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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 Lab Girl (Hope Jahren 著)

한낱점 2023. 12. 30. 23:58


약  3~4개월간의 긴 분투 끝에 Lab Girl을 완독했다.


예전에 동아리 선배에게서 한국어 책을 받았었는데 이제사 펼치게 되었다.
책장에 처박혀 있는 랩걸을 보면서 읽고 싶다는 생각을 수년간 해왔다. 저 표지를 봐라. 세밀화가 아름다워서 책을 펼치지 않을 수가 없다.
(표지 그림을 보고 감탄해서 신혜우 님을 인터넷에 검색해봤을 정도이다.)


랩걸을 마음에 계속 두게 된 것은 표지 탓이 크지만,
랩걸을 펼칠 마음을 먹게 한 것은 사람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가끔 방문하곤 하는 병원의 의사 선생님이 멋있고 신비로워 보였는데, 그분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으니 호기심을 랩걸 독파로 해소하고자 한 것.
의사 선생님이 typical한 의사 보다는 과학자 스러운 면모가 돋보여서 랩걸을 읽으면 의사 선생님의 일면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막상 읽고 나니까 호프 자런과 이 의사 선생님은 성격이 정반대이더라...

원서로 읽어보고 싶은 욕구에 영어책을 따로 구매했는데, 생각보다 문장이 어려워서 수개월간 진땀을 흘렸다.
어렵사리 이해하게 된 문장은 아름답고 의미 있었으며, 인생을 고단하게 살아온 호프 자런의 이야기는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My papers do not display the footnotes that they have earned, the table of data that required painstaking months to redo when a graduate student quit, sneering on her way out that she didn’t want a life like mine.

논문들은 하나하나 훈장처럼 획득한 주석들도, 대학원생이 나처럼 살지 않겠다고 코웃음을 치며 갑자기 일을 그만둔 후 몇 달에 걸쳐 고생고생하며 다시 만든 데이터도 내보이지 않는다.

(Chapter 1 of Part 1)
Establishing yourself as a scientist takes an awfully long time. The riskiest part is learning what a true scientist is and then taking the first shaky steps down that path, which will become a road, which will become a highway, which will maybe someday lead you home. A true scientist doesn’t perform prescribed experiments; she develops her own and thus generates wholly new knowledge. This transition between doing what you’re told and telling yourself what to do generally occurs midway through a dissertation. In many ways, it is the most difficult and terrifying thing that a student can do, and being unable or unwilling to do it is much of what weeds people out of Ph.D. programs.

과학자로 자리를 잡기까지는 정말이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가장 위험한 부분은 진정한 과학자가 무엇인지를 배우고 불안한 첫걸음을 떼서 오솔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 오솔길은 도로가 되고, 그 도로는 고속도로가 되고, 그 고속도로는 언젠가 목적지에 나를 데려다줄지도 모른다. 진정한 과학자는 이미 정해진 실험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만의 실험을 개발하고, 그렇게 해서 완전히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낸다. 지시받은 일을 하는 단계와 스스로 무엇을 할지 정하는 단계 사이의 이행은 일반적으로 논문을 쓰는 중간 시점 정도에 일어난다. 여러 면에서 그것은 학생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하거나 할 의사가 없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이 박사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다.

(Chapter 8 of Part 1)
Plants are not the only exploding growth in the American South. Between the years 1990 and 2000, the amount of total income tax collected annually by the state of Georgia more than doubled as Coca- Cola, AT& T, Delta Air Lines, CNN, UPS, and thousands of other recognizable companies relocated themselves to the Atlanta area. Some of this new revenue was channeled into the universities in order to meet the educational needs of a larger and more corporate population. Academic buildings popped up like mushrooms, the number of faculty skyrocketed, and student enrollment continued to climb. In Atlanta during the 1990s, every kind of growth seemed possible.

미국 남부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식물뿐만이 아니다. 1990년에서 2000년 사이 조지아 주에서 거둬들인 연간 소득세 총액은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코카콜라, AT&T, 델타 항공, CNN, UPS를 비롯한 수천 개의 유명 기업들이 애틀랜타 지역으로 이주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늘어난 인구가 필요로 하는 교육에 대한 욕구를 맞추기 위해 새로 늘어난 이 수입 중 일부가 대학으로 유입됐다. 대학 건물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교수들 숫자가 치솟았으며, 학교에 등록하는 학생 수도 계속 늘어갔다. 1990년대 애틀랜타에서는 모든 종류의 성장이 가능해 보였다.

(Chapter 1 of Part 2)
I’m good at science because I’m not good at listening. I have been told that I am intelligent, and I have been told that I am simple-minded. I have been told that I am trying to do too much, and I have been told that what I have done amounts to very little. I have been told that I can’t do what I want to do because I am a woman, and I have been told that I have only been allowed to do what I have done because I am a woman. I have been told that I can have eternal life, and I have been told that I will burn myself out into an early death. I have been admonished for being too feminine and I have been distrusted for being too masculine. I have been warned that I am far too sensitive and I have been accused of being heartlessly callous. But I was told all of these things by people who can’t understand the present or see the future any better than I can. Such recurrent pronouncements have forced me to accept that because I am a female scientist, nobody knows what the hell I am, and it has given me the delicious freedom to make it up as I go along. I don’t take advice from my colleagues, and I try not to give it. When I am pressed, I resort to these two sentences: You shouldn’t take this job too seriously. Except for when you should.

나는 남의 말을 듣는 데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을 잘 한다. 나는 똑똑하다는 말을 들었고, 단순하다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너무 많은 일을 하려 한다는 말을 들었고, 내가 해낸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도 들었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고,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한 일을 할 수 있었다는 말도 들었다. 나는 영생을 얻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고,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일찍 죽을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너무 여성적이라는 꾸지람을 들었는가 하면 너무 남성적이어서 못 믿겠다는 말도 들었다. 내가 너무 예민하다는 경고를 받은 적도 있고, 비정하고 무감각하다는 비난도 들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은 모두 나만큼이나 현재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래를 보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그런 말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내가 여성 과학자이기 때문에 누구도 도대체 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따라서 상황이 닥치면 그때그때 내가 무엇인지를 만들어나가면 되는 값진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동료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나도 그들에게 충고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음 두 문장을 되뇐다: 이 일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야만 할 때를 빼고.

(Chapter 14 of Part 3)


한가지 첨언할 것은, 랩걸의 한국어판 번역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 원서를 읽을 때 이해가 안 가면 한국어판을 들춰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김희정 번역가님의 작업에 경탄할 수 밖에 없었다. 원문 문장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었을까? 본래 전공도 아닌 분야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공부 및 리서치를 해야 했을테고 작가와도 이메일을 주고 받아야 했겠지 (뇌피셜). 그리고 한국 독자 입장에서 목넘김이 좋으려면 문장도 잘 다듬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도 고민을 많이 하신 흔적이 보였다. 김희정 번역가님 손을 거쳐간 책을 더 찾아봐야 겠다.

에휴, 초등학생 때는 책을 참 많이 읽었는데 말이지 (문제는 수업시간에 교과서 대신 엉뚱한 책을 펼쳐놓고 읽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급우들이 고자질해서 수업시간에 경고도 받고 종종 혼도 났음 ㅋㅋ). 여러 페이지에 걸쳐 끈기 있게 이야기를 풀어내거나 설명하는 매체는 나에게 안성맞춤인 소재인데, 지금은 어쩌다가 이렇게 책을 멀리하게 되었는지..

앞으로는 책을 더 바지런히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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