당시 나는 메드베데프의 의견에 일견 동조를 했고, 오늘 경기에서도 그런 불만을 표시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경기에만 집중했다.
굳이 관중을 자극하여 더욱 불리한 상황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 걸 수도 있고, 외부적인 요인에 신경이 안 쓰일 정도로 테니스 실력이 더 무르익은 걸 수도 있겠지만, 둘 중에 그 어느 것이 되었든 존경스럽다고 생각한다.
멘탈이 한층 더 단단해져서 돌아온 메드베데프, 그리고 젊은 나이에도 침착함을 유지하기로 정평이 난 시너가 서로 실력으로만 겨루고 결과를 성숙하게 인정하는 장면을 목도하게 되니, 그간 일상생활이나 뉴스면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많이 해소되었다.
야닉 시너.. 잘 될 줄 알았지만 앞으로 더 잘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해설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한건지 '이렇게 겸손하고 침착하고 완성된 선수가 우승하다니, 너무 기쁘다', '테니스 계는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들을 해대며 한마음 한뜻으로 축하하고 있었다.
야닉 시너의 건강한 2024년을 빈다.
좌우지간, 즐겁고 뜻깊은 2024 AO였음!
(덧붙여, 눈여겨보던 보판나 (Bopanna)가 남성 복식에서 엡덴과 함께 우승하고, 슈웨이 (Hseih)도 여성복식/혼성복식에서 우승했다. 보판나, 슈에이 너무나 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